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쌀 협상' 관련 방송보도에 대한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 논평(2004.12.6)
등록 2013.08.14 17:56
조회 289

 

 

 

'쌀 개방 대세론' 몰아가는 방송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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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관세화유예 연장협상'(이하 '쌀 재협상')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방송3사가 왜곡·편파보도를 하고 있다. 지난 11월12일부터 11월27일까지 방송3사의 메인 뉴스프로그램을 모니터 한 결과 '쌀 재협상' 관련 방송 보도는 '쌀 재협상'의 본질적인 문제는 도외시 한 채 정부가 주장하는 이른바 '자동관세화론'을 바탕으로 협상의 '연내타결' 여부에만 집중하고 있다. 또 정부의 협상안을 아무런 비판 없이 그대로 수용해 쌀 개방 확대의 불가피성을 강조하거나 관세화 주장을 부각시키는 편파적인 보도태도를 보이고 있다.


MBC, 성급한 '개방불가피론'


지난 11월13일 MBC는 <"쌀 개방 반대">에서 "우리나라는 내년부터 세계무역기구 WTO협정에 따라 공산품처럼 쌀 시장을 완전히 개방하게 되어 관세로 밖에 막을 방법이 없다"고 보도했다. 11월19일 <"쌀 협상 결렬">에서도 중국과의 쌀 재협상 결렬 소식을 전하며 "중국과의 협상이 결렬되면 내년부터 자동적으로 완전 개방된다"고 보도했다. MBC는 25일에도 미국과의 협상에 실패했다며 "협상에 실패할 경우 쌀 시장은 관세화를 통한 쌀 수입자유화가 불가피하다"고 거듭 주장했다. 올해 안에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2005년 1월1일부터 관세화에 의한 개방이 이루어진다는 이른바 '자동관세화론'을 근거로 한 보도였다.
그 동안 정부는 '자동관세화론'을 근거로 올해 안에 어떤 식으로든 협상을 마무리짓는다는 협상전략을 추구해왔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주장은 명확한 근거가 없으며 UR농업협정문을 '관세화의무발생론'으로만 해석한 것이라는 비판이 여러 차례 제기된 바 있다. 통상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해석을 둘러싼 이견이 많아 협상이 실패하면 쌀 수입개방이 불가피하다고 섣불리 단정하기 어렵다. 국책기관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조차 올해가 지나더라도 일정기간 동안 협상을 더 연장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또 정부는 애초 9월말까지 쌀 재협상을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협상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MBC는 이런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정부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정부의 쌀 협상은 초읽기에 몰린 셈이다"라는 식으로 조속한 협상 타결만을 다그치는 보도 태도를 보였다.


MBC는 또 11월 19일 <개방 이겨냈다>에서 "여러 가지 사정이 우리와 비슷했던 일본은 이미 5년 전에 쌀 시장을 개방했지만 농가에는 별 영향이 없었?quot;며 쌀 시장 개방에 성공한 일본의 '사례'를 부각했다.
일본의 경우, 1999년 관세화로 전환하면서 수입쌀은 국제가격이 가장 싼 태국산 쌀을 기준으로 하고 일본 국내산 쌀값은 최고급쌀을 기준으로 해 무려 1250%가 넘는 관세상당치를 확보했으며 지금도 관세율이 490%나 된다. 또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식량자급율을 법제화하여 2010년까지 45%로 끌어올리는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반면 현재 우리나라의 식량자급율은 26.9%이고 그나마 쌀을 빼면 5%에 불과하다. 해결책이라고 예단할 수 없다. 한편, 2003년부터 관세화로 돌아선 대만은 일본과 달리 쌀 가격 급락사태를 맞아 아직 쌀 가격 회복에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 볼 때 관세화 전환이 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예단할 수 없다.


SBS, "관세화가 오히려 유리하다"


한편 SBS는 쌀 협상 관련보도에서 '우리나라가 의무수입물량 7.1∼7.5% 수준에서 관세화유예를 할 경우 관세화 하는 것이 오히려 유리하다'는 주장을 적극 반영하고 있다. SBS는 지난 11월 17일 <중국이 암초>에서 "중국이 이런 요구를 고수할 경우 시장 개방이 불가피한게 아니냐는 의견이 제시됐다"며 "5∼7%를 넘게 주면서 구태여 관세화 유예를 받아서 추가적인 공급물량을 의무적으로 져야되는 일은 도리어 국민 경제가 어렵지 않을까 생각된다"는 인터뷰를 인용했다.
11월 27일 <득실 잘 따져야>에서도 "무리한 요구를 허용할 바에야 시장을 열고 관세를 물리는 편이 더 낫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며 "의무 수입물량이 쌀 소비량의 7.5%를 넘거나, 밥쌀용으로의 시판 양이 많으면 차라리 시장개방이 나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관세화가 유리하다는 주장은 '전문가들의 분석'이 아니라 정확하게 말해 '일부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 동안 많은 전문가들은 '전면 개방을 의미하는 관세화는 불확실성이 많아 위험부담이 크다'고 주장해왔다. 관세화의 영향이 관세의 수준, 도하개발아젠다(DDA) 농업협상 결과, 세계시장가격과 환율 등 많은 변수에 의해 결정되는데다 이들 변수에 대한 예측이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SBS는 17일 보도에서 국책기관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자료를 인용하여 "중국산 쌀 가격이 톤 당 350달러"라고 밝히며, 27일 보도에서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자료를 인용해 "올해 수입된 중국쌀은 80kg 한 가마에 3만6천원 꼴로…4백%정도 관세를 물리면 중국쌀 값이 18만원을 넘어 국내 쌀보다 비싸지게 된다"고 전했다. SBS가 보도한 수치는 여러 가지 가능성 가운데 국제쌀 가격이 1톤 당 350달러이고 달러 환율이 1200원 정도로 고정될 경우를 '가정'하고 산출한 것에 불과하다. 국제쌀 가격이 언제든지 요동칠 수 있고, 달러 환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중국 쌀에 400%의 관세를 물리더라도 우리 쌀이 가격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결코 장담할 수 없다. SBS가 자료를 인용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연구자조차 "시장 개방 폭, 국제 쌀 가격, 환율 등 불확실한 개방 변수에 대한 가능성(확률)을 고려하여" '관세화'와 '관세화유예 연장' 중 어느 것이 유리한 지 분석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SBS는 또 <득실 잘 따져야>에서 "쌀 협상은 일괄 타결 방식이어서, 우리가 시장 개방을 늦추려면 국내 쌀 소비량의 8.9%를 의무적으로 수입하라는 중국의 요구와 수입쌀의 75%를 밥쌀용으로 판매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모두 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SBS의 주장처럼 양국의 무리한 요구를 모두 들어줘야 한다면 도대체 협상은 왜 하는 지 묻지 않을 수 없다. UR협상 결과에 의하면 "2005년 이후 관세화 유예 지속여부는 2004년 중 협상하며, 연장시 이해관계국에 대해 추가적이고 수락 가능한 수준의 양보(additional and acceptable concessions)가 필요"하다고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가 관세화 유예를 연장하기 위해서는 쌀 수출국들에게 '수락 가능한 수준의 양보'를 해줘야 하고, 지금 그 '양보의 수준'을 결정짓기 위해 '협상'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SBS는 '관세화유예'를 위해서는 쌀 수출국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줘야 하는 것처럼 현실을 호도했다.


KBS, 쌀 개방을 '농민문제'만으로 다뤄


한편 KBS는 지난 11월 13일 <"쌀은 우리 생명">에서 한 농민의 농민대회 참여과정을 동행취재 했다. KBS는 이 보도에서 '쌀 개방'이라는 생존권의 위협에 직면한 농민들의 처지를 생생하게 전달했다. 그 동안 방송보도에서 농민들의 시위 모습을 다룰 경우 폭력성과 과격성만을 집중부각 했으나 <"쌀은 우리 생명">은 쌀 개방 위기에 처한 농민들의 외침과 절규를 차분히 전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다른 보도에서는 KBS 역시 타 방송과 큰 차이가 없었다. 같은 날 이어진 <개방...농촌붕괴 우려>에서 KBS는 쌀 재협상문제를 농정간의 갈등 차원으로 치부하는 보도태도를 보였다. KBS는 이 보도에서 농민들의 시위배경과 정부의 대책을 기계적으로 나열한 후, 농민단체들이 정부 대응책을 미흡하다고 보고 있어 "정부의 추가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농민들의 요구는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쌀 재협상의 본질은 우리 사회에서 식량안보의 근간이 되는 '쌀'을 얼마나 자주적으로 조절, 통제해 나갈 수 있느냐에 따른 '국가적 차원'이다. 농정간의 갈등에 초점을 맞춘 보도태도는 사안의 본질을 흐리고 도시지역에 거주하는 일반 시청자들이 쌀 재협상문제를 농민들만의 문제로 오해하게 만들 우려가 크다.
KBS는 이 밖의 쌀 재협상 관련보도에서도 '시위현장 중계', '시민불편 강조', '정부 정책발표 단순전달', '쌀 재협상과정 중계', '전문가, 관료 의견 전달' 등 본질에서 비껴난 중계식 보도에 그쳐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했다.
다만 11월 8일부터 12일까지 5회 연속기획으로 보도된 '농협이 바뀌어야'의 경우, 비록 '쌀 협상' 관련 보도는 아니지만 우리 농업에 있어 중요한 과제인 '농협개혁'의 문제를 심도 깊게 다뤄 긍정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방송의 쌀 개방 관련보도들은 정확하게 예측하기 힘든 수치상의 이해득실에만 매달려 정작 쌀 농사의 중요성과 다원적 기능에 대한 접근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쌀 개방으로 인한 피해를 직접 받게 되는 농촌의 현실에 대한 심층보도도 부족하다는 평가다. 학자들과 정부관료들의 의견은 보도에 적극 반영되지만 농민들의 목소리는 시위현장에서 외치는 감정적 구호로만 표출될 뿐이었다. "한국언론이 농민을 울리고 있다", "언론이 농업을 두 번 죽이고 있다", "차라리 언론이 무관심해 주길 바란다"는 농민들의 원성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방송사들이 '쌀 협상'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어 이른바 '전문가'들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개방대세론'에 섣불리 동조하는 태도, '쌀은 농민 문제'라는 협애한 시각에서 벗어나 대안을 모색하는 보도가 필요하다. (끝)

 


2004년 12월 6일


(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