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_

조선·동아, 자사이해 ‘고무줄 잣대’ 보도

언론보도 이해충돌, 공론장을 망가뜨린다
정연우(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정책위원, 세명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등록 2021.04.07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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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3사.png

△ 지상파 3사(MBC, KBS, SBS) ©민주언론시민연합

 

지상파 중간광고 허용 맹비난한 조선·동아

 

(수정)조선일보_지상파에 ‘중간광고’ 선물한 文정부… 특혜의 완성판_2021-04-01.jpg
 
(수정)동아일보_전파독점 지상파에 중간광고까지… 시청자는 안중에 없나_2021-04-02 사본.jpg

△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법 시행령 개정 후 언론보도

(상) 조선일보(4/1) (하) 동아일보(4/2) ©민주언론시민연합

 

이해충돌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특히 LH 사태는 기름을 부었다. 공직자나 공공기관 종사자만의 일은 아니다. 기자들도 그런 우려에 노출될 수 있다. 취재하면서 부동산 정보 또는 기업 정보를 미리 알고 이익을 챙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자 개인의 윤리보다 조직으로서 언론사 이해충돌은 훨씬 더 위험하고 큰 사회적 폐해를 불러올 수 있다.

 

얼마 전 방송통신위원회가 지상파 방송에 중간광고를 허용하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을 의결하자 조선일보동아일보 등은 “선물”,“특혜 완성판”,“시청자는 안중에도 없는가”라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이들은 종편방송 TV조선, 채널A를 운영하고 있으므로 지상파는 방송시장 특히 방송광고시장에서 직접적 경쟁자이다. 지상파 중간광고 허용에 대해 비판할 수 있고 언론으로서 보도할 만한 사안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소한 타당한 논리를 갖추는 것은 물론 엄격한 잣대로 자신들을 돌아보는 염치 정도는 있어야 했다. 종편에게 처음부터 허용된 중간광고는 시청자의 시청권을 전혀 훼손하지 않았는가에 대해 뭔가 둘러대기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광고에서 지상파와 종편의 비대칭규제가 그들이 걸핏하면 내세우던 시장원리에는 맞는지에 대한 허접한 변명이라도 필요했다. 아울러 그토록 시청권과 방송의 공공성을 소중하게 여긴다면 지상파가 공공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어떻게 사회적인 지원을 할 것인가도 함께 논의했어야 할 것이다.

 

낮뜨거운 ‘종편 특혜’ 요구, 누구였더라?

 

(수정)조선일보_시장규모 비해 사업자 너무 많아…  종편 안착 위한 대책 필요_2011-01-01.png
(수정)동아일보_미디어 빅뱅, 방송문화 선진화 계기로_2011-01-01.png
(수정)중앙일보_미디어 산업 ‘빅뱅’에 기대한다_2011-01-01.png

△ 종합편성채널 사업자 선정 직후 언론 보도(2011/1/1)

(상) 조선일보 (중) 동아일보 (하) 중앙일보 ©민주언론시민연합

 

10여 년 전으로 돌아가 보면 종편사업 승인을 받은 신문사업자인 조선일보는 2011년 1월 1일 지면을 통해 “종편이 시장에 안착하려면 케이블TV의 낮은 채널 번호를 확보해야” 하고 “규제 완화를 논의하고 있는 광고의 경우 일정 기간 동안 종편에게만 우선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도 “새롭게 출범하는 종편채널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제도적 후속조치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 중앙일보도 “정부가 새 방송사들이 시장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하면서 신문 지면을 자신들 사업의 특혜 요구 창구로 써먹었다. 민주적 여론을 조성하는 공론장인 언론이 사적 이익을 챙기는 여론조종용이 된 것이다.

 

반면 자신들이 켕기는 사안에는 아예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모르쇠’ 한다. 신문사들의 발행부수 부풀리기는 큰 사회 문제가 되었다. 저울 눈금을 속여 광고단가를 부풀리고 국민의 세금을 빼먹은 행위다. 기사형 광고는 어떠한가? 기사인 것처럼 위장한 광고로 독자를 속인다. 더 그럴듯하게 포장하려는 속셈으로 마치 취재한 것처럼 기자 이름까지 버젓이 달기도 한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에게는 안 보이고 안 들리나 보다. 또한 광고주 비위를 맞추거나 반대로 광고를 싣지 않은 광고주를 압박하는 기획기사는 얼마나 지천으로 널려 있던가? 어떤 언론은 계열사 사업을 위한 압력수단 내지는 여론몰이로 동원되기도 한다.

 

비단 신문에만 한정된 현상은 아니다. 지상파 방송을 포함하여 방송도 자유롭지 않다. 특히 민영방송은 벌써 사회적 논란이 된 적도 있다. 때로는 후원이나 토론회를 통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담론을 만들고 언론보도라는 확성기로 퍼뜨리는 방식은 작전세력이나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을 가혹하다고만 할 수도 없다. 언론인들조차 조직 이기주의에 매몰돼 있어 이해충돌에 무뎌진 조짐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사적 이익을 취하지 않았다고 구차한 변명으로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소속 언론사의 이익을 위한 취재와 보도에 대해서는 집단최면이 걸린 듯하다.

 

물론 이해충돌방지법 등으로 언론보도에 법적인 규제를 할 일은 아니다. 또한 이해충돌이 우려되는 사안이라도 보도가치가 있다면 당연히 보도해야 한다. 다만 다룰 때 최소한 이해충돌이 되지 않도록 공정하게 보도해야 한다는 윤리의식은 갖춰야 한다. 그대로 다 지켜질지 않을지언정 스스로를 규율하는 내부적인 강령이나 준칙쯤은 있어야 할 것이다.

 

사익 추구를 위한 ‘언론보도’ 유린사태

 

한국 언론의 신뢰도가 낮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사실 한국은 언론신뢰만 낮은 것이 아니다. 정치인, 학자, 종교인, 법조인에 대한 신뢰도 처참할 지경이다. 이는 단순히 직업윤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 사회는 거짓말에 대한 사회적 경계심이 낮다. 서양에서 거짓말쟁이라는 낙인은 사회적 매장이나 다름없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사임하게 된 것도 도청 자체보다 그의 거짓말이 더 큰 문제가 되었다.

 

우리는 태연히 속이고 말을 바꾸어도 관대하다. 그러다 보니 서로 믿지 못하는 것이고, 그것을 큰 문제라고 여기지도 않는 풍토다. 더구나 언론이 사익 추구를 위해 공적 자산인 보도로 왜곡해도 그다지 분노하지도, 준엄한 사회적 제재를 가하지도 않는다. 한국 언론의 신뢰가 낮은 이유를 정파적 보도 때문이라고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정치적 경제적 이해충돌에 대한 어떠한 고민과 걸러내기 없이 언론보도라는 공적 활동을 유린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희망을 포기할 수는 없다. 문제 인식은 해결의 첫 단추이기도 하다. 공정보도와 언론개혁을 다짐하는 언론노조를 비롯한 언론인단체에 조그만 기대를 걸어본다. 언론학계에 주어진 책임도 몹시 무겁다. 언론을 바로 세우는 길이면서 언론연구자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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