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_

평등한 언론자유를 위한 언론·법 개혁이 필요하다

‘언론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합법성의 문제
채영길(민언련 정책위원,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등록 2020.11.17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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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출처: 미디어오늘)

 

우리는 제21대 국회에서 첫 발의된 정청래 의원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포함)과 입법 예고된 법무부의 상법 개정안(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도입)을 통해 드러난 법 취지와 체계, 효과와 관련하여 우리 사회에 매우 뚜렷한 담론 경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또한 경계를 나누는 담론 진영의 성격은 이념적이라기보다 언론에 대한 정서, 태도와 관련되어 있음을 확인해야 한다. 그 경계의 성격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언론개혁의 진퇴를 결정할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확인해야 한다.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논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6월 발의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에 대해 한국신문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 직능단체는 즉각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다수 저널리즘 전공 학자들도 가짜뉴스의 개념적 취약성과 언론 및 표현의 자유 침해 가능성을 이유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언론관련 전공학자들과 법률 전문가들은 언론보도 피해구제 방식이 형사적 제재수단의 성격을 포함하고 있는 등 법 체계 문제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즉 대다수 언론사와 관련단체, 학자, 법 전문가들은 이 법안이 기존 법 취지와 체계에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헌법의 고유한 가치에 대한 도전적 내용을 담고 있다는 취지로 반대를 표명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시민들의 여론은 대조적이다.(미디어오늘, 2020.6.2) 심지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보수라고 밝힌 이들 중 73%도 법안을 지지했다. 언론 ‘징벌’에 대해 이념적 차이와 상관없이 대다수가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민사회도 전반적으로 법 취지에 동의할 뿐 아니라 징벌제라는 부정적 명칭 대신 언론개혁을 의미하는 긍정적 프레임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사나 관련 전문가가 우려하듯 개정안의 악의적 보도와 허위사실은 진위 판별이 불가능하지 않으며, 법 체계를 민사소송으로 일원화하고 사법적 판단의 방식과 용어의 모호성이 해소될 경우 언론 및 표현의 자유가 더 책임 있게 구현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의 쟁점은 어느 것 하나 정리되지 못한 채 법안을 둘러싼 대립적 상황으로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논의는 수면 아래로 잠기는 듯했다.

 

법무부 상법 개정안으로 재점화된 언론규제

 

이런 가운데 9월 28일 법무부가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위한 ‘상법 개정안’ 입법을 예고하면서 논의가 다시 점화되었다. 이번에도 언론규제와 관련한 기존 법적 감정의 대립적 경계선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는데, 차이가 있다면 언론3단체와 더불어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과 건단연(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 등 경영단체도 그들의 상업활동 자유를 침해한다며 이 법안에 대해 명백한 반대를 표명했다는 것이다. 법안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국 언론과 상업 자본이 유사한 입장을 공유하고 있는 모양새다. 관련학자들과 법률 전문가들도 이전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일반인들도 법무부 안에 대해 75% 정도가 찬성 응답을 했다(미디어오늘, 2020.11.2). 이번 여론조사에서는 질문에 ‘허위·조작 가짜뉴스’ 문구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법을 통한 언론규제에 대해서도 응답자들은 상당히 공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개 법안이 공유하는 성격은 이렇다. 각각의 법안은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향유하는 권력 주체와 그로 인해 상대적으로 그러한 권리를 박탈당한 이들을 가시적으로 구분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자유의 향유가 법적으로 불평등하고 비대칭적임을 확인해주면서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는 이에 의해 그렇지 못한 이들의 자유가 침해당하고 있음을 법안들은 암묵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래서 법안들이 다루고 있는 표현과 언론의 자유는 이념적 성격이 아니라 그런 자유의 평등한 분배를 문제 삼는 정의의 차원을 가진다. 좌·우, 보수·진보의 차이가 여론조사에서 유의미한 변인으로 나타나지 않는 이유다.

 

전경련과 건단연은 언론3단체와 더불어 (상대적으로) 더 많은 표현 및 언론의 자유를 향유해 오고 있지 않았던가? 우리 사회에서 자유조차도 임금과 자산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불평등하게 배분되어 있다. 주류 언론사와 기자가 누리는 자유가 언론의 자유라고 주장하는 이들과, 시민들이 향유하고자 갈망하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는 현실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음을 주장하는 이들을 구분 짓는 경계에 두 개의 법안이 서 있다.  

 

언론자유는 가치를 넘어 분배의 문제

 

내용과 접근이 다르지만 두 개의 법안은 분명히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 그것이 핵심이다. 언론 및 법률 전문가들은 이를 기존 표현 및 언론의 자유라는 법 취지와 법 체계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법안들이 이런저런 법리적 이유로 합법성(Legality)을 결여하는 측면이 많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는 합법성에 대한 하나의 견해일 뿐이다. 또는 합법성에 대한 오해라고 할 수도 있다.

 

어떤 법의 합법성은 기존 법 취지와 법 체계 속에서만 확인되는 것이 아니다. 합법성이 그러한 실증법적 논의방식에서만 탐구되는 것이라면 법의 근본적 변화, 소위 개혁적 입법이라는 것은 항상 제한적이며 한계적 성격을 갖는다고 자임하는 셈이다. 오히려 합법성은 법의 본래 가치의 고양(inspiration)을 위해서라면 기존 법적 취지와 체계를 넘어설 수도 있음을 보장하는 도덕적 잣대여야 한다.

 

법철학자인 론 폴러(Lon L. Fuller)는 이를 법이 가진 의무의 도덕성이 아니라 ‘열망’의 도덕성(Morality of aspiration)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법의 내적 도덕성은 기존 법 체계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에 대한 갈망과 실현 의지에 의해 표현된다는 것이다. 이미 불평등하게 배분된 표현 및 언론의 자유를 부정하지 않은 채 어떻게 평등한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논의할 수 있을까? 표현 및 언론의 자유는 모두의 표현 및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재평가되고 재구성되어 평등한 자유의 확장을 진작할 때만 진정으로 합법적이지 않을까? 물론 두 개 법안이 그러한 열망을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논의해야 할 것은 더 포괄적이며 근본적인 언론 및 법의 신설과 재구조화를 통한 언론개혁 입법이다. 우리는 지금 제안된 법안들을 보류하지 않고서도 이를 추동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두 개 법안 모두 조직적으로 보류되거나 거부되고 있는 모양새다. 언론의 진정한 자유를 위한 열망이 있다면, 실증법적인 한계를 가진 법이라고 할지라도 그 한계는 일시적일 것이고 개혁적 논의의 계기라는 더 중요한 합법적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 사실 이들 법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일반 시민 목소리의 부재 또는 무시와 함께 법안에 반대하는 언론 및 관련 전문가들 목소리의 지배라는 불평등한 상황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그러나 일부만 오롯이 향유하고 있는 표현과 언론의 자유의 결과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언론포커스는?
<언론포커스>는 언론계 이슈에 대한 현실진단과 언론 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해보는 글입니다. 언론 관련 이슈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