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8월호

[음악이야기] 사람과 인형이 사랑하다니? - AI 시대에 다시 보는 19세기 명작
등록 2020.08.1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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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사람처럼 노래하고 춤출 수 있을까? 공상과학영화 <그녀 Her>처럼 AI와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19세기 사람들도 자동인형이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딱히 AI라는 개념이 없던 시대였지만, 자동인형을 오페라와 발레의 주인공으로 등장 시켜 인기를 모은 재미있는 작품 두 편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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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쇼이 발레단이 공연한 레옹 들리브의 <코펠리아> 출처 유튜브 'SuperBalletgirl101' 화면 갈무리

 

레옹 들리브의 발레 <코펠리아>

코펠리우스 박사는 자기가 만든 밀랍인형 코펠리아가 언젠가 생명을 지닌 인간이 될 거라고 믿고 있다. 예쁜 인형 코펠리아는 언제나 발코니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다. 이웃 처녀 스와닐다는 자기를 아는 체도 안 하고 책만 보는 코펠리아의 정체가 궁금하다. 어느 날, 약혼자 프란츠가 코펠리아에게 구애하는 광경을 본 스와닐다는 마음이 상한다.

 

코펠리우스 박사는 저녁마다 문을 잠그고 한잔하러 나간다. 열쇠를 손에 넣은 스와닐다와 마을 처녀들은 코펠리아를 만나려고 몰래 그의 집에 들어간다. 스와닐다는 코펠리아가 인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안도한다. 어느새 코펠리우스 박사가 돌아왔다. 꼼짝없이 들키게 된 스와닐다는 코펠리아의 옷을 입고 인형의 몸짓으로 춤을 춘다. 코펠리우스 박사는 코펠리아가 드디어 사람으로 변하는 줄 착각하고 열심히 기를 불어 넣는다. 인형이 사람인지, 사람이 인형인지, 경계를 넘나드는 이 장면이 발레 <코펠리아>에서 제일 재미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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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코펠리아> 2막 중 ‘스와닐다가 인형 코펠리아 흉내 내는 장면’ (파리 오페라 발레),(링크 21:40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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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의 줄거리는 생략한다. 물론 해피엔딩이다. 1870년 5월 25일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됐다. 파리 코뮌과 보불전쟁의 정치적 혼돈 때문에 흥행 실패를 예상했지만 뜻밖에 큰 인기를 끌었고, 요즘도 세계 무대에 자주 오른다. 19세기 발레 중 헝가리 차르다슈, 폴란드 마주르카, 슬라브 주제, 중국 춤곡 등 여러 나라의 민속춤을 선보인 건 이 작품이 처음이다. 어린이처럼 천진한 등장인물들, 레옹 들리브(1836~1891)의 한없이 사랑스런 음악이 일품이다.

 

1막 서주는 은은한 호른의 화음이 이어 현악의 신비스런 멜로디가 흐른다. 코펠리우스 박사가 인형 코펠리아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바로 그 대목의 모티브다. 귀에 익은 마주르카 선율에 이어 막이 오르면 스와닐다의 솔로가 펼쳐진다. 스와닐다는 코펠리아에게 친구 하자는 제스처를 보내지만 코펠리아가 아무 반응이 없자 곤혹스러워한다. 꽤 오래전, KBS 1FM의 시그널로 사용된 적이 있어서 친숙한 선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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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닐다의 솔로 (볼쇼이 발레, 나탈리아 오시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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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놓을 수 없는 장면 하나 더! 마을 젊은이들의 춤판이 벌어진다. 스와닐다와 프란츠의 우아한 2인무에 이어서 ‘슬라브 주제와 변주’가 나온다. 중간중간 음악이 멈출 때 춤동작도 멈춘다. (아래 링크 00:27, 00:35) 얼마나 사랑스러운 춤인가! 첼로가 부드럽게 노래할 때 바이올린이 빠른 패시지를 연주하는 대목, 얼마나 맑게 울려 퍼지는지 음미해 보자. (링크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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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브 주제와 변주 (볼쇼이 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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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펠리아> 중 '슬라브 주제와 변주'가 나오는 장면. 음악이 멈추면 발레단의 춤동작도 멈추는 것이 사랑스럽다.

출처 유튜브 'SuperBalletgirl101' 화면 갈무리

 

오펜바흐 <호프만의 이야기> 중 올랭피아의 아리아

파리에서 활약한 오페레타 작곡가 자크 오펜바흐(1819~1880)의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는 시인이자 음악가인 호프만이 겪은 세 가지 사랑 이야기를 소개한다. 1막, 호프만은 사람과 똑같이 생긴 자동인형 올랭피아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오페라 대사에 따르면 ‘그녀’는 “죽었거나 산 적이 없다.” 분명한 것은 신성한 모차르트가 ‘그녀’에게 목소리를 주었다는 점이다. 인형의 태엽을 감아주자 ‘그녀’는 두 손을 흔들며 ‘숲속의 새들’이란 노래를 부른다. 재기발랄한 콜로라투라(가장 높은 음역의 소프라노) 음성인데 인형이 사람을 흉내 내는지, 사람이 인형을 흉내 내는지 알쏭달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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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바흐 <호프만의 이야기> 중 올랭피아의 아리아 ‘숲속의 새들’(소프라노 파트리샤 야네츠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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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는 예쁘지만, 어쩐지 기계 냄새가 난다. “나무에는 새들, 하늘에는 별들, 모든 것이 사랑에 빠진 소녀에게 말을 거네. 아, 부드러운 노래, 올랭피아의 노래! 이 노래는 메아리치고, 이 한숨은 그의 소심한 마음을 움직이네. 아, 사랑스런 노래, 올랭피아의 노래!”

 

매혹적인 노래에 반한 호프만은 올랭피아를 시적인 언어로 예찬하며 사랑을 고백한다. 하지만 ‘그녀’가 할 줄 아는 말은 “네, 네” 밖에 없다. ‘그녀’는 호프만과 함께 춤을 추는데, 템포가 빨라지며 멈추지 않자 호프만은 지쳐서 마룻바닥에 쓰러진다. ‘그녀’를 자기가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스팔란차니와 ‘그녀’의 눈을 만들어 준 코펠리우스는 서로 소유권을 주장하며 다툰다, 스팔란차니의 불공정한 처사에 격분한 코펠리우스는 ‘그녀’를 산산이 부숴버린다. 올랭피아에 대한 호프만의 사랑은 일장춘몽으로 끝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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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만의 이야기>에서 자동인형 올랭피아 역을 맡아서 노래하는 소프라노 파트리사 야네츠코바

출처 유튜브 'LouvergnyEdition' 화면 갈무리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는 누군가에 대한 믿음이나 기대가 상대에게 변화를 일으켜 그대로 실현되는 긍정적 효과를 말한다. 사랑과 진정성이 있으면 인형에 생명을 불어넣는 기적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19세기의 발레 <코펠리아>와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에 새겨진 피그말리온의 신화는 인공지능에 대한 요즘 사람들의 열망 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 기계가 점점 더 인간을 닮아가는 요즘, 인간이 자칫 기계를 닮아갈까 염려된다. 뇌과학자 김대식은 “인간이 기계처럼 일하면 백전백패”라고 경고했다. AI가 생활 속에 다가올수록 인간의 자유와 온기가 더욱 절실하다.

 

이채훈(클래식 칼럼니스트,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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