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인터뷰] 자유로움과 변화를 추구하는 영혼
등록 2015.03.23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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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인터뷰 | 오세민 신문모니터위원회 위원장


자유로움과 변화를 추구하는 영혼


인터뷰 정수현 회원

정리 윤예린 활동가



맑게 웃는, 연신 미소를 띤 얼굴은 인터뷰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됐다. 민언련 신문모니터위원회에서 처음 만났던 그는 항상 차분하고 조용했다. 토론을 하면 주로 경청을 하거나 양측의 입장을 부드럽게 정리해 마무리하곤 했다. 가끔 개인적으로 질문을 했을 때도 자신의 이야기만 하기보단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줬다. 그런데 인터뷰를 통해 들여다 본 그는 달랐다. 추진력이 돋보였고, 변화에 대한 내면의 에너지가 강했다. 강단 있는 말을 할 때면 눈빛이 반짝였고, 적은 말수에도 듣는 사람이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다. 진심어린 답을 위해 신중하게 단어를 선택했다. 활동 1년 만에 분과장이 된 그만의 매력이다. 신문모니터위원회의 밝은 1년이 선명하게 보였다.   


언제 민언련에 처음 오셨어요?

1년 전이요. 작년에 글쓰기 강좌를 들었어요. 글을 읽고 나면 감상이나 표현을 하고 싶은데, 제가 그런 게 부족해요. 그래서 글을 잘 쓰는 법을 배우고 싶었어요. 가성비가 좋은 곳을 찾다가 민언련 글쓰기 강좌를 알게 되었죠. 그게 이어져 민언련 회원으로 가입했어요.


대구에서 자라셨다고 들었는데요. 세민씨는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것 같아요. 이유나 배경이 있나요?

대구가 보수적이죠. 고등학교 땐 진보나 보수에 대한 개념은 몰랐고요, 활동하는 단체가 있었어요. 청소년 단체 ‘우리 세상’이라는 곳인데요, 거기서도 방송 모니터를 했어요. 주로 TV를 보고 토론하는 활동이었죠. 고2 때 신문을 보고 혼자 찾아갔어요. 활동하고 가장 먼저 간 곳이 광주였습니다. 보통 교과서에서는 광주의 참상을 교육하지 않아요. 교과서만 봐서는 몰랐습니다. 당시 제겐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그걸 계기로 진보적인 생각을 갖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작년 민언련 5·18 광주 순례도 함께 가셨죠?

네. 그 때 YMCA 사진전이 열렸어요. 작가인 김향득 씨는 시민군의 마지막 생존자로, 유적들을 찍은 사진을 전시하고 강연도 하셨죠. 우리와 만남의 시간도 가졌어요. 5·18과 관련된 유적이 많이 훼손되고 있다고 합니다. 도청도 아시아 빌딩을 짓는다고 헐렸어요. 저는 몰랐죠. 몰랐던 사실을 알아서 좋았어요. 5·18을 기념하기 위해 광주에서는 매년 금남로를 통제하고 문화제를 하는데, 그곳을 걸어볼 기회가 있었어요. 5·18 기념관도 크게 짓고 있더군요. 광주는 큰 의미가 있다고 봐요.


책을 많이 읽는다고 들었어요. 가장 좋아하는 책이 무엇인가요?

가장 감동받은 책은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에요. 주인공들이 자유롭거든요. 돈보다 이상을 향해 가는 주인공들이 많이 나와요. 내가 지향하는 삶도 그렇기 때문에 더 열광하는 것 같아요.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접한 이후로 몇 번이나 읽었어요. 지금도 여러 판본을 모을 정도로 좋아해요. 작가는 폴 고갱의 삶을 모티브로 글을 썼다고 합니다. 주인공은 성공한 은행가인데, 부인과 자식도 버리고 프랑스로 떠나 화가의 꿈을 쫓아요. 꿈에 대한 그런 광기, 제가 지향하는 삶이에요. 하나에 몰입하면 주변을 보지 않는 것이요. 본받고 싶어요. 내게는 없는 부분이거든요.


관심 있는 분야와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경제 분야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최근에는 작년에 유행했던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그리고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을 읽었어요. 경제라는 게, 보통 기업·정부가 하는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통화정책과 같은. 그런데 제가 생각하는 경제는 ‘사람이 먹고 사는 것에 대한 것’이에요. 그게 좋은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먹고 사는 게 가장 근본적인 거니까요. 그게 나아지지 않으면 민주주의도 없어요. 그래서 관심이 갑니다. 


그럼 앞으로 관심을 갖고 싶은 분야는요?

요즘 못 읽는 책이 있어요. 예를 들면, 김진숙 위원장의 『소금꽃 나무』같은 책. 이런 삶을 다룬 책은 못 보겠더라고요.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고, 분노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아직 못 봤어요. 그런 책들을 앞으로는 많이 보려고 해요. 


책 말고도 뮤지컬, 연극 등 문화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다고 하던데요. 이런 쪽 얘기도 들려주세요. 

음악과 공연을 좋아해요. 취미죠. 홍대 클럽 공연을 가면 보통 청중이 열 명에서 스무 명 사이에요. 만원을 내면 공연을 하는 네 팀이 수입을 나눠서 가져가더라고요. 음악을 좋아하면 그렇게라도 가서 듣는 게 예의라고 생각도 했고요. 음악을 하는 사람에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힘이 되고 싶어요.




요즘 특별히 고민하는 것이 있나요?

사실 산재해 있는 다양한 문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데, 제가 깊숙한 고민을 꺼려하는 것 같아요. ‘이렇게 생각해 봐야 안 될 거다’라는. 그러면 안 되는 걸 알지만요. ‘벽에 대해 저항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어요.


저항하지 못하는 것, 그런 고민에 대항하기 위해 시민단체 활동으로 연결시킨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민단체에도 여러 분야가 있는데, 언론 시민단체 활동을 하는 이유가 있나요?

세월호 사건이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언론이 무너지면 안전도 무너집니다. 모든 분야에서 언론만 제대로 된 사고를 바탕으로 보도를 하면, 저항하고 벽을 넘어서기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에요. 환경, 경제를 비롯한 다른 단체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언론인 것 같아요. 


민언련은 세민씨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활동기간이 길지는 않지만, 재미있는 곳이에요. 취미생활의 하나이기도 하고요. 조영수 처장님이 잘 챙겨주세요. 같이 술도 마시고 친해지면서 동네 형 같은 느낌도 들고요. 배울 점도 많아요. 분과도 잘 챙겨주십니다. 


민언련에 바라는 게 있다면?

활동가들에 대한 대우를 좀 더 잘해 줬으면 해요. 시민단체의 한계인 것 같은데요. 최저 임금과 과중한 업무에 시달립니다. 능력이 되는 시민단체는 노동시간을 보장하고 임금도 적정수준은 보장해야 한다고 봐요. 그래야 계속 활동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언련 활동을 하면서 1년 간 배운 것이라면?

주로 활동하는 게 모니터에요. 신문분과 활동을 통해 기사가 어떻게 좋고 어떻게 나쁜지, 여론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배워요. 신문에는 사실 숨은 의도가 있게 마련인데, 신문분과 활동을 하기 전에는 몰랐어요. 어느 정도는 그런 시야를 키운 것 같습니다. 다양한 사람과 의견을 나누고 토론할 수 있어서 내가 몰랐던 점에 대해서도 많이 배울 수 있어요. 


민언련에 들어와서 남다른 책임감과 안목으로 벌써 분과장이 되었어요. 각오가 어떠세요?

시민단체니까, 회원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고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어요. 작년 한 해 신문분과 활동을 돌이켜 봤는데, 한 게 신문 모니터밖에 없더군요. ‘내가 분과장을 하게 되면 어떻게 할까’ 라는 고민을 했어요. 행동하는 분과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기회가 되면 집회를 많이 나갔으면 해요. 강제하는 건 아니에요. 시간이 되면 같이 가요. 


분과원이 빠지거나 과제를 안 해올 때 어떻게 행동해야겠다고 생각하세요?

자발적인 활동이라 강제할 수는 없어요. 그래도 분과원의 참여도를 이끌어 내야 하는데요. 뒤풀이의 힘이 크다고 생각해요. 돈독한 관계를 다지기 위해서요. 같이 술이나 차도 마시면서 자주 봤으면 해요. 같은 회원으로서 공감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아요. 사실 저도 회원들과  뒤풀이에서 자주 만나면서 신문분과도 알게 되고 가입도 하게 됐거든요.


신문 모니터 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사실 신문을 좋아하지 않아요. 좋은 신문을 찾기 힘들어요. <한겨레>에도 실망이에요. 삼성 광고를 봤나요? 스페인까지 따라 가서 결국 하는 게 갤럭시 S 광고 아니던가요.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봐요. 광고가 없으면 운영이 안 되고, 광고 수입에 의존하게 되면 기업 위주로 돌아갈 수밖에 없죠. 자본이 개입하면 제대로 된 비판을 하기 힘들어요. 그래서 <뉴스타파>와 같은 대안 언론에 주목하고 있어요. 대안언론이 늘어나고 있긴 한데, 아직은 부족하다고 봐요. 더 널리 퍼져야죠. 


대학생 분과원들을 모집하기 위해 더 노력하실거죠?

대학생들은 학교에서 하는 활동이 많아요. 저는 민언련을 찾아오는 직장인들이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대학생은 경제력이 없다는 점에서도, 돈을 버는 사람들이 후원해야 한다고 봐요. 그래서 기업에도 민언련에서 주최하는 언론 교육 사업을 홍보했으면 해요. 물론 대학생들과는 연계해서 할 수 있는 활동을 하고요. 


민언련 뿐만 아니라 다른 시민단체에서도 2~30대 직장인을 찾기 어려워요.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시민단체 활동을 하지 않더라고요. 취미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은 4~50대가 대부분이에요. 2~30대는 취미를 가질 여유가 없는 거죠. ‘달관세대’라고 조선일보가 그러지만, 대부분 너무 여유가 없어요. 취미활동에는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드니까요. 카메라만 해도 비싸잖아요? 노동자들의 급여와 시민단체 후원금액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결인데 말이지요. 그런 사람들이 여유를 찾고 시민사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야 민언련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가 더 발전할 거라고 봅니다. 


사실 놀랐다. 그냥 개인적인 차원의 질문과 앞으로의 각오 정도만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우리는 인터뷰하며 물장구도 쳤고 산도 올랐고 스스로도 되돌아 봤다. 질문과 답을 이어갈수록 대화는 영역을 넘나들었고 폭도 넓어졌다. 오세민 분과장은 그동안 많은 고민을 해왔던 것 같다. 무엇보다 사람과 사회를 보는 시선이 인간적이고 따스했다. 그는 결국 우리가 원하는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듯하다. 책과 문화, 세상에 깃든 모든 마음에 귀 기울일 줄 아는 그의 진심이 여기 지면을 통해 조금이나마 전달되길 바란다. 서른 셋, 직장을 다니면서 시민사회활동을 통해 조금씩 꿈을 이뤄가고 있는 그의 미래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