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관련 주요신문 사설」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4.7.14)
등록 2013.08.13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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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대상'의 반발을 왜 '진실게임'으로 호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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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언론들의 '과거청산 무력화' 시도를 경계한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의문사위원회)와 관련한 일부 신문들의 보도태도가 상식 밖이다.
지난 12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허원근 의문사 사건'의 조사 과정에서 현역 군인 인모씨가 위원회 조사관을 권총으로 위협하고 수갑을 채우는 등의 용납할 수 없는 행위를 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인씨는 자신이 쏜 것은 권총이 아니라 가스총이며, 의문사위원회 조사관들이 자신의 부인을 폭행하고 자료를 빼앗아가려 했을 뿐 아니라 여권 인사의 이름을 거론하며 '국가인권위 4급 공무원'으로 특채시켜주겠다고 회유했다는 주장을 폈다. 이에 대해 의문사위원회는 인씨의 주장이 거짓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우리는 이른바 '의문사위와 국방부의 갈등'으로 표현되고 있는 이번 사태의 본질이 단순한 '국가기관들 사이의 알력이나 충돌'이 아니라 '과거청산을 추진하는 위원회와 이에 저항하는 세력들 사이의 갈등'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사건이라고 본다. 2000년 의문사위원회가 출범한 이래 경찰, 국정원, 국방부, 기무사 등 이른바 의문사의 '피진정기관'들이 의문사 진상규명에 비협조적이었으며, 때때로 노골적인 저항 행태까지 보였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바다.
이번 사태에서도 현역 군인 인씨는 자신의 총이 "권총이 아니라 가스총"이라며 위원회의 주장을 반박하고 나섰다. 그러나 총의 종류가 무엇이건, 적어도 인씨가 위원회 조사관을 향해 총기를 사용했다는 것은 사실이며, 허원근 사건과 관련한 자료를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인 셈이다. 이것은 모든 논란에 앞서 의문사 진상규명 활동에 대한 피조사기관들의 태도가 어떠한 것인지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언론들은 '과거청산에 대한 저항과 반발'이라는 사태의 근본 문제는 외면한 채 두 기관사이의 공방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이들은 의문사위원회와 인씨의 주장을 놓고 '의문사위원회와 국방부 인모씨 사이의 진실게임', '국가기관 사이의 추한 폭로전' 구도로 사태를 몰아갔다. 특히 수구신문들은 교묘한 사실 왜곡, 쟁점 흐리기, 양비론 등을 동원해 엉뚱한 주장을 펴고 나섰다.


13일과 14일 주요 신문들은 의문사위원회와 인씨의 주장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사설을 실었다.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이 '총기협박' 여부에 초점을 맞춘 데 반해 <의문사위와 국방부의 갈등>(중앙일보 13일), <의문사위-국방부, 누구 말이 맞는가>(동아일보 14일)<의문사위와 軍, 모두 脫線했다>(조선일보 14일) 등 조선, 중앙, 동아는 의문사위원회와 국방부의 '공방'으로 사태를 몰아갔다.
중앙일보는 국가기관들 사이의 "한심한 행태"를 상급기관들이 방관하고 있다면서 '정부의 기강해이'를 질타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또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의 증폭현상에 국민은 넌더리를 내고 있다", "한 발자국씩 물러나 냉정을 찾아야 한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독선과 오만이 있었다면 이제는 이를 버려야 한?quot;는 등의 주장을 폈다. 중앙일보의 이같은 주장은 과거청산의 과정에서 벌어질 수 밖에 없는 '진실 대 은폐'의 갈등을 여타의 사회 갈등과 똑같이 취급함으로써 과거청산의 '부작용'을 강조하는 여론 호도가 아닐 수 없다.


동아일보는 한술 더 떠 의문사위원회와 국방부의 갈등을 두고 "국가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라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동아일보는 "한 나라의 국가기관끼리 서로 자신이 옳다고 공개적으로 설전을 하는 상황은 더욱 비정상적"이라며 '국가 체면'을 들고 나왔다. 독재정권의 인권유린을 경험한 많은 나라들이 과거청산을 시도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체면을 구긴 나라들도 있다. 그러나 해당 국가의 '체면'이 구겨진 것은 '갈등'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군부 등 권위주의 세력들에 의해 과거청산이 무력화됨으로써 여전히 '인권후진국'으로 남게 되었기 때문임을 동아일보는 잘 알아두기 바란다.
한편 동아일보는 "(위원회 조사관이) '정부 실세'를 거명하며 인사 배려를 운운한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며 인씨의 주장을 기정사실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나라 망신시키는 '진실게임'을 그치고 두 국가기관이 왜, 무엇이 두려워 이런 공방을 벌이는지 밝혀내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인씨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밝혀줄 문제의 '녹음테이프' 공개를 국방부나 인씨에게 요구하지 않았다. 진실이 무엇인지 밝히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일보 역시 다를바 없다. 조선일보는 14일 사설에서 이번 사건을 "볼썽사나운 진실게임"으로 규정하면서 의문사위원회와 국방부를 모두 비판하고 나섰다. 그러나 비판의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면 '양비론'을 가장한 교묘한 '국방부 편들기'에 불과하다. 조선일보는 임씨의 '총기협박'은 의문사위원회의 '주장'으로만 짧게 언급하면서 국방부가 '같은 국가기관으로서 수평적 협력관계이지 어느 일방이 다른 일방을 조사하는 식의 수직적 관계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힌 데 대해서만 '잘못된 처신'이라고 꾸짖었다.
반면 의문사위원회에 대해서는 "피조사자에게 정권 실세 이름을 들먹이며 '자리 약속'을 하는 것은 스스로의 도덕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탈선행위"라고 인씨의 주장을 기정사실화하면서 "당사자의 허락도 없이 여자 혼자 있는 집에 들어가 서류뭉치를 들고 나오는 조사 방식은 불법이자 독재정권 시절의 임의동행이나 무단 가택 수색과 마찬가지인 한심한 행태"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총기협박'이라는 부당한 저항행태를 비껴가려는 조선일보의 저의는 비단 사설에서만 드러난 것은 아니다. 14일 11면 기사 <의문사위 '현장녹음' 공개 연일 난타전>에서 조선일보는 '권총이냐 가스총이냐'를 핵심 쟁점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의문사위는 이날 인 상사가 발사한 총이 가스총이 아닌 권총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소리를 들어보면 확실히 권총임을 알 수 있다'는 전날의 주장만을 되풀이했다"며 권총이라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의문사위원회에 문제가 있는양 몰았다. 조선일보는 인씨가 쏜 것이 '가스총'이면 국방부가 '진실게임에서 승리했다'고 보는 것인가?


우리는 상식을 갖춘 언론이라면 최소한의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잘잘못을 가릴 줄 알아야 한다고 본다. 가스총이든 권총이든 인씨가 총기를 발포하면서까지 의문사위원회 활동에 저항한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이것은 과거 인권침해의 '가해세력'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온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약한 과거청산기구가 처한 위기이자, 과거청산 작업의 위기이다. 도대체 언론이 의문사위원회가 당시 상황을 담은 녹음테이프까지 공개하고 인씨 스스로가 발포 사실을 인정한 상태에서 이를 '기관 사이의 공방'으로 몰고 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또 인씨가 의문사위원회 조사관들이 자신을 회유한 상황을 녹음한 테이프가 있다고 주장한만큼 논란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언론은 국방부에 이 테이프의 공개를 강력하게 촉구해야 하지 않는가.
우리는 감사원의 감사 결과 의문사위원회 조사관들이 조사 과정에서 인씨의 주장처럼 폭행 등 불법조사를 했거나, 제보자에 대한 신변안전 보장의 수준을 넘어 고위직을 언급하며 '자리약속'으로 인씨를 회유하려 한 사실이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놓고 의문사위원회의 전반적인 활동을 폄훼하거나 과거청산의 본질을 흐리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만의 하나 의문사위원회와 그 조사관들이 개별 사안을 처리하는 데 있어 잘못을 저질렀다하더라도 이를 빌미로 과거청산의 대의와 필요성을 무력화시켜서는 안된다.
우리는 수구신문들의 잇따른 의문사위원회 '흔들기'에 이어 한나라당에서 '의문사위원회 무용론'이 슬금슬금 나오고 있는 데 대해 과거청산 문제에까지 '수구커넥션'이 작동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크나큰 우려를 감출 수 없다.


끝으로 우리는 이번 사태와 관련한 연합뉴스의 보도 행태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연합뉴스는 어느 언론보다 앞서 이 사태를 보도하면서 '국가기관 사이의 꼴불견 공방'이라는 구도로 접근했으며, 13일에는 <의문사위, 실세 친분빙자 군인 회유>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인씨가 제시한 문건을 '녹취록'이라고 단정해 보도했다.
이번 사태를 접근하는 연합뉴스의 보도태도는 참으로 실망스럽다. 우리는 연합뉴스가 '과거청산 과정의 진통'이라는 큰 틀에서 이번 사태에 접근해주기를 기대하며 연합뉴스의 보도태도를 예의주시 하려한다.

 


2004년 7월 14일


(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