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문제풀이에 맛집까지’ 대선 후보 무분별한 예능출연 중단하라
등록 2021.12.0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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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선을 앞두고 대선후보들의 예능프로그램 출연이 잦아지고 있다. 선거 후보들의 예능 출연은 선거철마다 돌아오는 관행으로 정착된 모양새다. 그러나 거대정당 후보 위주의 예능 출연은 모든 후보에게 공정할 수 없고, 정치인들의 이미지 홍보에 일방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양돼야 한다.

 

SBS <힐링캠프> 이후 9년, 문제풀이·맛집 예능까지

선거 후보들의 예능 출연이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18대 대선을 앞둔 2012년 1월 SBS <힐링캠프>에 당시 유력 대선주자 문재인·박근혜·안철수 세 사람이 차례대로 출연했다. 인기프로그램이었던 <힐링캠프> 출연이 후보들의 지지율과 시청률에 긍정적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나자 지상파, 종편 할 것 없이 선거 후보들의 예능방송 출연은 확대됐다. 방송사와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선거 후보들은 처음엔 JTBC <썰전>과 TV조선 <강적들>처럼 시사성이 강한 프로그램, 혹은 SBS <힐링캠프>나 MBC <라디오스타> 같은 토크쇼를 중심으로 출연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SBS <동상이몽>, TV조선 <아내의 맛>처럼 ‘소탈한 이미지’ 만들기에 좋은 리얼리티 예능 출연 빈도가 늘었다. 최근엔 KBS <옥탑방의 문제아들>, TV조선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과 같이 정치와 전혀 연결점이 없어 보이는 예능에도 출연하고 있다. KBS <옥탑방의 문제아들>은 출연자들이 제작진이 내는 문제를 풀면 ‘퇴근’한다는 콘셉트 프로그램, TV조선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은 소위 ‘먹방 예능’이다.

 

‘공정할 수 없는’ 선거 직전 예능방송 출연

특히 대선 후보들의 이러한 예능방송 출연은 선거 공정성을 크게 해칠 수밖에 없다. 상업을 목적으로 한 예능방송은 주목도와 시청률을 고려해 출연자를 선정하므로, 대중적 지명도가 높은 후보들이 우선 출연하게 돼 지지율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더 심화시킨다. 거대양당의 정치 독점이 크게 비판받는 이때 예능 프로그램이 앞장서 거대양당 체제를 강화하는 부적절한 결과를 낳게 된다. 실제로 지난 9월 대선후보 경선이 끝나기 전 방영된 SBS <집사부일체>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이낙연, 국민의힘 윤석열 예비후보만 출연했다. 반면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12월 2일에서야 SBS <워맨스가 필요해>에 첫 출연했다.

그렇다고 기계적 공정성을 위해 모든 후보를 출연시키다 보면 어느 후보는 출연 시점에서 상대적으로 이익을 보고, 어느 후보는 손해를 볼 수도 있다. 후보 선출 전 국민 여론조사 기반의 경선을 실시한다면, 여론조사 기간과 가까울수록 방송출연 이익을 극대화할 우려도 있다. 기계적 공정성조차 지켜지지 않는 사례도 있다. TV조선 <와카남>은 국민의힘 경선을 앞둔 9월 28일 홍준표 후보만 출연시켰고, 11월 27일엔 안철수 후보와 촬영을 하기로 했다가 이틀 전 갑자기 취소돼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무분별한 후보 예능출연, 가이드라인 필요하다

특히 정치인과 방송사가 공적으로 다뤄야 할 정치인 공과를 ‘이미지’로 희석시키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예능 프로그램은 일반적 시사·토론 프로그램과는 달리 재미를 추구하는 게 목적이므로, 기획·촬영·편집 과정에서 후보들에게 불리한 지점은 감추고 보기 좋은 모습만 강조할 수밖에 없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TV조선 <아내의 맛>에 출연한 나경원 전 의원이 대표적 사례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한 나경원 전 의원은 비록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자녀 관련 특혜 및 예산집행 비리 의혹을 받고 있었는데, <아내의 맛>에 출연해 자녀 관련 의혹을 상쇄했다. 방송사 예능프로그램 제작팀이 특정 정치인의 홍보팀이 되는 것과 다름없는 행태다.

대선 후보들이 예능에 나와 가벼운 투로 주고받는 문답이 얼마나 유권자 선택에 도움이 되는지, 궁극적으로 정치인들의 이미지 전략은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미국에서도 존 F. 케네디와 로널드 레이건 등 이미지 정치로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대통령이 있지만 이들도 최소한 TV쇼가 아닌 토론과 연설을 통해 이미지 전략을 세웠다. 정치인들의 본업은 정치이지 ‘쇼’가 아니기 때문이다.

선거방송심의에 관한 특별규정 제20조 제1항에 따르면, 선거일 90일 전부터 선거일까지는 보도·토론방송을 제외한 프로그램에 후보자 출연을 금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12월 9일부터 대선후보가 출연하는 예능프로그램은 규제 대상이 된다. 하지만 선거 90일 전이라고 하여 대선 후보의 이미지 정치가 특별히 허용돼야 할 이유는 없다. 방송사들은 조속히 예능의 ‘이미지 정치’ 악용을 막을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선거 후보의 무분별한 예능 출연을 중단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송심의규정을 강화하라는 시민들의 요구에 직면할 것이다.

 

2021년 12월 4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직인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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