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미국 '란제리볼 대회' 보도사진」에 대한 민언련 매체사진비평 모임 논평(2004.1.29)
등록 2013.08.08 13:53
조회 319

 

 

선정적인, 너무나 선정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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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제38회 슈퍼 볼 경기로 흥분하고 있다. 이번 경기는 뉴 잉글랜드 패트리어츠와 캐롤라이나 팬서스가 겨루게 된다. 이 두 진출 팀이 경기가 열리는 텍사스주 휴스턴에 도착하자 미국의 팬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흥분하고 있다. 이 같은 미 국민의 미식축구에 대한 끊임없는 열기와 축제분위기는 분명 한국의 신문에서도 사실보도란 관점에서 보도가치가 충분히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1월 27일자와 28일자 국내 신문들을 보면 이번 미국의 슈퍼볼 게임에 대한 사실적인 정보나 잉글랜드 패트리어트와 캐롤라이 팬서스 등 진출 팀의 구성이나 경기 정보를 찾을 수가 없다. 그에 반해 막연한 돈에 대한 극대화와 슈퍼볼 하프타임 때 여성들이 란제리 옷을 입고하는 '란제리 볼' 경기에 대한 성적흥분이 넘쳐나고 있다.

한국 신문들에서 미국 슈퍼 볼 경기에 대한 관심은 광고료에 흥분한 보도와 선정적인 보도로 획일화되어 있다. 예를 들어, "미 슈퍼볼 광고 대박 1경기 160,000,000,000, 한 경기 광고 수입이 1억 4천만 달러(약 1천 6백억원억)"(경향신문.1.28일), "슈퍼볼 광고 30초에 26억 역대 최고, 30초당 225만 달러(약 26억 4600만원)"(문화일보 1.28일자), "슈퍼볼 광고료 225만불 '역대최고' 중계에 30초 광고 편당가격-62회 광고배정" (1월 28일자 스포츠면), "미 슈퍼볼 광고 와! 30초 27억원" (매일경제 1.28)

이들 신문들에서 기사제목은 엄청난 광고료와 이 경기를 중계하는 CBS 총 수입에 온통 신경이 집중되어 있다. 한국인으로서 이 기사를 읽다보면 슈퍼볼에 대한 미국 팬들의 열정과 기대, 그리고 경기 그 자체에 대한 본질보다는 그저 엄청난 숫자로만 슈퍼볼 경기에 대한 막연한 물질적인 환상만을 심어주고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 한국 신문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조선, 동아, 중앙, 한국일보의 경우, 기사도 기사이지만 사진을 보면 보도가치로서 본령인 슈퍼볼보다는 여성을 선정적이고 도구적으로 이용하는 이벤트적 성격의 여성 풋볼 경기인 '란제리 볼' 보도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한국 신문에 게재된 신문사진들을 보면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조선일보 2004년 1월 28일자

 

조선일보는 1월 28일자 스포츠 3면에 "미식 축구장 다 녹겠네" "내달 2일 슈퍼 볼 하프타임 때… 미 미인들 7대 7 '란제리 볼'"이란 기사제목으로 란제리 볼에 대한 자세한 경기내용과 출전하는 선수, 팀 주장들에 대한 소개 등 기사내용과 사진 두 장을 아주 크게 게재하고 있다. 한 장의 사진은 보라색 란제리 속옷을 입고 있는 '팀유포리아(Team Euporia) 선수들이 마치 속옷 광고를 하는 모델처럼 포즈를 취한 사진이고, 다른 한 장은 흰색 란제리 속옷을 입고 있는 팀 드림(Team Dream) 선수들이 두 번째 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다. 사진의 형식적 요소들을 보면 자연스런 긴머리와 미모의 얼굴로 웃고 있는 모습이고, 목에 두른 띠와 브레지어, 팬티에 리본 끈을 묶고 있다. 그리고 독특하게 시선을 머물게 하는 왼쪽 브레지어 위에 선수 번호가 적혀있고, 여성의 팬티 앞 라인이 끈으로 묶여 있는 모양이다. 이 사진만 처음 보았을 때, 란제리 볼이든 슈퍼볼이든 경기하는 선수들의 모습들이라기보다는 모델들의 속옷 광고나 치어 걸 사진처럼 보인다. 좀 더 자세히 보면, 브레지어에 적힌 번호와 팔 중간에 두르고 있는 보호대, 눈 밑에 그려져 있는 검은 선만이 이들 여성이 선수들이구나 하는 확신 아닌 막연한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사진의 출처는 로이터 뉴시스이고, 인터넷 https://blog.empas.com/neobryan/635784에 가면 오리지널 사진을 볼 수 있다. 포토 저널리즘에서 사진은 뉴스적 가치와 사진적 가치 그리고 설명적 요소들을 겸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신문사진은 사건의 뉴스성과 시의성 그리고 인간적 흥미를 지녀야 하는 뉴스적 가치와 어떤 사건의 생생한 기록성과 현장성 등 사진적 가치에 충실해야 한다. 특히 신문사진은 현실을 재현시키는 속성과 현실을 영구히 기록하는 속성, 그리고 사건에 대한 설명적 요소를 지녀야 한다. 오리지널 사진은 란제리 볼 게임이 슈퍼볼이 벌어지는 텍사스주 휴스턴 스타디움이 아닌 LA 콜로시움이란 사실을 보여주고 있고, 경기장 앞에서 무릎보호대를 하고 있는 여성 선수들의 피사체, 전체 프레임 안에서 피사체들간의 여백과 구도를 갖추고 있다.

 

◀조선일보가 인용한 사진의 원본
(로이터뉴시스/ https://blog.empas.com/neobryan/635784) 

 

그러나 조선일보에 실린 사진들은 너무나 판이한 느낌을 준다. 조선일보의 경우, 오리지널 사진에서 LA 콜로시움 경기장임을 알려주는 상단 부분과 무릎보호대가 있는 하단 부분을 삭제하고 가로로 늘리는 크로핑을 해서 꽉 찬 프레임으로 신문사진의 본질적인 가치보다는 가시적인 흥미 위주의 선정성에 충실해 보인다. 더군다나 "미식축구장 다 녹겠네"라는 타이틀과 기사내용을 보면, '남성들의 눈길을 잡아끄는 화끈한 특별이벤트… 팀 유포리아에는 실베스터 스탤론의 애인이기도 했던 주장 앤지 에버하트 …, 팀 드림은 모델 겸 영화배우 니키지어링 등…' 인기위주의 선정적인 기사들과 여성 선수 주장들이 경기에 임하는 의지와 의도 등에 내용보다는 누구누구의 애인 식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 신문을 읽는 독자들은 일차적으로 사진적으로 우롱 당하게 되고, 더 나아가 흥미위주의 선정적인 보도내용에 허탈해 할 것이다.

 

 ▲조선일보가 인용한 사진의 원본
(로이터뉴시스/ https://blog.empas.com/neobryan/635784)

 

한편 동아일보, 중앙일보 역시 조선일보와 다른 란제리 볼에 관련 사진을 1월 28일자에 게재했다. "We ♥ 슈퍼볼, 내달 2일 미 휴스턴서 열려 지구촌 마니아들 벌써 들썩" (동아일보 1.28일자 스포츠 1면), "화끈한 수퍼 보올 열기 내달 휴스턴서 개막"(중앙일보, 1.28일자 스포츠3면)이란 타이틀로 란제리 속옷을 입고 있는 똑같은 사진을 게재하고 있다. 이 사진은 오리지널 사진을 크게 확대한 사진으로 뒷 배경에는 여성 주장들이 요염한 포즈로 서있는 사진과 풋볼을 상징적으로 잡고 예쁘게 웃고 있는 여성 주장들의 사진을 합성한 것이다.

미국에서도 이 여성 풋볼 경기는 여성을 상품화하고 성적도구로서 남성들의 경기에 이용한다는 맥락에서 비난을 받고 있다. 사진의 내용과 사회적 의미라는 맥락에서 오리지널 사진 역시 성을 상품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충분한 요소가 있다. 한편으로 신문사진의 뉴스적 가치로서 의미가 없을 수도 있거나 혹은 슈퍼볼 경기가 여성을 상품화한다는 맥락을 비판하는 이미지로도 활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 신문들은 어떠한가?

 

▲동아·중앙일보가 인용한 사진


조선일보 기사 중 미국에서도 성을 상품화한다는 내용과 성적도구로 이용한다는 비난 때문에 자동차 회사 크라이슬러가 스폰서 계획을 취소했다는 내용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현지에서도 강한 비난을 받고 있는 여성풋볼 경기가 한국 주요신문들에서 아무런 비판도 없이 과대 포장되어 선정적인 사진으로 이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도 모자라 오리지널 사진을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왜곡·조작된 사진까지 크게 게재해서 사실보도에 충실하기보다는 남성적 시선의 볼거리로 과장보도하고 신문의 선정성을 심각하게 드러내고 있다.

 

2004년 1월 29일

(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