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_
음성적 협찬이 방송 생태계 망친다
정연우(세명대학교 교수,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
등록 2021.09.28 11:43
조회 179

24155154-79CC-D1AC-429C-EJJAM00IOUNY8P3Y0ZZI.jpeg

 △ 뉴스타파는 무분별한 협찬 방송 실태를 고발하기 위해 허구의 체리농장을 만들어 수백만 원을 주고 광고성 방송을 내보내는 전 과정을 심층 보도했다. 현행 방송법상 협찬 고지는 의무 사항이 아닌데다 방심위 사후 심의에서도 잘 걸리지 않으며, 제재 수위도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고 있다.

ⓒ 뉴스타파 화면 갈무리

 

연합뉴스가 기사형 광고 때문에 포털제휴평가위원회로부터 한 달간 게재 중단조치를 당했다. 연합뉴스는 사과를 하고 관련 사업을 전면 폐지했다. 광고를 기사로 위장하는 관행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 한국신문윤리위원회 등에서 자율적으로 심의하여 “기사와 광고를 구분하여 편집”하도록 규정한 신문법을 위반한 심의 결과가 한 달에도 수십 건씩 쏟아지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정작 실효성 있는 경고는 시장의 타율적 제재로부터 나왔다. 기사로 위장한 광고를 그대로 두면 포털 뉴스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부터 포털제휴평가위원회는 ‘물증이 드러난 광고 기사’는 적극 퇴출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음성적 협찬 만연하지만 구멍난 법적 규제

 

이러한 기만적 행태는 방송에도 만연돼 있다. 온갖 편법성 협찬으로 얼룩져 사실상 광고물이 버젓한 프로그램으로 둔갑돼 시청자를 현혹한다. 방송은 협찬을 금지하는 법적 조항조차 없다. 방송법 제73조에서 “방송사업자는 방송광고와 방송프로그램이 혼동되지 아니하도록 명확하게 구분”하게 돼 있지만 협찬은 광고유형에도 들지 못하니 법적 규제망에서 빠져 있다.

 

방송법 제74조에는 “협찬고지를 할 수 있다”고만 명시돼 방송사가 협찬을 받고 고지하지 않아도 그만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협찬주에게 광고효과를 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제작·구성하여서는 아니된다”는 규정으로 사후 심의를 하지만 잘 걸리지도 않는다. 제재 수위조차 낮아서 솜방망이 규제에 그치고 있다.

 

물론 열악한 제작환경에 놓인 독립제작사나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방송사에게 협찬은 쏠쏠한 재원 젖줄이다. 하지만 편법적 수단으로 당장은 연명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미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저 협찬으로 근근이 제작비를 맞춰 버티는 수준으로는 점점 말라갈 뿐이다. 좀 심하게 표현하자면 미지근한 가마솥 물 속 개구리 운명이 될 수도 있다.

 

글로벌 경쟁시대라지만 광고규제 푸는 게 능사 아냐

 

협찬 방송프로그램이 시장에서 얼마나 더 경쟁력을 가질 지도 회의적이다. 웹드라마·웹툰 등에는 콘텐츠 형태의 광고가 널려 있다. 광고물이지만 어지간한 방송프로그램보다도 재미 있으면서 자연스럽게 브랜드 메시지를 녹여 넣는다. 방송의 활로는 그들을 흉내 내며 쫒아갈 것이 아니라 차별화된 콘텐츠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가는 데 있다. 물론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다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새로운 가능성이 새로운 가능성이 잠재해 있음을 보여줬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우화를 조금 각색해보자. 낭떠러지에서 겨우 넝쿨을 잡고 대롱대롱 매달려 버티고 있는데 바닥에서는 무시무시한 맹수가 혀를 날름거리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위를 쳐다보니 쥐가 사각사각 갉아먹어 넝쿨은 점점 가늘어져 간다. 고개를 돌려보니 넝쿨의 벌집에서 꿀이 한 방울씩 떨어진다. 마침 배가 고팠던지라 입을 벌리고 꿀을 받아먹으니 달콤함에 온갖 근심이 잠시 잊힌다. 방송이 처한 현실에 대한 다소 지나친 비유이긴 하다. 방송을 지탱하고 있는 넝쿨은 방송에 대한 시청자들의 신뢰, 그리고 아직은 경쟁력이 조금 남아 있는 플랫폼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는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엄청난 자본을 앞세운 글로벌 미디어 기업들과 혁신으로 무장한 미디어들이 방송 시장을 집어삼키려고 속속 침투해오고 있는 형국이다. 협찬에 취해 엄중한 현실을 잊고 있을 때가 아니다. 방송통신위원회 등 정책당국의 현실 인식도 중요하다. 그저 광고 규제를 풀어주는 것은 꿀을 몇 방울 더 떨어뜨려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낭떠러지를 벗어나서 더 넓은 대륙에서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기반과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시장 상황이나 미디어 경쟁의 양상에 따라 제도와 정책도 유연하게 변화할 필요는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시장 활성화’라는 이름으로 오로지 완화만 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개릿 하딘(Garrett Hardin)은  “공유 자원은 어떤 공동의 강제적 규칙이 없다면 많은 이들의 무임승차 때문에 결국 파괴된다”고 주장했다. ‘공유지의 비극이론’이다. “공유 자원에서 규제 없이 보장되는 자유는 모두를 파멸의 길로 이끈다”는 것이다.

 

결국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뿌리삼아야

 

언론의 핵심적 공유 자원은 신뢰다. 신뢰가 바탕이 되어 언론 보도나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정보는 진실로 받아들여진다. 만약 신뢰가 없다면 기사형 광고도 협찬도, 홈쇼핑연계 판매도 힘을 못 쓸 것이다. 그런데 돈을 받아 만들고도 시치미를 떼는 기만적 행태를 내버려 둔다면 결국 언론에 대한 신뢰는 시나브로 깎이게 될 것이고, 이용자뿐 아니라 언론계 더 나아가 우리 사회 전반의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은 점차 붕괴할 것이다.

 

방송의 협찬행태는 아직 신문보다는 덜 하지만 폐해가 날로 커지고 있다. 협찬이 불가피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 경우도 방송사는 정직하고 분명하게 협찬 받은 사실을 알려서 시청자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또한 방송통신위원회는 개별 방송사업자가 음성적 협찬으로 방송 공유자산인 신뢰를 훼손하지 못하도록 법과 제도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온통 상업적 콘텐츠가 우리 눈과 귀를 유혹한다. 이미 정신세계는 상품과 기업들이 의식과 영혼을 조종할 정도이다. 상업적 오염으로 범벅 되지 않은 프로그램을 시청할 권리를 지켜줄 책임이 방송통신위원회에 있다.

 

*언론포커스는?
<언론포커스>는 언론계 이슈에 대한 현실진단과 언론 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해보는 글입니다. 언론 관련 이슈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