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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부도 약속어음, 한 번 속지 두 번 속냐? (신태섭)
등록 2013.11.04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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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 방송공정성특위를 돌아본다

고의부도 약속어음, 한 번 속지 두 번 속냐?



신태섭 (동의대 교수)




방송공정성특위 출범의 배경과 여야의 입장 차이


방송공정성특별위원회(이하 특위)는 정부조직법 개정 때문에 생긴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제출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야당으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었다. ICT(Information Communication Technology) 관련 정부기능을 신설 미래창조과학부로 통합하고, 그 안에 전담차관제를 두어 ICT산업의 견인차인 방송영상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것이 요지인데, 문제가 된 것은 주된 정책수단이 방송의 사영화와 상업주의화였다는 점이다.


방송에 대한 사적 자본의 주도권을 확대하고 공적 규제를 축소하면, 방송사들이 시청자의 기대와 욕구에 경쟁적으로 더 잘 부응하게 되어 시청자의 복지와 선택권이 향상되고, 방송사들과 관련 업체들도 점점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되어, 국가경제가 발전하고 국민생활도 향상된다는 것이 정부여당의 논리이다. 



이후, 정부여당은 직접사용채널을 통한 통신재벌의 유사종편 진입 가능성 개방, 유료방송 중심의 UHDTV 발전 로드맵 수립, 주파수 재벌 매각, 700MHz 대역 방송용 주파수의 통신용 할당 추진, 유료방송의 8VSB 허용 등 비지상파방송과 통신 등을 통한 유사방송에 대한 대기업의 지배확대와 규제완화를 추진해 왔다. 이는 공적 책무의 법률적 담지자인 지상파방송의 영역과 자원을 대기업이 지배하는 비지상파와 유사방송에게 지속적으로 넘겨주는 과정이기도 했다.


당시 야당은 그 개정안의 위험성과 부작용을 지적하며 반대했다. 그것은 지난 정권의 불법부당한 공영미디어 장악을 계승하는 또 다른 불법부당이고, 대자본의 방송지배를 확대하는 소수특권층의 공공재 약탈이며, 이미 크게 훼손된 방송공정성과 미디어 생태계의 건강성에 대한 치명타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 회복, 곧 방송 공공성을 전제로 한 ICT산업 육성정책을 요구했다. 


새누리당의 대국민·대야당 기만전술로 끝난 방송공정성특위


특위는 정부조직법 개정을 둘러싼 이 같은 대립의 산물이었다. 정부여당은 야당의 비판과 요구를 부정하고 무시하기 어려웠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지난 정권에서의 방송 독립성과 공정성 훼손을 인정하고 그 회복을 공약으로 내건 바 있었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민심도 방송장악과 그에 따른 KBS MBC YTN 연합뉴스 등 공영 미디어들의 비정상적 파행에 대해 비판적이었기 때문이다.


정부조직 개편의 방송공정성 훼손 우려, 정권에 의한 방송장악의 폐해 및 그 극복방안에 대해 논의하는 여야동수의 특위는 당시 여당과 야당에게 ‘신정부 출범에 따른 정부조직 개편’의 장기교착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피해갈 수 있는 일종의 묘책이었다. 그에 따라 여야는 금년 3월 여당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대한 야당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해직 언론인 원상회복 △방송 지배구조 개선 △제작·편성 자율성 보장 등을 논의해 개선안을 마련하는 것을 임무로 하는 특위를 6개월 한시조직으로 출범시켰다.


그러나 그 이후 새누리당은 특위를 철저히 무력화시켰다. 소위원회 구성 등에 대한 이견을 핑계로 3개월 가까이 공전시켰고, 어렵게 열린 공청회와 소위원회 회의 등에도 대부분 불출석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9월 말 종료시점이 다가오면서 새누리당과 특위에 대한 비판여론이 비등해지자, 여야는 특위 활동시간을 11월 말까지로 2개월 연장했다.


2개월 연장을 결정한 특위 전체회의에서 나온 새누리당 특위위원들의 발언은 “현행 공영방송 지배구조에 문제가 없다”, “현행 유지가 당의 입장이다”로 요약된다. 일부 새누리당 특위위원들은 활동시한 연장을 위한 본회의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지기도 했다. 6개월간 보인 새누리당 특위위원들의 행태와 발언, 박근혜 정권에 의한 방송장악의 고착화와 방송의 정권홍보 도구화, 방송 사영화와 상업주의화의 집요한 추진 등 그간의 추세로 볼 때, 정부와 새누리당은 여야가 합의한 특위의 임무를 이행할 의사가 처음부터 없었으며, 두 달 시한이 연장된 특위에서도 그 임무에 충실할 의사가 전무하다는 점 역시 명확하다


활동시한 두 달 연장, 여론무마용인가, 수신료인상용인가? 


새누리당에게 특위는 대자본의 방송지배 확대를 위한 정부조직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겉치레 지렛대에 불과했고, 그 목적은 달성되었다. 그렇다면, 새누리당은 특위 활동시한 연장에 왜 동의했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를 추정할 수 있다. 첫째는 특위 공전과 실패의 책임을 희석시키고 전가하려는 계산이다. 둘째는 수신료인상을 위해 방송공정성 개선을 위해 뭔가 논의하는 (실제로는, 논의하는 척하는) 마당을 이번 정기국회 회기까지 열어두는 것이 유리하다는 계산이다.


노골적으로 언론자유를 부정했던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과는 달리, 노태우 대통령은 ‘언론은 장악할 수도, 장악하지도 않겠다’는 약속어음(1987년 6.29선언)을 국민에게 발행하고 고의부도(5공시절의 방송장악 유지와 <보도협조>라는 이름의 보도통제 시스템 운영)를 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측근을 통해 ‘공영방송 사장은 대통령과 국정철학을 같이 해야 하고, 국가시책에 적극 호응해야 한다’는 파시스트적인 언론정책 기조를 공표하고 그것을 법을 초월해 실행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금까지 행태는 ‘고의부도 약속어음’형이다. ‘지난 정권 발생한 방송공정성의 훼손과 인터넷 언론자유의 축소를 시정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되었지만, 대통령 본인과 정부여당은 그 약속을 일절 외면하고 있다. 그리고는 정권의 방송장악 유지와 대자본에 의한 방송지배 확대에 몰두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방송공정성 회복·보장 장치를 특위에서 마련하겠다고 약속한 뒤, 정부조직법을 통과시켰고, 그후 특위를 공전시켜 약속을 파기했다. 그리고 이제, 새누리당은 수신료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한번 써먹은 부도어음을 한번 더 써먹을 궁리를 하고 있다. 연장된 두 달 동안 방송공정성을 위한 방책을 마련할 테니 수신료 인상에 동의해달라고 정부여당과 관치·주류 언론이 합창하는 또 다른 대국민·대야당 기만술이 예상되는 국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