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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모니터위원회] EBS <다큐프라임> ‘민주주의’ 모니터 보고서(2016.8.17)
등록 2016.08.17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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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조차 이념 편향적이라는 보수단체들
-EBS <다큐프라임> ‘민주주의’에 대한 이유 있는 변명-

 

지난 6월 28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전체회의에서 새누리당 한선교(경기 용인병) 의원은 EBS다큐멘터리 <다큐프라임> ‘민주주의’ (이하 <민주주의>)를 들어 “좌파의 잘못된 사관을 아이들에게 무자비하게 집어넣고 있다”고 비난했다. 심지어 한 의원은 “지들 입맛대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EBS는 교육부 통제 아래로 들어가야 한다”는 공영방송 통제 주장까지 해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한선교 의원에 앞서 자유경제원도 두 차례의 토론회를 열어 EBS의 <민주주의>는 “공정성과 학문성을 외면하고, 제작진 입맛대로 짜깁기되어 시청자를 선동하고 있다”며 EBS를 비판했다.


한선교 의원과 자유경제원의 주장처럼 EBS의 <민주주의> 시리즈는 잘못된 좌파적 사관과 왜곡된 정보로 시청자를 선동하는 내용이었을까? 민주언론시민연합 방송모니터위원회는 <민주주의> 5부작을 모니터해 다큐멘터리 속 학자들의 발언과 자료들이 자유경제원의 논리처럼 시청자들을 기만하고 있는지 분석해보았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유일한 대안 ‘민주주의’
EBS 다큐멘터리 <민주주의> 시리즈는 신자유주의와 성장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분배’의 수단을 민주주의로 규정한다. 민주주의가 불평등이 만연한 현대에 자원을 배분할 대안이라는 것이다. 


1부에서는 민주주의를 “시민들 스스로가 자원배분에 통제력을 갖겠다는 이상”으로 정의 내렸다. 다큐멘터리는 ‘선거’ ‘표현의 자유’ 등으로 파편화된 민주주의의 개념을 ‘자원배분’이란 구체적 단어로 현실화시킨다. 2부는 분배의 공적주체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다. <민주주의>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갈등’이 사실은 민주주의를 촉진하는 엔진이라고 말하며 정부가 나서서 사회적 갈등을 잘 풀어나가야 민주주의가 발전한다고 해석했다. 따라서 갈등의 해결주체로서 정부의 역할의 중요함을 강조한다.


1부와 2부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과 특징을 새롭게 재해석했다면 3부에서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의 폐단이 일으킨 불평등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요소로 보고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즉, 막대한 자본과 권력의 힘 앞에 ‘공정한 자원배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민주적 승인을 받은 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4부에서는 노동자들이 임금에 묶여 자유로운 의사결정과 참정권을 박탈당하는 배경인 ‘기업’을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불평등의 다른 원인으로 지적한다. 5부에서는 “정부와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 무엇이 문제인가?” “시민은 정부를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 등의 거대한 정부에 의한 ‘분배’, 실제 구현될 경제적 민주주의의 단점과 배경에 대해 석학들의 의견을 인용해 설명한다. ‘민주주의’는 그 개념이 많이 약해졌지만, 신자유주의 시대 분배의 유일한 대안으로서 그래도 나아갈 길은 민주주의라며 결론을 맺는다.

 

△EBS <다큐프라임> ‘민주주의’ 갈무리

 

 

성장보다 ‘분배’를 강조하고 ‘자유’보다 ‘민주’를 강조한 EBS의 다큐멘터리 <민주주의>는 보수적인 관점을 가진 경제학도라면 분명 불편할 수 있는 내용이다. 시장경제의 순기능을 옹호하고 정부나 집단의 간섭을 배제하는 정통적인 자유 지상주의를 지지하는 자유경제원의 입장에서는 <민주주의>는 부정하고 싶은 다큐멘터리일 것이다. 그러나 “공정성과 학문성을 외면하고, 제작진 입맛대로 짜깁기되어 시청자를 선동하고 있다”라는 자유경제원의 주장은 언어도단이다. ‘선동’의 근거로 자유경제원이 제시하는 것들이 형편없기 때문이다.

 

 

북한 언급하지 않으면 ‘비교육적’이라는 자유경제원
자유경제원은 <민주주의>가 ‘한국 실정에 맞지 않는다’, ‘사실이 잘못되었다’며 EBS가 ‘시청자를 선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자유경제원은 주로 <민주주의>의 방송내용이 ‘팩트’가 아니라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 팩트가 아니라는 ‘실증’을 찾아내는 식의 반박을 했다. 예컨대 자유경제원은 <민주주의> 3부 중 옥스퍼드 대학원에 합격했지만, 학비 조달계획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합격이 취소된 데미언 셰넌의 사례를 비판했다. 매년 영국에서는 약 1,000여 명의 학생이 셰넌과 같은 일을 당해 합격이 취소되며, <민주주의>는 이를 부의 차이로 인한 교육 불평등이라 평했다. 자유경제원은 “한국에서는 등록금이 없다고 합격이 취소되거나 부모의 소득으로 입학이 결정되지 않는다‘며 ”소득 증명에 의한 장학재단과 대학의 장학금 지원으로 대학을 다닐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유경제원은 영국의 사례가 한국 실정과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장학재단에 따르면 2014년 기준 148만 명이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학생 1인당 평균 빚은 1,445만원에 이른다. 한국의 수많은 학생은 빚을 진 채로 학교를 다니고, 사회에 진출하고 있다. 비싼 등록금으로 인해 아예 대학 입학을 포기하거나 도중에 그만두는 사례는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다. 합격이 취소되지 않았을 뿐, 한국의 대학생들 역시 부의 차이로 인해 교육의 불평등을 겪는 것이다. 이것을 ‘장학재단과 장학금 지원’으로 대학을 다닐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현실을 너무 모르는 주장이다.
 
또 다른 사례는 자유경제원은 1부에서 에티오피아와 보츠와나의 사례를 언급하며 “왜 북한의 기근은 언급하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민주주의> 1부에서는 1980년대 기록적인 가뭄과 대기근이 아프리카 전역을 덮쳤지만,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났던 에티오피아와 보츠와나 두 나라의 사례를 든다. 군부독재 국가이던 에티오피아는 GDP의 46%를 군사비용으로 지출하며 기근에 시달리는 시민들을 구제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반면, 1964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민주주의를 채택한 보츠와나는 곡물의 생산량이 평년보다 1/4 가까이 줄었지만, 기근이 발생하지 않았다. 보츠와나 정부는 취약계층에게 식량을 나눠주고 대규모 일자리를 공급함으로써 기근에 허덕이는 시민들을 구해냈다. 그런데 자유경제원은 아프리카의 기근을 설명하면서 1990년대 60~110만 명이 사망한 북한의 기근은 언급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북한 또한 독재 권력이 장악해 기근이 심해졌는데 북한의 기아는 '남의 일'처럼 취급하는 비교육성을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EBS <다큐프라임> ‘민주주의’ 갈무리

 

그러나 이는 너무도 황당한 억지이다. <민주주의>는 시기, 지역, 자연재해 등 같은 조건 속에서 결과가 나타난 사례와 그렇지 않은 사례를 비교해 가장 큰 차이였던 '민주주의'를 찾아 그것을 원인으로 파악한 것이다. EBS는 기근의 원인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불평등한 자원배분, 즉 민주주의의 부재에 있었음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다. 그것을 단순히 북한을 외면했다는 이유로 ‘비교육적’이라는 비판을 하는 것은 ‘비논리적’이다. 

 

또한 자유경제원은 5부의 결론인 ‘금권정치로부터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를 부정했다. 자유경제원은 슈퍼팩 등 법·제도적으로 돈에 의한 정치인 금권정치가 정립된 미국 등의 사례와는 다르게 ‘골목상권 보호를 위한 법안’ 경제민주화 법안’ 등 경제적 약자를 위한 법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봐서 한국은 금권정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이에 대한 근거로 자유경제원은 “’돈’이 권력이라면 왜 ‘대기업’은 검찰의 조사를 받고 공정거래위원회에 의해 과징금을 부과 받으며, 대기업 CEO는 일반인보다 더 많은 가중처벌을 받고 감옥에서 실형을 사느냐”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법으로 선고받은 형기를 채우지 않고 사면을 받은 정몽주 현대자동차 회장, 최태원 SK 회장, 김승현 한화 회장 등은 무엇인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적 권리는 국민에게 있다. 충분한 사회적 동의 없이 막강한 재력을 가진 대기업의 오너에게 면죄부를 발급해주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그들이 보통의 시민 이상의 혜택을 받는 것을 정부가 증명해준 셈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반인도 감옥에 가고 대기업 회장도 감옥에 간다’는 자유경제원의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EBS <다큐프라임> ‘민주주의’ 갈무리
 

자유경제원은 다름 말할 ‘자유’ 인정해야
EBS의 존립기반 가운데 하나는 ‘민주적 교육의 발전’이다. 그런 EBS가 민주주의에 대해 원론적인 얘기를 하는 것이 자유경제원의 말처럼 “공정성과 학문성을 외면한” 처사만은 아닐 것이다. 예민한 주제를 두고 방송할 경우, 구성원 모두가 만족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 결국은 이번 프로그램의 경우 민주주의에 대한 학문적 담론들을 토대로 최대한 진리를 전하고자 노력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프로그램 구성단계에서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확실하게 전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내고자 했을 것이다. EBS의 <민주주의>에서 전달하는 가치에 대해서, 한선교 의원과 자유경제원이 생각하는 가치와 다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 통제 하에 프로그램 콘텐츠를 감시하고 검열해야 한다”는 한선교 의원의 발언은 공공의 복지를 기본으로 두는 공영방송의 원칙을 무시한 몰상식한 발상이다.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를 왜곡된 사고의 전시장이라고 비판했던 자유경제원은 타당한 근거를 대어 합리적 비판을 전개해야 했으나 일방적 깎아내리기에 불과한 것으로 평가된다. <끝>

 

정리 : 김상경(방송모니터위원회 회원)

 

 

(사)민주언론시민연합(직인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