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이념의 덫에 갇힌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2013년 11호)
등록 2013.12.02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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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의 덫에 갇힌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이완기 이사 l wklee1020@gmail.com

 

계절은 어느덧 겨울로 치닫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 불어 닥치는 찬바람은 자연의 냉기보다 훨씬 거세고 매섭다.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2013년 겨울의 문턱에 선 대한민국에는 오로지 딱 두 종류의 사람, ‘종북 좌파’와 ‘종북이 아닌 사람’만 존재하는 듯하다. 이 지극히 단순하고도 편리한 이분법 속에는 대중을 통제하고 길들이기 위한 무서운 이념의 덫이 놓여 있다. 그것은 암흑시대 기독교교회의 마녀사냥처럼, 나치의 유대인 집단학살처럼, 독재와 영구집권을 꾀했던 유신의 좌파몰이처럼 대중을 광기로 몰아넣는다.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는 사회변화의 속도와 방향에서 차이가 있을 뿐 어느 한 쪽이 좋고 나쁜 선악의 개념이 아니다. 좌우의 기원은 프랑스 혁명 당시 의회 좌측에 앉았던 진보성향의 의원을 좌파, 우측에 앉았던 보수성향의 의원을 우파라고 불렀던 데서 유래됐고 “진보는 좌파, 보수는 우파”라는 등식은 거기서부터 싹텄다. 하지만 소비에트연방이 무너질 당시 공산주의 이념을 고수하려했던 좌파는 보수였고 개방과 시장경제로의 변화를 꾀하려 했던 우파는 진보였다. 오늘날 좌파는 시장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필요로 하며 분배의 균형과 복지를 중시하는 반면, 우파는 국가의 개입을 가급적 피하고 시장과 경쟁의 원리에 따른 성과와 배분을 중시하는 개념으로 정립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가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극단적 선악의 개념처럼 등장한 것은 친일 독재세력과 일제강점기 때부터 권력에 빌붙어 여론을 왜곡해 왔던 족벌언론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 공작이었다. 이른바 보수 언론과 보수 정권은 북한식 표현이나 용어의 사용 또는 북한과 조금이라도 흡사한 정책만 보아도 ‘종북좌파’의 색깔을 씌워 마녀사냥을 일삼아 왔다. 이러한 이념조작은 6.25 이전 세대와 반공주의에 길들여진 냉전세대들의 정서를 자극해 보수정권의 정치적 이익에 일조했다.

 

지난 대선에서 보수의 지지기반 위에 복지와 경제민주화라는 진보적 가치를 아우르면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집권한 박근혜 정부가 출범 1년이 가까워진 현 시점에서 화장실 갔다 온 사람처럼 억지사기(抑止詐欺)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현실은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그가 약속했던 중요한 진보적 공약들은 대부분 훼손 또는 폐기됐고, ‘국민대통합’ 역시 영남 일색의 인사와 “우리가 남이가”로 상징되는 지역감정의 대부 김기춘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함으로써 완전히 실종됐다. 지금은 종북을 표적으로 한 ‘좌파사냥’의 광풍만 연일 불어대고 있다.

 

청와대, 국정원, 법무부, 군, 검찰, 경찰 등이 보여주고 있는 박 정권의 현재 모습은 이제 국회와 국민을 농락하고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고위공직에서 국가의 녹을 먹었던 자들이 국회 국정감사장에 나와 선서를 거부하고, 국민세금으로 조직적 선거범죄를 저지른 국정원, 군, 국가보훈처 등 국가기관들이 죄의식은커녕 “국민도 심리전 대상이다”며 으름장을 놓는다. 법무부는 뒤늦게나마 국정원의 선거개입과 경찰의 범죄은폐를 밝혀낸 검찰총장을 쫓아낸다. 총장 공석 중에 검찰의 윗선은 새로 드러난 범죄사실을 보고받고도 “야당 도울 일 있냐”며 수사를 중단시킨다. 이러한 부당 지시에 불복하고 양심에 따라 수사를 강행한 검사는 지시불이행으로 중징계하고, 부당한 지시로 수사를 중단시킨 검사는 무혐의 처리한다. 법을 앞세워 국민을 겁박해 왔던 박근혜 정권은 급기야 통진당에 대한 해산을 청구하기에 이르렀다.

 

자신들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검사는 ‘운동권 검사’요 자신들의 입장에 배치되는 판결을 하면 ‘좌파 판사’로 매도하는 박근혜 정권은 더 이상 민주사회의 진정한 ‘보수정부’가 아니다. 전교조와 전공노 등 노동조합의 자율권을 박탈하고, 자신들의 이념에 거슬리면 ‘종북정당’으로 낙인찍어 정당을 해산시키는 박근혜 정권은 ‘보수’의 탈을 쓴 반민주 파시스트 정권일 뿐이다.

 

국회는 통법부로 전락했고 방송은 정권의 충견이 된지 오래며 족벌언론은 진보와 보수의 틀을 이용해 대중 길들이기를 위한 의제발굴에 여념이 없다. 진보와 보수의 틀은 친일독재세력과 족벌언론이 만든 마녀사냥의 덫이다. 이제 그 틀을 깨고 민주와 반민주, 거짓과 진실, 선과 악, 정의와 불의를 가려내기 위해 두 눈 부릅뜨고 투쟁의 길로 나서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