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자유언론, ‘실천’이 열쇠다
등록 2015.03.23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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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자유언론, ‘실천’이 열쇠다 


성한표 이사, 한겨레 전 논설주간



3월은 ‘자유언론’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리게 한 매우 중요한 달이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서 수많은 기자들이 강제 해직당하고, 거리로 쫓겨났던 때가 꼭 40년 전인 1975년 3월이었다. 그들은 단순히 동아·조선일보라는 일터에서만 쫓겨난 것이 아니라, 유신 권력에 의해 아예 ‘언론계’에서 추방당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끊임없는 집회를 통해 결집을 다지면서 윤전기가 아닌, 등사판으로 ‘신문’을 계속 만들었다. 


거리의 기자들은 1980년 더 많은 기자들이 각 언론사에서 강제해직 당하자, 이들과 함께 활판인쇄를 동원한 <말> 지를 창간했다. 이어 1988년 윤전기로 인쇄하는 일간지 <한겨레>를 창간하기에 이르렀다. 지금도 자유언론에 대한 권력의 목조르기가 지속되고 있고, 신문지면이나 방송뉴스를 보면, “이건 아닌데…”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1970년대와 80년대의 언론 상황을 체험한 사람들의 눈에는 자유언론이 이제 어떤 강풍에도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이처럼 자유언론은 수많은 언론인의 희생이 밑거름이 되어 성장해 왔다. 그렇지만 언론인들의 ‘희생’ 자체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할 일은 아니다. 그보다는 희생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일상적인 신문과 방송 제작과정에서 보여준 실천적 투쟁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마땅하다. 희생은 실천적 투쟁의 필연적인 결과로 왔던 것이고, 간혹 희생을 치르지 않고 얻은 성과도 없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의 실천적 투쟁인 것이다. 


밑거름이 된 언론인들의 희생 

1975년 3월보다 5개월 앞선 1974년 10월부터 시작된 기자들의 ‘자유언론’ 운동은 이전에 몇 차례 있었던 자유언론‘수호’선언들과는 달리, ‘실천’을 강조하는 쪽으로 전환했다. 그 출발점이 1974년 10월의 10·24선언, 곧 자유언론‘실천’선언이다. 이전의 여러 차례 집단행동은 채택한 선언문을 자기 신문에 보도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하지만 10·24선언은 동아·조선일보 기자들이 발행·편집인의 완강한 저지선을 돌파하고, 채택한 선언문을 자기 신문의 1면에 보도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그날 이후 동아·조선을 비롯한 각 신문사의 편집국 분위기는 권력의 눈치를 보는 발행·편집인과 편집간부들, 그리고 점점 더 강해지는 평기자들의 실천적 투쟁이 뒤엉켜 매일매일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런 분위기는 결국 이듬해 3월 권력의 주문을 받은 발행인에 의한 기자 대거 해직사태로 이어졌다. ‘실천’선언 이후 5개월은 기자들의 피나는 실천의 시기였다. 다른 말로 하면, 자신들의 대거 해고가 준비되던 시기였다. 


이 과정에서 조선에서는 신홍범(전 조선투위 위원장), 백기범(작고) 등 두 기자가 전재구 유정회 의원의 유신체제를 일방적으로 옹호한 기고문 ‘허점을 보이지 말자’를 신문에 게재한 것에 대해 편집국장에게 강하게 항의하다가 해직당한 사태가 일어났다. 또한 동아의 지면이 눈에 띄게 달라지자 권력의 압력으로 대기업 광고가 자취를 감췄고, 이에 따라 광고 면이 백지상태로 발간되는 이른바 ‘백지광고’ 사태로 발전했고, 시민들의 격려광고가 밀물처럼 밀려든 감동적인 상황이 전개되었다. 


노조운동의 힘은 제작현장의 일상적 노력에서

방송의 경우도, 한동안 MBC가 시청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을 때는 기자와 PD들이 해고와 투옥을 무릅쓰고 보도와 제작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프로그램을 만들었을 때다. <피디수첩>이 대표적인 프로그램이었다. 그 <피디수첩>을 만들었던 조능희 PD를 최근에 노조위원장으로 선출함으로써, 자유언론을 향한 MBC 노조원들의 뜨거운 열망이 표출되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MBC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의 변신을 바로 기대하는 것은 성급한 태도다. 노조가 맹렬히 투쟁하고 있던 그 순간에도 여전히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의 외면을 당하고 있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집단행동을 뒷받침해 주는 일상적인 실천 노력이 부족했다는 데 있다. 이것은 MBC 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부분의 언론인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다. 노조 집회에 나와서 싸우는 것에 비하면, 프로그램 제작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일은 훨씬 더 고독하고 힘든 투쟁이다. 그래서 집단행동의 현장에 나오면 사자처럼 사납다가도, 편집국이나 방송국의 위계조직 속에 들어가면 양처럼 순해지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40년 전의 ‘백지광고’ 사태 당시, 지금은 70대가 되어 있는 동아의 젊은 기자들이 ‘실천’을 가로막는 나이든 편집 책임자에게 ‘안면몰수’하고 덤볐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자유언론의 실천은 모양새 좋게 진행되는 일이 드물다. 하지만 일상적인 실천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언론인이 많아질수록 자유언론의 뿌리는 그만큼 더 깊이 내릴 수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