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_
<특별기고>이용마가 남긴 숙제
이진순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
등록 2019.08.30 15:06
조회 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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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영결식장에서 환하게 웃는 그의 여윈 얼굴 옆에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라는 책 제목이 적힌 현수막을 보는 순간, 가슴에 송곳이 박히듯 뜨끔했다. 내심 며칠째 다른 생각에 빠져있는 중이었다. 


“세상은 바뀔 수 있는 걸까? 세상은 바뀌지 않는 것 같아...” 


한 가닥 염치도 없이 막무가내로 자기 기득권을 품고 지키려는 이들의 완강한 저항아래 세상은 여전히 요지부동이고, 맨발로 내달리는 사람들의 처절한 호소에도 무엇 하나 기대만큼 달라진 게 없는 막막함. 촛불항쟁 이후 헌법도, 선거제도도, 언론도, 정당도, 권력기관도 근본적 개혁 없이, 젖은 장작 연기만 요란하듯이 이어지는 헛된 말들의 성찬과 퍼포먼스... 하루하루가 무력감과 실망감과 배신감으로 맥 빠지는 나날이었는데, 나와 같은 유약한 이들의 골수에 번개를 내리꽂듯, 이용마가 온 삶을 걸고 세상에 던진 헤드라인이 거기 걸려 있었다.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그가 던진 질타에 무언가 답신을 써야한다고 느꼈다. 집에 돌아와 오래 묵은 그와의 인터뷰 녹취록을 찾아읽었다. 2016년 12월 7일의 기록. 국회에서 박근혜 탄핵안이 가결되기 이틀 전. 그가 회생이 어려운 희귀암 판정을 받고 수술도 포기한 채 요양에 들어간 지 석달 쯤 되는 시점이었다. 한겨레 토요판 지면에 그의 인터뷰를 쓴다는 핑계로 투병 중인 이용마를 찾았을 때, 그는 경기도 축령산 깊은 계곡의 한 원불교 요양원에서 자연요법으로 자기 몸을 다스리는 중이었다. 

 

광장의 촛불이 거센 파도를 일으키고 바다를 이루던 때, 그는 바람소리 가득한 적막한 산 속에서 두꺼운 파카를 입고 자박자박 혼자 걷고 있었다. 그가 매일 산책하는 코스라며 요양원 부근의 계곡길을 뒷짐 지고 걸었고, 요양원을 지키는 순둥이 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를 따랐다. 그때 알았다. 얼기 직전의 계곡물이 얼마나 적요하고 투명하고 조용한지, 철철 흐르던 여름 계곡수가 요동을 멈추고 머금었던 기포를 서서히 내놓으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고요하게 월동을 준비할 때 그 물이 얼마나 큰 에너지를 응축하고 있는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인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시간을 소중하게 되살리려는 그의 형형한 눈빛이 겨울철 계곡수처럼 맑고 투명했다. 무성했던 잎을 떨구고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겨울나무 사이를 걸을 때 이용마는 한 그루 나무 그림자 같았다. 생명의 골수 알짜배기만 옹골차게 그러모아 안으로 깊이 다져넣고 다음해 봄에 싹을 틔울 강인한 음모를 진행중인 나목처럼 그는 살아있었다. 그 어느때보다도 생생하게 그 어느때보다도 치열하게. 

 

이용마는 인터넷을 통해서 당시 촛불정국을 열심히 모니터하고 있다고 했다. 촛불시민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최고의 항암제라며 함박웃음을 지었지만, 감격의 파도가 지나간 자리 탄핵 이후의 상황을 그는 또한 깊이 염려하고 고민했다. 


“이번 촛불시위에서 한가지 놀란 게 있어요. 야당(민주당)도 그렇고 비박도 그렇고 결국 촛불시위에 의해 견인 되었다는 거. 야당도 처음엔 2선후퇴네, 거국내각이네 굉장히 타협적인 자세로 나가다가 촛불집회가 생각보다 강도가 세니까 놀래가지고 점점 대통령 하야, 그리고 탄핵까지 이렇게 온 거 잖아요. 결국 아래로부터 끊임없이 국민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정치권은 절대 움직이지 않는 거. (정치인들이) 원래 인성이 나빠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국민들로부터 괴리된 사람이라 민심이 어디 있는지 헤아리지 못하는 거죠. 내일모레 탄핵이 된다고 하는데, 탄핵이 되어도 어디로 흘러갈지...”
- 걱정되세요?
“87년 6.29선언 이후에도 아래로부터의 요구라든지 이런 건 배제되고 그들만의 성을 쌓았잖아요. 탄핵이 되었다고 거기서 멈춰버린다면 사실상 또 저들만의 게임으로 들어갈 것 같아요. 지금이야말로 국가와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요구들이 응축되고 있잖아요. 전 ‘기득권세력 대 비기득권 세력’으로 정치구도가 재편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2012년 대선 때 ‘박정희냐, 노무현이냐’ 이런 황당한 구도를 야당에서 내세운 적이 있잖아요. 그건 절대 맞지 않는 구도예요. 현재 야당조차도 기득권세력의 일부가 되어서, ‘없는 사람들’ 촛불 들고 나온 시민들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해요. 국회부터 바뀌어야 해요. 없는 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정치세력을 만들어서 기존의 기득권 세력들과 대결하는 구도로 가야죠. 대통령 탄핵이야 지금 상황으로 보면 간단한 문제일 수 있지만, 새로운 정치세력들이 형성될 수 있는 기반을 이번에 마련하지 못하면 우리 사회는 또다시 현재 여야가 적당히 나눠먹는 그런 구도로 계속 갈 거라고 봅니다.”

 

이용마는 해직기간 동안 서울대 정치학과에서 <한국사회 계층균열의 등장과 정당재편성>이란 박사논문을 썼다. 그가 촛불이후 정국구도에 대해서 하는 얘기들은, 깊은 사유와 연구 끝에 내린 냉정한 분석이었다. 정권이 바뀌면 언론이 근본적으로 개혁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사뭇 비관적이었다. 공영방송사 사장을 뽑는 이사회의 구성이 여당 몫에 따라 좌우되는 폐습을 개선하기 위해, 이사 수를 늘리고 3분의 2가 찬성해야 통과되도록 하자는 특별다수제가 일각에서 대안으로 거론되던 때였다.  


“전 특별다수제에 반대해요. 차라리 그리스 아테네식으로 추첨을 해서 국민배심원제처럼 사장을 뽑는 것이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언론사 사장 뽑는 데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되는 거 아니잖아요? 대통령 뽑을 때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들만 뽑는 게 아니듯이. 기본적 상식이 있는 사람,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한 사람이면 얼마든지 가능해요. MBC, KBS 사장 뽑을 때 왜 정치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이 가서 사장을 뽑아야 하냐고요? 국민배심원제처럼 지역별로 성별, 연령별 균형 맞춰서 국민대리인단 구성하고 사장 후보들이 프레젠테이션 하는 거 보고 뽑게 하는 거예요. 언론사 사장뿐 아니라 검찰총장, 경찰청장 뽑을 때도 그런 방식을 적용하면 되요. 왜? 이게 사실상 권력기관이기 때문에요. 지금 제왕적 대통령제니까 개헌하자고 하는데 다 자기들 나눠먹기 위한 술수일 뿐이고, 대통령이 가진 인사권을 국민들이 나눠가지면 돼요. 국민들이 뽑은 사람이 대통령이나 정치권 눈치 안보고 깔끔하게 일하면 되잖아요.” 

 

이후 병이 깊어지는 와중에도 이용마는 쉼 없이 그의 주장을 한 치라도 더 전하기 위해 분골쇄신했고, 그의 주장에 힘입어 이른바 ‘이용마법’이 언론개혁을 위한 대안으로 광범위한 시민적 합의를 얻었지만 아직, 아무 것도 달라진 건 없다. 이용마법의 취지를 담은 방송법 개정안은  몇 달째 국회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있다. 촛불정부가 들어섰다지만 언론개혁을 위한 제도정비는 무엇 하나 진전이 없다. 그가 병중에도 진심으로 고뇌하고 우려했던 그대로이다.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며 힘겹게 써내려간 그의 책에는 그가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핏자국처럼 올올이 새겨져 있다.   

 

“시대에 뒤떨어진 엘리트는 과연 누가 개혁해야 하는가. 이들을 바꾸지 않으면 개혁은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 혁명보다 개혁이 훨씬 어렵다고 하지 않던가. 폐쇄적인 엘리트를 뛰어넘으려면 대중의 집합적인 지혜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상식에 입각한 대중의 의견이 의사결정 과정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359쪽 중에서)  

 

결국 이용마는 짧은 50년 생애주기 안에 그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떠났다. 그는 할 만큼 했다. 그 누구보다 꽉 차고 촘촘하고 치열한 인생을 살았다. 사력을 다해 마지막 꿈을 부여잡고 ‘포기하지 말라. 세상은 바꿀 수 있다’고 신신당부하며 떠났다. 

 

그의 영전에 눈물을 흘리고 비탄에 잠기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가 남긴 숙제를 이어받기 위해 기득권의 사슬을 끊고 더 많은 ‘없는 사람들’의 편에서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다짐은 시간이 흐를수록 눈물이 마를수록 서서히 흐려질 수도 있다. 그 아프고 따가운 양심의 각성을 가슴 깊이 불씨로 묻어 되살려 나가는 건, 아직 육신이 남아있는, 살아있는 우리들의 몫이다. 흔들리는 마음을 곧추세우며 다시금 천천히 그가 남긴 말을 되새겨 봐야겠다.      


“세상은... 바.꿀.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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