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윤석열 묵념 뒤 뜬 무지개’ 두고 ‘성스러운 징조’ 언론이 전할 소린가
등록 2021.11.12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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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묵념 뒤 뜬 무지개’ 두고 ‘성스러운 징조’ 언론이 전할 소린가

언론은 부끄러운 ‘박근혜 형광등 아우라’ 참사 잊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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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0일 광주5·18민주묘지 인근에 뜬 무지개와 국민의힘 윤석열 대권 후보가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기사로 쓴 뉴스1(11/10)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11월 10일 국립5·18민주묘지를 방문했다는 기사에 때 아닌 ‘무지개’가 등장했다. 윤 후보는 ‘전두환 옹호’ 발언과 ‘개 사과’ 사진으로 물의를 빚자 그 수습을 위해 광주를 찾았다. 하지만 5·18단체 등 광주 시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참배 대신 묵념 뒤 급하게 묘지를 떠났다.

 

그런데 직후 느닷없이 언론에 ‘윤석열 무지개’ 기사가 뜨고, “성스러운 징조” 해석이 등장했다. 마치 2011년 당시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 씨를 두고 ‘형광등 100개 켜놓은 듯한 아우라’로 자막을 달았던 TV조선 보도가 연상되는 수준이다. 올해 초에도 일부 언론은 윤 후보에 대해 ‘왕의 상’이라고 치켜세우는 기사를 내는 등 독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바 있다.

 

'윤석열 무지개' 앞서 보도한 연합뉴스, 뉴스1

‘윤석열 무지개’ 기사를 가장 먼저 실은 곳은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연합뉴스와 민영통신사 뉴스1이다. 특히 연합뉴스는 윤 후보와 무지개를 억지스럽게 연결 짓는 해석을 덧붙였다. 연합뉴스 <찬반 목소리 뒤엉킨 5·18묘지…윤석열 발길 돌리자 뜬 무지개>(11월 10일 정회성 기자)는 무지개가 뜬 사진을 싣고 “윤석열 대선 후보가 추모 의식을 마친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바라본 동쪽 하늘에 무지개가 떠 있다”고 설명한 뒤 “항의 인파와 지지자 모두 무지개를 바라보며 “오죽하면 하늘도”, “성스러운 징조” 등 각각의 입장에서 해석을 쏟아냈다”고 전했다. 같은 시간대 뉴스1은 <무지개 뜬 5.18묘역>, <5.18묘역에 뜬 무지개>, <5.18민주묘역 상공의 무지개>(이동해 기자)라는 사진기사를 동시 전송하며 “오월어머니회 등 5·18단체가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참배단 앞을 지키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참배를 저지한 가운데 먼발치에 무지개가 관측되고 있다”고 설명을 달았다.

 

국가기간통신사 연합뉴스와 머니투데이 미디어그룹 계열사인 민영통신사 뉴스1은 한국을 대표하는 뉴스통신사다. 다양한 신문, 방송, 인터넷언론에 기사 전재를 통한 ‘뉴스도매’뿐 아니라 포털을 통한 ‘뉴스소매’ 유통으로 여론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이들 통신사가 부정확한 보도를 할 경우 다른 언론이 따라서 오보를 양산하는 등 언론 의제설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더군다나 선거 국면에 들어선 지금 윤 후보의 광주 방문 취지와 관련 없는 ‘무지개’ 언급은 해당 사안의 본질을 흐리게 할 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기상 현상일 뿐인 ‘무지개’를 두고 유력 대권 후보에 대한 해석을 덧붙인 기사가 잇따라 나왔다. 여러 언론이 연합뉴스와 뉴스1 기사를 ‘복붙(복사붙여넣기)’해 받아쓰고, 영상으로도 제작했다. 디지털타임즈 <5·18묘역 윤석열 떠나자 뜬 무지개…“성스러운 징조” vs “오죽하면 하늘도”>(11월 10일 김성준 기자), MBN <윤석열 발길 돌리자 5·18묘역에 뜬 무지개…해석 제각각>(11월 10일 윤혜주 기자), 조선일보 <尹 돌아가자 5·18묘역에 뜬 무지개, 지지자‧항의자 정반대 해석>(11월 10일 김명일 기자)은 제목과 기사 상단에 해당 내용을 싣는 방식으로 강조했다. 뉴스1 <[영상] 윤석열 떠난 광주에 뜬 무지개…“길조” vs “망조”>(11월 10일 문동주·문영광·박혜성 기자)는 ‘이 무지개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자막을 달고 “역시 대통령은 하늘이 내는 것”, “하늘도 윤 후보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윤석열이 사라지니 그제야 무지개가 떴다”, “하늘이 분노한 것” 등 온라인 댓글을 전했다. 대선 쟁점이나 후보간 정책비교와 하등 관계없는 신비주의적 해석과 신화화로 선거보도의 수준을 형편없이 추락시킨 것이다.

 

“북한 지도자 찬양한 노동신문 같다”

이러한 기사를 단순 날씨 보도나 민심을 전하는 보도로만 넘겨선 안 되는 이유는 과거 날씨를 이유로 정치인을 특별한 사람처럼 묘사한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YTN <뉴있저/ 광주·전두환·윤석열...날씨는 그저 날씨일 뿐입니다>(11월 11일 변상욱 앵커)도 같은 맥락에서 과거 언론 행태를 예로 들어 윤 후보와 무지개를 연결지은 보도를 비판했다.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이 해외를 방문했을 때 ‘날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상서로운 후원자’임을 언급한 파이낸셜뉴스 <취재수첩을 꺼내며/朴대통령과 날씨>(2013년 7월 1일 정인홍 정치경제부 차장), “박 대통령을 태운 왕실마차가 버킹엄궁에 들어설 때는 햇빛이 쨍쨍”했다고 보도한 이데일리 <朴대통령, 버킹엄궁 들어서자 비 그치고 햇빛 쨍쨍>(2013년 11월 5일 피용익 기자)가 대표적이다.

 

고발뉴스 <‘윤석열 무지개’ 기사에 英교수 “北노동신문인가”>(11월 12일 민일성 기자)는 “케빈 그레이 영국 서섹스대 국제관계학 교수가 연합뉴스 ‘윤석열 참배 직후 뜬 무지개’ 기사에 대해 “북한 노동신문 같다”고 말했다”는 내용을 전하며, 5·18묘지에 뜬 무지개와 윤 후보를 연결 지은 게 마치 북한에서 지도자를 찬양하는 것처럼 ‘과대포장’한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번 선거를 두고 ‘비호감 선거’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검증하고, 물어야 할 질문보단 논란이 아닌 걸 논란으로 만들어온 언론이 정치 혐오를 키우고 유권자가 원하는 질문을 후보자에게 던지지 못한 탓도 크다. ‘윤석열 참배 뒤 무지개’ 식 보도를 보면서 선거보도에 대한 우려도 커지지 않을 수 없다. 제20대 대통령 선거일까지 120여일 남았다. 언론은 유권자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선거,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는 보도를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2021년 11월 12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직인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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