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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모니터위원회]MBC < PD수첩 > 젠더 문제 연속기획 모니터 보고서(2015.10.20)
등록 2015.10.20 15:10
조회 566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는 민언련 회원들이 모여 방송을 모니터하는 분과모임입니다. 1992년 선거보도를 감시하고자 만들어진 방송모니터위원회는 23년간 꾸준하게 모니터 모임을 유지 발전시켜왔습니다. 방송모니터위원회는 그동안 다수의 보고서를 생산하고, 매 선거마다 방송의 선거보도와 선거관련 프로그램들을 감시해왔으며, 올해의 좋은 방송 시상, 이달의 추천․유감방송 시상 등 다양한 시상과 비평 활동을 해왔습니다.
 최근에는 <민언련이 선정하는 이달의 좋은․ 나쁜 신문․방송 보도>의 선정 작업에 함께 참여하고 있으며, 매주 모니터 회의를 통해 최소 월 1건 이상의 모니터보고서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모니터 대상 프로그램은 뉴스, 시사교양, 연예오락 등 다양한 장르 중 회원들의 발제로 선정합니다. 대학생과 직장인 등 다양한 연령으로 구성된 모니터 위원회에 관심 있는 분은 민언련으로 연락주세요.

 

사회 구조적 문제의 해결을 개인에게 떠넘긴 < PD수첩 >

 

 

 2015년은 인기 코미디언 팀 '옹달샘'의 여성 혐오 발언과 유명 청년논객의 데이트 폭력 사건 등이 연이은 기폭제가 되어 여성 차별에 대해 전에 없던 격렬한 논쟁이 벌어진 해였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혐오는 비단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소위 '성(性) 역차별' 담론에서 비롯하여 소수 여성주의 운동가들을 대상으로 하던 부정적 정서가 여성 일반으로 급격하게 번지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양상이다. 젠더 갈등이 한국사회의 가장 첨예한 갈등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갈등 안에서 여성들은 여전히 차별과 폭력을 겪고 있다는 것은 이제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 PD수첩 >은 공영방송 MBC의 대표적 시사 프로그램으로서 한국사회의 첨예한 갈등과 민감한 이슈들을 외면하지 않고 다뤄왔다. 2010년, 사법부와 기업 간의 검은 거래를 폭로했던 ‘검사와 스폰서’ 편이나 이명박 정부 4대강 사업의 비합리성을 드러낸 ‘4대강 수심 6m의 비밀’ 편은 갖은 외압 속에서도 과감한 취재와 치밀한 구성, 살아있는 권력을 겨냥한 문제의식으< PD수첩 >을 최고의 탐사 보도 프로그램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2012년, 권력에 비판적인 PD들이 해고나 징계를 당한 후 < PD수첩 >은 장기간 침체의 길을 걷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MBC < PD수첩 >은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두 달간 총 5회에 걸쳐 여성 성폭력 주제를 다뤘다. 여성에 대한 혐오와 차별, 그리고 폭력이 광범위해지고 격화된 현실을 소재로 5회에 걸쳐 깊이 있게 짚어보겠다는 < PD수첩 >의 시도는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방송 후 < PD수첩 >은 시청자로부터 뭇매 수준의 비난을 받았다. 모처럼 지상파 시사프로그램에서 밀도 높게 여성 문제를 다루었는데 왜 시청자들은 이를 외면한 것일까.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는 이런 의문으로 MBC < PD수첩 >의 ‘죽음을 부르는 데이트 폭력’(6/16), ‘보복성 포르노 피해자, 나는 문란한 여자가 아닙니다’(7/21), ‘직장 상사가 당신을 성추행한다면?’(7/28), ‘2030 남성보고서: 그 남자, 왜 그녀에게 등을 돌렸는가’(8/4), ‘선생님! 저를 만지지 마세요’(8/18) 등의 5편을 모니터했다.

 

 ‘여성혐오’ 문제를 가십거리로 만든 ‘김치녀 논란’ 편
 최근 크게 논란이 되었던 ‘2030 남성보고서: 그 남자, 왜 그녀에게 등을 돌렸는가’(8/4)는 주제에 대한 접근 방식에 문제가 많다. 방송이 시작되면 남자친구가 사준 가방이 자신이 원하는 명품 브랜드가 아니라며 과격한 말을 내뱉는 여성의 영상 등 온라인상에서 논란이 되었던 이른바 ‘김치녀’ 관련 이미지가 3분여에 걸쳐 노출된다. 이에 대한 욕설과 원색적 비난도 일부분 소개된다. ‘여성혐오’ 현상 일반을 소개하려는 제작진의 의도를 감안한다 해도 납득하기 어려운 도입부이다. 자극적인 이미지를 여과 없이 노출하면서 오히려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련 방송 화면 갈무리

 

 프로그램 전체를 봐도 과연 < PD수첩 >이 ‘여성혐오’ 현상을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방송은 △자신을 양성평등 운동가라 주장하는 ‘김치녀 페이지’의 운영자 인터뷰 △남성에게만 지워지는 경제적 부담에 대한 거부감과 군복무 문제로 인해 남성이 느끼는 차별을 술자리, 카페 등지에서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남성들의 발언 △여성들의 반응 인터뷰 △소개팅에서 자연스럽게 남성이 비용을 계산하는 상황을 보여주는 실험으로 나머지 시간을 채운다. 남성과 여성의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적 원인이나 유독 여성에게 비난의 화살이 쏠리는 이유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은 찾아볼 수 없다. 결국 ‘2030 남성보고서: 그 남자, 왜 그녀에게 등을 돌렸는가’는 ‘여성혐오’ 현상과 남성의 입장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데만 골몰해 전반적인 구성에 있어 균형을 잃고 있다. ‘김치녀’ 논란을 진단하고 해결해야 할 < PD수첩 >이 SNS나 술자리에서 오가는 ‘여성혐오’ 관련 이야기들을 총정리한 모양새가 된 것이다.  

 

 다양한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해 천편일률적인 해답만 제시
 ‘2030 남성 보고서: 그 남자, 왜 그녀에게 등을 돌렸는가’ 편을 제외한 나머지 네 편의 방송은 각각 데이트 폭력, 보복성 포르노 유포, 직장 내 성추행, 교사 성추행 사건의 실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기본적으로 피해자들이 겪은 부당한 폭력을 고발했고, 범죄 예방 및 가해자 처벌 과정에서 미비한 법제와 피해자를 무력화시키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권력관계를 보여줬다.


 네 편의 < PD수첩 >은 모두 이러한 여성 성폭력에 대한 해결책으로 해외의 법률과 제도를 소개했다. ‘보복성 포르노 피해자, 나는 문란한 여자가 아닙니다’ 편에서는 영국과 일본의 리벤지 포르노 법을 소개했다. ‘죽음을 부르는 데이트 폭력’ 편에서는 영국, 미국, 호주의 관련 법안을 소개했다. ‘직장 상사가 당신을 성추행한다면?’ 편에서는 미국에서 직장 내 성폭력 사건에 적용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선생님! 저를 만지지 마세요’ 편에서는 미국의 타이틀 나인 법안을 각각 소개하고 국내 도입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 방송은 해외 제도를 단순히 제시했을 뿐 현실적으로 한국사회에 적용가능한지 깊게 검토하는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피해 사례를 소개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데 들인 시간에 비해 대안 논의의 비중이 턱없이 부족하기도 했다. 피해 사례-국내법 비판-해외 제도 소개로 이어지는 틀에 박힌 구성에서는 각 사안에 대한 세심한 검토와 고민을 찾아보기 어렵다. 시청자들이 < PD수첩 >에 기대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교과서적인 비판이 아니라 생산적인 의제를 수립하는 것이다.

 

 젠더 문제의 핵심을 비껴간 < PD수첩 >
 < PD수첩 >의 이번 연속 기획에서 또 하나 아쉬웠던 점은 핵심적인 문제의식이 클로징 멘트나 전문가의 인터뷰로만 처리된 다는 것인데 이 역시 ‘2030 남성보고서: 그 남자, 왜 그녀에게 등을 돌렸나’ 편에서 잘 드러난다. 방송에서 중앙대 이나영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보다 상대적으로 약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가정되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불안정한 심정과 상대적 박탈감을 투사하는 방식으로 혐오가 나타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여성뿐만 아니라 성적 소수자, 특정 지역의 사람, 나랑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불안정하고 불안한 감정을 투사해서 그걸 해소하고자 하는 욕망이 생기는 거예요” 최근의 여성 혐오는 남성이 더 큰 권력을 갖는 가부장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즉 권력의 문제임을 지적한 내용이다. 다른 전문가들 역시 ‘혜택은 사라지고 책임의식만 남은’ 가부장제가 여성 혐오 심리의 바탕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 PD수첩 >은 남성들이 겪는 심리적 불안의 원인이 가부장제임에도 불구하고 그 혐오의 화살이 여성에게로 돌아갔다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저 개개인의 남성이 여성들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해결책을 제시했을 뿐이다. 원인은 사회 구조적 현상에서 찾고 해결은 개인에게 떠넘기는 모순된 논리 때문에 프로그램 전체의 설득력이 상당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시사 프로그램의 경우 같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어떤 관점으로 어떻게 구성하는지에 따라, 선정적인 사건사고를 다루는 ‘연성화’에 머무를 수도, 공통적인 본질을 포착해 사회적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의미 있는 기획보도가 될 수도 있다. < PD수첩 >의 젠더 관련 기획은 전자의 경우였으며, 같은 주제를 연속으로 엮음으로써 기대할 수 있는 시너지 효과까지 이끌어내기엔 역부족인 것으로 평가된다. 단순 폭력사건으로 치부되는 사건들로부터 남성중심주의와 권력 관계 등 본질적 문제를 폭로하고, 이 점을 실마리로 하여 근본적인 해결책을 논의해야 했지만 < PD수첩 >은 이에 미치지 못했다. 해외 사례로 결론을 내는 판에 박힌 구성과 인터뷰를 나열하는 전개 방식으로는 < PD수첩 >을 외면한 시청자들의 눈길을 다시 돌리기 어려울 것이다.<끝>
 

 

정리 : 김은경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 회원)

 

 

2015년 10월 20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방송모니터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