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_
팩트를 넘어선 저널리즘을 위한 간단 스케치
서명준 (베를린자유대 언론학 박사, 언론소비자주권행동 대표)
등록 2019.04.18 09:54
조회 323

세계적인 화가 피카소는 꽤 유명해서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피그카소는 들어보셨는지 모르겠다. 남아프리카에서 온 그림 그리는 돼지 말씀이다. 붓 하나만 손에, 아니 입에 물려주고 큼직한 캔버스를 대령하기만 하면 멋진 솜씨로 추상화를 그려내는 돼지피카소Pig+Piccasso, 그래서 피그카소라 불린다. 피그카소의 작품은 2,000달러,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약 220만원에 판매된다. 수익금은 동물 보호 목적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미스터 피그카소는 인스타그램 팔로워만 1만3천명에, 작품전시회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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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https://pigcasso.org/ 홈페이지 >

 

피그카소의 그림은 진짜인가 가짜인가. 물론 여기서 한가하게 예술적 진위 논쟁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진짜와 가짜의 도전을 받고 있는 저널리즘이다.   

 

AI 시대의 저널리즘

인간의 경쟁자는 피그카소 뿐만이 아니다. 하나가 더 있는데, 이제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그것, 바로 인공지능AI이다. 이에 대해 쏟아지는 많은 정보와 뉴스들이 있지만, 우리의 관심은 무엇보다 ‘뉴스를 만드는 AI’다. 가령, 지난 2월,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톡톡 튀는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런 머스크E. Musk가 참여한 연구단체는 뉴스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 AI를 만들었다. 그냥 뉴스가 아닌 가짜뉴스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 AI라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겠다.  

 

오픈AI가 개발한 인공지능 시스템은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진짜 같은 가짜뉴스를 대량생산할 수 있다. 간단한 문장을 GPT2 알고리즘에 제공하면, 비슷한 문맥으로 기사가 엄청 쏟아진다. 40GB의 인터넷 텍스트를 학습해 다음 단어를 예측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한다. 이 AI는 “과학자들이 안데스 산맥에서 한 무리의 유니콘이 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유니콘이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는 점이다”라고 입력하면, “과학자들이 이 유니콘의 독특한 뿔을 보고 특정 이름을 붙였으며, 네 개의 뿔이 달린 은백색 유니콘이 예전에 발견된 적이 없었다”와 같은 스토리를 끊임없이 생산한다. 

 

피그카소의 작품과 AI의 뉴스. 이 둘의 공통점은 진짜와 가짜의 구별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들어내는 일은 여태껏 인간의 창조 영역에 속한 것이었다. 저널리즘의 본령을 팩트 보도에 국한시킨다면, 그 운명은 가히 풍전등화다.  

 

가짜뉴스의 실체

팩트가 빠진 뉴스를 가짜뉴스라고 명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렇다면 팩트에 충실하게 뉴스를 만드는 일도 쉬운 일 같은데, 이게 그렇지가 않다. 왜 그럴까. 벌거벗은 임금님의 우화가 좋은 사례다. 궁정 엘리트들은 결코 벌거벗은 몸을 지적하지 못한다. 외려, 나체의 팩트를 외면하고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을 걸치고 계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가 두렵기 때문이다. 이 고정관념은 흔히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입장에 기인한다. 

 

여기 가짜뉴스의 실체가 있다. 고정관념에 맞춰 스토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신의 관점에 끼워 맞출 때 가짜뉴스는 만들어진다. 특정 국가, 특정 문화, 특정 인물에 대한 고정관념에 갇혀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이 후기자본주의적인 현상, 바로 스토리텔링의 현상이다. 뉴스 생산자 자신 또는 자신이 속한 언론사의 암묵적 압박 속에서 자신의 코드에 맞게, 또는 대중이 원하는 코드에 맞게 기사를 생산해야 하는 문화자본의 구조다.

 

사실, 스토리텔링의 문제는 영화의 문제와 같다. 영화는 현실을 담고 있는 것 같지만, 외려 현실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 된다. 그것은 현실의 재구성이지, 현실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복합적이고 모순적이며, 무엇보다 우리의 생각과 달라서, 각자의 관점과 달라서 늘 우리를 놀라게 하는, 변화하는 현실은 영화 속에서 완전히 포착되지 못한다. 늘 현실의 절반쯤 담아내는 것이 영화다. 뉴스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스토리텔링에 지배당하면 영화의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현실에 가장 가까운 것은 저널리즘

이렇게 보면, 하나의 뉴스에 몇 개의, 몇 퍼센트의 팩트가 들어가 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팩트 하나만 갖고서도 얼마든지 뉴스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뉴스가 얼마만큼의 팩트에 기반하고 있는가를 따지는 일은 그래서 다소 지루한 일일 뿐만 아니라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다. 가짜뉴스냐 아니냐 하는 것은 외려 관점과 해석이 실제 현실과 맞아 떨어지는가에 달려있다. 가령, 기자가 이미 갖고 있는 관점이나 고정관념이 현실과 맞지 않을 때, 과감히 자신의 그것을 변화시키거나 버리고 현실을 담으면 그것은 진짜뉴스가 된다. 물론 팩트 자체가 틀리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은 당연히 가짜뉴스이나, 이것 자체를 색출하는 것이라면 사회적 논의는 불필요하게 되며, 이런 류의 글조차 필요 없게 된다. 팩트체크 기법을 개발하거나 대규모의 팩트체크센터를 가동시키면 될 일이다. 기존의 사법체계 속에서도 규제할 수 있다.

 

현실에 가장 가까운 것은 피그카소의 작품인가, AI의 뉴스인가, 아니면 저널리즘인가. 그것은 저널리즘일지 모른다. 현실을 구성하는 가치와 이데올로기를 창조하는 인간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단, 나체의 임금님이 나체라는 지극히 단순하고 현실적인 팩트를 포착할 수 있는 ‘관점’만 있다면 말이다. 그런 한에서만 저널리즘은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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