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협상결렬이후 부안사태' 관련 신문 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3.11.19)
등록 2013.08.07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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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군민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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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핵폐기장 백지화 범부안군민대책위'는 정부와의 협상 중단을 선언했으며, 이날 밤 늦게까지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민관 합동 공동협의회가 구성되면서 부안 핵 폐기장 건설 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해결 창구'가 마련되는 듯 했으나, '연내 주민투표 실시'를 약속했던 정부가 입장을 바꾸면서 부안 군민들이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이지만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신문들은 이 사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심지어 18일 부안군의 격렬한 시위를 두고 이들 신문은 부안 군민들이 '억지 주장'을 펼치는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며, '강경진압'까지 주장하고 나섰다.


가장 문제가 많은 것은 동아일보보도다. 동아일보는 31면 <부안核대책위 19일 낮 집회>에서 17일 시위의 극렬함을 부각하며 19일 진행될 집회에 대해 우려했다. 또한 "정부측은 주민투표법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되려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연내 주민투표 실시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라며 정부측의 의견을 비중 있게 실었다.
동아일보는 부안문제의 해결을 위해 정부의 '강경한 시위진압'을 주장하고 나섰다. 사설 <화염병 던지며 주민투표 요구하나>에서 동아는 "…무법상태가 계속되는데도 정부의 대응이 너무 안이하다"며 "정부는 언제까지 부안의 폭력사태를 방치할 것인가"라고 질타했다. 동아는 노 대통령의 '폭력시위' 관련 발언에 대해 "부안사태 관련이라고 명백히 밝히지 않아 유감"이라며 "정부는 부안에서 폭력시위로 압박하는 대화에 더 끌려다녀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주민투표'에 대해서도 "군수가 두들겨 맞고 시위진압 전경에게 밥을 판 식당이 테러를 당하는 분위기에서 무슨 주민투표를 하자는 것"이냐며 "국회에 계류중인 주민투표법이 통과된 뒤 시행령까지 만들려면 다소 시일이 소요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연내 실시 요구 무리…다른 국책사업에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며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조선일보 4면 <부안 핵폐기장 다시 '핵충돌'>도 왜곡이 심했다. 조선일보는 "사태는 정부가 17일 연내 투표불가 방침을 공표하면서 격해지기 시작했다"면서도 정부의 '연내 주민투표 불가' 방침이 '말 바꾸기'였다는 사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날 밤 부안수협 앞에서 촛불집회를 마친 부안 주민 1000여명이 화염병 수십개를 던지고 LP가스통 및 폐타이어 수십개를 불태웠다"며 시위의 극렬성 만을 부각했다. 조선은 "부안(주민)측에서는 11월 들어…'백지화 방안을 내놓지 않는 한 14일 이후의 대화는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뜻을 밝혀오다가 정부 일각에서 '주민 의견을 묻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놓자 그 시기를 놓고 다시 맞섰다"며 주민투표 시기를 놓고 정부와 주민들이 이견을 좁히지 못해 사태가 격렬해진 것처럼 호도 했다. 또한 '주민투표'에 대해서 정부안에서도 이견이 있다는 점을 부각해 사실상 '주민투표' 반대 의견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보인다.


중앙일보 역시 부안군민의 시위에 대해 '강경진압'을 주문했다. 오늘자(19일자) 사설 <'폭력 시위 엄단' 말로만 안 끝나게>는 노 대통령의 '폭력시위' 관련 발언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 사설에서 중앙은 "오늘로 예정된 전국농민대회와 원전센터 설치를 반대하는 전북 부안 주민의 집회에 대해 경찰이 최대한 '인내진압'을 벌이겠다니 대통령의 시위문화 개선 지침을 또 말잔치로 만들 작정인가"라며 "특히 부안지역의 시위는 별개의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청와대 대변인의 설명은 납득하기 힘들다. 폭력시위 대응 원칙이 시행도 되기 전에 표류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은 18일 부안군민 시위가 격렬해진 원인이 정부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합리적인 문제해결을 촉구했다.
한겨레신문은 9면 <부안 '정부불신' 일촉즉발 긴장>에서 핵폐기장 백지화범부안군민대책위측과 주민들의 의견을 자세히 보도했다. 특히 한겨레는 부안군 핵폐기장 건설 문제에 대한 해결이 늦어지면서 주민들의 생계마저 어렵게 됐다고 지적했다. 사설 <핵 폐기장, 정부가 해결의지 보여야>에서는 "대책위가 주민투표안을 마련해 정부에 내놨으나 정부가 이를 거부함으로써 화염병과 휘발유, 농기구들이 등장하는 격렬한 시위가 다시 벌어진 것"이라며 문제의 책임이 정부측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한겨레는 정부의 입장 번복이 "정부에 대한 불신을 자초해 대책위 쪽의 설득작업을 무력화하고 부안을 다시 무정부 상태로 돌아가게 할 것"이라며 "일단 수용하고 절차나 시기를 다시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은 <기자메모-말바꾼 정부, 격해진 부안>에서 "부안 사태를 지켜본 많은 사람들은 사실 유일한 해법으로 주민투표를 꼽았다"며 "법적 구속력이 없다 해도 정부와 주민 대표가 투표에 합의하고 그 결과에 따르는 것만이 문제 해결의 지름길이라고 본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향은 정부의 입장 변화가 "한마디로 '승산없는 싸움에 목숨 걸기 싫다'는 얘기"라며 "그렇다면 주민투표를 제의할 때는 장난이었단 말인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문화일보는 사설 <부안문제를 푸는 길>에서 "어떤 형태로든 투표를 실시해 결론을 앞당기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라며 절충안을 내놓았다. 문화는 투표의 전제로 '자유로운 주민들의 의사표명을 가능하케 하는 분위기'와 '정부의 적극적인 해결의지'를 들었다.


지금 부안군은 '핵폐기장 건설' 문제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몇 개월 째 주민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에 빠져있다. '연내 주민투표 실시'로 해결의 실마리가 보였던 부안군 사태가 정부의 무책임한 입장 번복으로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이런 상황임에도 일부 신문들은 사태를 왜곡해 시위의 폭력성만을 부각하며 책임을 '주민탓'으로 돌리고 있다.
부안군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정부와 협상을 진행했던 지난 몇 개월 동안 언론은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가. 왜 우리 언론은 격렬한 시위가 발생하고, 폭력사태로 사람이 다쳐야만 뒷북치듯 나서 '책임소재'만 따지는가.
'부안사태'는 언론이 단순히 '시위의 격렬성' '정부-주민갈등' 구도를 부각하고 강경진압을 부추기며 주민들이 이에 밀려 물러나는 형태로 해결될 '단순한 사안'이 아니다. 언론의 이 같은 왜곡보도는 사태를 악화시키고 장기화시킬 뿐이다.
부안사태는 원전 수거물 관리센터 건립이라는 국책사업 결정과정의 민주적 정당성 확보 문제이다. 이번 사태는 절차적 민주주의 원칙을 위배한 일방적 정책결정에 대한 주민들(이해당사자)의 문제제기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언론은 편을 가르고 책임소재를 묻기 전에 사실 보도를 통해 사태의 진실을 국민들에게 알리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 일부 언론은 도대체 누구의 언론인가. '강자의 입장'에서만 바라보지 말고 부안 군민의 입장에서 사태를 냉정하게 검토해보기 바란다. 부안 사태에 대한 언론의 진지한 취재와 사실보도를 기대한다.

 


2003년 11월 19일


(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