[활동가 이야기] 벌써 10년 - 조영수 협동사무처장 (2014년 7호)
등록 2014.07.29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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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년


조영수 협동사무처장 l ccdm1984@hanmail.net



6월 26일. 공덕동 사무실에선 한판 엎어치기가 벌어졌다. 사무실 책상들을 바꾸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각종 집기와 물품 등을 처리하고, 쌓여만 있던 종이들을 고물상으로 보냈던 날이다. 방에 있었던 사무처장 책상이 밖으로 나와 활동가들 옆에 자리 잡고, 기존의 공간은 대표실을 겸한 회의실로 꾸며 활용도를 높였다. 2009년 5월 공덕동 시대를 연 이후 만 5년 만에 공간 재배치와 대청소를 한 셈이다.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2005년 5월 공덕동 사무실로 이전할 때 입원 중이라 버리지 못한 10년 간 쌓아놓은 개인 짐도 많았고, 버릴 것과 남길 것을 분류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수고한 만큼 새로운 공간이 생겨나고 그 공간들이 존재의 가치를 높인 것은 큰 보상이었다. 이사를 자주 다니는 사람들은 짐 정리가 자동적으로 된다고 하고, ‘일 년에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은 과감히 버리라’고 했던 정리의 달인들의 충고가 괜한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도 얻었다.(^^;) 또 눈썰미 있는 분들의 ‘산뜻해졌다’는 말씀은 내심 뿌듯함을 더했다.  


사설이 길었는데 본론은. 짐을 정리하다 2004년에 복사해 놓은 기사 하나를 발견했다. 민언련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같은데, <“학우들에게 언론문제를 제대로 알리겠다”-학생운동 간부에서 언론단체 활동가가 된 조영수 씨>라는 「미디어오늘」의 짧은 인터뷰 기사다. 기사는 조영수를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라는 책을 가장 감명 깊게 읽었다는 학생운동 간부가 언론단체의 활동가로 변신, 화제를 모으고 있다”고 소개했다. 손발이 오그라든다. ‘어머니’를 감명 깊게 읽은 건 맞지만 ‘화제’도 아니었고, 그럴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제 딴에는 학교에서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생각했지만 사회는 역시 만만치 않았다. 2004년 민언련과 연을 맺은 지 한 달여 만에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이 터졌고, 국회의원 선거와 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 후원주점이 이어졌다. 또, 진중하게 앉아 있는 것 보다는 움직이는 것이 체질인데다가, 글 쓰는데 취미가 없었던 나에게 신문모니터 담당이 맡겨졌으니 그런 곤혹도 없었다. 서슬이 퍼런 신문권력과 싸우는 데 힘을 보탠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고, 생각 없이 발을 디딘 게 아니냐는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다. 일을 맡기는 선배들도 편치는 않았으리라. 정신없이 상반기를 보내고, 10월에는 ‘조선일보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한 민간법정’이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렸고, 12월에는 창립 20주년 행사와 후원호프까지 활동가 1년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2005년을 맞았다. 반면 그 첫 해가 가장 보람된 한 해였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나마 참여정부 시절이라 주장하는 바가 다 이뤄진 건 아니지만 제안하고, 토론하고 그러면 무언가 진전되는 느낌이었다면 2008년부터는 그야말로 탄압을 막아내기에 급급한 채로 8년째를 보내고 있는 것 같으니 말이다. 


시간은 잘도 흘러간다. 민언련에 몸담은 10년 사이 결혼도 하고 두 딸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올 4월부터는 협동사무처장을 맡아 창립 30주년을 맞이했다. 2004년에 20주년 2014년엔 30주년, 활동가로서 두 번의 꺾어지는 해를 맞는다는 게 작지 않은 의미로 다가온다. 20주년이야 짱짱하신 선배들의 지시를 잘 따르기만 해도 족했지만 지금은 아닌 처지라 부담이 백배다. 민언련 서른 살, 11년차에 걸 맞는 활동을 하고 있는지, 회원과 시민들과 함께 할 준비는 되어 있는지 고민이다. 이런 걱정으로 이런 저런 지난 자료를 들춰보게 된다. 지난 회의 자료만 봐도 민언련이 어떻게 굴러왔는지 이런 일이 있을 때에는 이렇게 대응했고, 저런 일에 대해서는 저런 의사결정을 했구나 하는 공부가 된다. 


앞으로 돌아가서. 민언련 활동에서 학교 때 인맥이 도움이 된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보다 백번 나았고, 인맥으로 사익을 추구하자는 게 아니니 그런 면에서도 전혀 부담도 없었다. 반면에 경력은 족쇄 같아 때론 불편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민언련 10년 경력이 허송세월이 아니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과제가 떨어졌다. 어리바리 고민하고 있던 차에 우연히 발견한 기사가 나를 자극한다. 이러려고 10년간 숨어 있다가 ‘짜잔’하고 나타난 느낌이랄까. 칸막이에 붙여놓은 기사를 다시 본다. ‘조영수 제대로 살고 있니!!!’


※ 추신 : 6월 ‘활동가 이야기’ 첫 회를 쓰기로 했지만 ‘쓰고 싶은 것은 많은데 뭘 써야할지 모르겠다’는 핑계로 한 회 미뤘습니다. 앞으로 미루지 않고 적극적으로 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