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선정하는 '올해의 영화' & '올해의 인물'
등록 2019.01.28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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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글 이진숙 이사.jpg

 

1999년에 제작한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부터 영화계에 입문한 지 어언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결코 짧지 않은 영화 인생의 여정 중에서 어김없이 한 해를 마감하면서 습관처럼 하는 일이란 ‘내년에는 꼭 새로운 작품의 촬영에 들어가야지’란 막연한 결의를 다지는 일이다. 그러나 영화계 실상을 알고 보면 참으로 부질없고 답이 없는 계획이다.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 얼마 전 영화계를 잠시 떠나 있었던 적이 있는데, 다시 영화 인생의 리셋을 하면서 내게 새롭게 생긴 습관은 그 해를 마감하는 연말에 ‘올해의 영화, 올해의 인물’을 선정하는 일이다. 물론 나 혼자만의 의식이며, 지극히 주관적이다. 송년회 같은 곳에서 참석한 이들이 돌아가면서 덕담을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이에 대해 적당히 언급하는 정도이고, 그런 자리마저 주어지지 않는 해에는 홀로 마음속으로만 정리하고 지나가기도 한다. 그래서 몇 년도에 어떤 영화를 선정했었는지, 누구를 올해의 인물로 정했는지 헷갈릴 때도, 생각이 안날 때도 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2015년에 내 맘대로 선정한 올해의 영화는 70대 거장 감독 조지 밀러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Mad Max, Fury Road>였고, 2016년은 당연히 <밀정>일 수밖에 없었고(참고로 저는 <밀정> 기획/공동제작자입니다), 2017년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 Dunkirk>였다.

 

2018년은 성급하게도 이미 10월에 정했었다. 바로 데이미언 서젤 감독의 <퍼스트 맨, First Man>. 1969년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했던 닐 암스트롱의 실화를 그린 영화로 위대한 업적 이면에 가려진 고독한 인간의 도전과 실패, 그 과정에 배어져있는 허무함에 강렬하게 매료되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암흑과도 같은 심연의 우주 속에서 닐의 고독한 도전에 경외심을 느끼며 왠지 모를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게다가 <위플래쉬>, <라라랜드>의 성공을 잇는 85년생 천재 감독의 세 번째 작품 아니던가? 올해는 한국영화와 외화 모두 유독 실망이 컸기에 앞으로 2개월간 결코 이 영화를 뛰어넘는 걸작은 나올 것 같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그러나 젊은 천재감독이 만든 위대한 영화에의 발견은 며칠 후 술자리에서 무참히 깨지고 만다.

 

나는 몇 년째 북한학을 공부하는 중인데, 북한대학원대학교의 모 교수님과는 술을 과하게 사랑하는 공통적인 취향으로 가끔 술자리를 갖는 편이다. 어느 날, “교수님, 제가 매해 올해의 영화를 선정하는데, 이번엔 바로 <퍼스트 맨>입니다. 닐 암스트롱 어쩌고 데이미언 서젤 저쩌고...” 일장 연설을 듣고 난 후에, 교수님께서는 “근데, 그 사람, 거기 간 거 맞습니까?”라고 무심코 한마디를 던지는 것이었다.

 

아! 맞다! 수십 년간 전해져오는 그 무성한 소문들... ‘닐 암스트롱은 달에 간 적이 없다’, ‘연료가 없는데 어떻게 돌아왔는가?’, ‘1969년 그 이후에 다시 달에 간 적이 아무도 없지 않은가?’, ‘달 착륙에 관한 영상은 스탠리 큐브릭이 연출했다’ 등의 여러 가지 음모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영화 같은 현실, 현실이 더 영화 같은 작금의 현실, 영화는 절대 허구일 수밖에 없는 픽션의 장르 등 머릿속이 무척이나 뒤엉키고 있었다. 대체 나에게 있어 ‘영화란 무엇인가?’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를 자책하는 상황까지 이르면서 나의 이 성급했던 선택이 망설여졌다. 어쨌든, 결론은 ‘올해의 영화’ 선정을 취소하는 거였다. 내가 바보가 된 심정 외에 딱히 이유는 없었고, 개인적 성향상 근거 있는 음모론들 또한 존중하는 마음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 <퍼스트 맨>의 성과를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님을 밝혀둔다.

 

그리고 한 달 후에 보게 된 <보헤미안 랩소디, Bohemian Rhapsody>. 그 누가 이 영화의 이만한 성공을 예측했겠는가? 우리 모두 어릴 적 퀸을 사랑했고, 프레디 머큐리의 광기에 매혹되었고, 퀸의 주옥같은 음악을 주문처럼 외우듯이 열광했었기에 그저 그런 전기 영화를 기대했을 뿐이었다. 영화의 프롤로그에 무대 뒤의 계단을 올라가는 머큐리의 발동작을 보는 것만으로 심장 박동이 가빠지기 시작했고, 영화를 보는 내내 뜨거운 눈물이 흘렀으며, 실제와도 같은 라이브 에이드 공연 시퀀스는 가슴이 아니 몸이 터질 것 같은 환희를 경험했다. 영화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보헤미안 랩소디>는 바로 ‘올해의 영화’로 등극했다. 나 홀로 선정하는 올해의 영화는 이렇듯 주관적이며, 보잘 것 없고, 또한 쓸 데 없다.

 

그러나 아직 12월은 열흘이나 남아 있고, 나는 아직 넷플릭스 화제작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 Roma>를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에 ‘올해의 영화’는 또다시 번복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올해의 인물’은 내 주변의 많고 또 많은 인물들 중에 ‘이번 학기에 내가 맡았던 학생들’로 엄선했다. 역대 ‘올해의 인물’ 중 그룹이 선정되긴 처음이다. ‘영상문화 기획’ 수업인데, 이들은 일 년에 극장에서 영화를 한두 편정도 볼 정도로 인색하며 한 학기 동안 단 한 번도 극장에 가지 않은 학생도 꽤 된다. 이유를 물으면 그냥 재미가 없단다. ‘영화를 전공하는 젊은이들이 왜 극장에서 영화를 보지 않을까?’를 진심 걱정하면서 학기 내내 잔소리를 했던 나는 그 이유가 ‘넷플릭스’때문임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일 만 원이 넘는 극장 관람료 한 편의 가격으로 한 달간 마음껏 볼 수 있고, 기호와 취향에 맞는 영화와 드라마를 원하는 시간대에 볼 수 있는 넷플릭스 서비스가 젊은이들의 영화 소비 패턴을 완전히 바꿔버린 것이다. 종강하는 날, 나는 학생들에게 백기를 들었다. 지난 이십년간 굳게 붙들고 왔던 ‘극장상영용 영화에 대한 경외심’을 저버려야 하는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니들이 변할 리 없기 때문에 내가 변하기로 했다. 나도 넷플릭스에 빠지기로 했다.” 한 학기 내내 결코 볼 수 없었던 아이들의 환한 웃음을 처음으로 보았다. 너무 얄미웠다.

 

이렇듯 내 맘대로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은 존경할만한 사람만 선택되지는 않는다. 심지어 만나본 적도 없는 이가 선정된 적도 있다. 물론 이런 엉뚱한 결과가 있기 전에, 물론 ‘올해의 인물’은 일찌감치 한여름부터 정해놓았었다. <북조선 실록> 1,000부작 중 십여 년의 노고 끝에 30권을 출간하신 김광운 교수님(국사편찬위원회 연구원).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부터 한 달 간의 기록을 한 권씩으로 총 1,000 부작을 기획하고 있는데, 도무지 끝이 안 날 것 같은 장기적 계획을 세운 후, 이에 다가가기 위해 일분일초의 시간이라도 아껴 일상을 던지는 삶의 태도가 나 같은 미물은 절대 범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람이 사람을 매료시키고 변화하는 계기를 준다는 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각각 다른 차원으로 나를 각성하게 한 김광운과 한예종 학생들 중, 고심 끝에 나는 연말의 끄트머리에서 결국은 젊은이들을 선택했다. ‘존경심’보다는 ‘얄미움’이 나를 더 자극시켰기 때문이다. 이렇듯 ‘내 맘대로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 역시 원칙도 없고, 즉흥적이기까지 하다.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다. 어김없이 해를 마감하고, 또다시 새로운 해를 맞이할 때 의레 세우는 계획 외에 덤으로 ‘올해의 영화’, ‘올해의 인물’ 또는 ‘올해의 책’ 등을 선정하는 것을 말이다. 한 해를 살아온 ‘나’란 사람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도 하고, 혹여 그런 과정에서 내가 좋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감정은 다음 해를 살아낼 수 있는 사소한 동력이 되기도 한다.

 

이진숙 이사, ㈜영화사 하얼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