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봄날의 햇살’ 최수연을 꿈꾸지 않습니다 I 김봄빛나래 미디어팀 활동가
등록 2022.07.2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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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금요일 오후 4시부터 즐거워져 토요일 행복 리듬 정점을 찍은 뒤 일요일 오후 6시부터 차분해집니다. 보통의 사회인들처럼요. 그런 제가 요즘 수요일을 기다립니다.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우영우) 방영일, ‘우요일’이기 때문이죠.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 스펙트럼을 동시에 가진 신입 변호사 우영우의 활약과 성장을 그린 법정 드라마 ‘우영우’는 흥행을 넘어 신드롬급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데요. 저는 ‘우영우’의 인기 요인을 따뜻함과 무해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출생의 비밀(은 ‘우영우’에도 있긴 합니다.), 불륜과 복수, 암흑 조직, 권력자들의 야욕과 같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키워드가 주된 드라마와 달리 인류애를 불어넣거든요. 성소수자, 장애인, 탈북민, 지역민 등 소수자를 매회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이들의 입장에 귀 기울이고 시청자에게 생각해볼 거리를 던지기도 하죠. 이것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지지만, 제게 인류애 충전의 정점은 우영우 변호사가 로스쿨 동기이자 로펌 동료인 최수연 변호사에게 “넌 봄날의 햇살 같아”라고 말했을 때입니다.

 

“넌 봄날의 햇살 같아. 로스쿨 다닐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어. 너는 나한테 강의실의 위치와 휴강 정보와 바뀐 시험 범위를 알려주고 동기들이 날 놀리거나 속이거나 따돌리지 못하게 하려고 노력해. 너는 지금도 내 물병을 열어주고 다음에 구내식당에 또 김밥이 나오면 나한테 알려주겠다고 해. 너는 밝고 따뜻하고,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야. 봄날의 햇살 최수연이야.”- 5회 ‘우당탕탕 VS 권모술수’ 중

 

최 변호사는 복잡미묘한 감정이 드러나는 얼굴로 우 변호사의 이야기를 듣다 끝내 눈시울을 붉힙니다. 우 변호사는 사실을 말했을 뿐이라는 듯 말을 끝내곤 이어 밥을 먹습니다. 담백하면서도 심금을 울린 이 장면에 감명받은 이가 저만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SNS에서 ‘봄날의 햇살’ 최 변호사를 찬양하고 자신도 최 변호사처럼 되겠다는 다짐을 올리거나 경험담을 쓰기도 했죠. 그런데 이런 여론에 따끔한 일격을 날리는 글이 올라옵니다. “대부분 사람이 권모술수 권민우처럼 살면서 본인이 봄날의 햇살 최수연인 줄 안다.”

 

저도 봄날의 햇살에 큰 감명을 받았던지라 처음엔 찬물을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곧 수긍이 되더군요. 지난 몇 달간 민언련에서 절 되돌아보는 시간이 있었거든요. 4월 20일 처음 공개하고 6월 22일 마무리한 <혐오심판> 덕분입니다. 고은지 활동가와 함께 기획하고 제작한 <혐오심판>은 온라인·미디어·언론에서 마주하는 혐오와 차별을 이야기했습니다. <혐오심판>에선 대놓고 누군가를 증오하는 말과 행동을 일삼거나 물리적 폭력을 가하는 혐오도 다뤘지만, 교묘하면서도 미세한 일상의 차별 문제를 다루기도 했는데요. 고은지 활동가가 지역 혐오를 주제로 제작한 5화에선 ‘마이크로어그레션(microaggression)’을 이야기합니다. 의도적인 언행이 아니어도 상대방이 모욕감이나 적대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는 미세한 차별을 뜻하는 마이크로어그레션. 이 영상에선 서울로 거주지를 옮긴 사람에게 “서울 사람 다 됐다”는 표현을 예시로 듭니다.

 

뜨끔했습니다. 기억의 편린 하나를 말해보자면요. 중학생 시절, 제주도에서 서울로 전학 온 송(가명)이란 친구가 있었습니다. 학급 친구들이 제주도 사투리로 말해달라고 하면, 호탕하게 사투리로 말하곤 곧바로 서울말로는 어떤 뜻인지 말해주던 유쾌한 친구였죠. 학교에서 시험이 끝나고 다 함께 롯데월드에 놀러 간 날, 송에게 물어봤습니다. “제주도에도 놀이공원이 있어?” 그 유쾌한 송이 인상을 찡그리며 ‘제주도가 육지랑 뭐가 그렇게 다를 거라 생각하냐’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던 게 잊히지 않습니다. 그땐 악의 없이 궁금증에 물었을 뿐인데 날카롭게 답한 친구에게 분명 서운했던 듯합니다. 10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으니까요. 지금은 매우 부끄럽습니다. 제 질문은 분명한 마이크로어그레션이란 걸 깨달았으니까요. 콘텐츠를 제작하며 끊임없이 반성의 시간을 가질 수 있던 겁니다. <혐오심판>은 ‘마이크로어그레션? 너무 예민한 거 아냐?’라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차별적 표현, 혐오 표현에 무감각하고 이를 방치한다면 이런 표현이 나비효과처럼 번져 나중에는 모두가 감당할 수 없는 불행이 될 수 있습니다.

 

‘우영우’에는 ‘봄날의 햇살’ 최수연도 나오지만 마이크로어그레션을, 혐오와 차별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나옵니다. 우 변호사와 동행하는 이준호 사무관에게 “오빠는 아직도 봉사하는구나”라고 묻고는, 우 변호사에겐 “화이팅”을 외치고 지나가는 이 사무관의 대학 후배.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의뢰인 자녀가 택시비를 내지 않아 우 변호사가 해결하려 하니 다른 변호사가 결제하는 걸 돕는 택시 기사. ‘자폐환자’란 발언이 부적절하다고 지적받아도 굳이 우 변호사를 ‘자폐환자’로 칭하는 검사. 그리고 최선의 방법을 제시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 방향이란 이유로 “그래 봤자 너도 자폐잖아”라고 발언하는 의뢰인. 여러 차례 차별과 혐오에 노출됐던 우 변호사는 극 도중 “저는 피고인에게 도움이 되는 변호사가 아닙니다”라고 말하고, 로펌을 떠납니다. 우 변호사는 곧 다른 사건을 계기로 로펌에 돌아오지만 마이크로어그레션, 미세차별이 미세먼지처럼 차곡차곡 쌓여 마음의 건강을 해치고 상처를 만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드라마를 보며, 콘텐츠를 제작하며 반복적으로 제 과거의 편린을 모아봅니다. 그리고 다짐하죠. 감히 제가 ‘최수연과 같다’ 자위하지도, 그를 목표로 잡지도 않겠다고요. 그저 드라마를 보다가 기시감을 느끼는 순간이 온다면, 고민하고 통렬하게 반성하고 변화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봄날의 햇살까진 아니더라도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돼 있지 않을까요. 이러나저러나, ‘우요일’을 기다리는 화요일, 제 행복 리듬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모두 따뜻한 ‘우요일’ 보내시길.

 

김봄빛나래 미디어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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