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한진중공업 비정규직 노동자 김춘봉씨 자살 관련 언론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4.12.30)
등록 2013.08.16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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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은 '국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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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7일 새벽 한진중공업 마산공장에서 '촉탁직'으로 일하던 김춘봉씨가 스스로 목을 매어 목숨을 끊었다. 지난 해 10월 근로복지공단 이용석씨와 올해 2월 현대중공업 박일수씨에 이어 세 번째 비정규직 노동자의 자살이다
김춘봉씨는 80년 입사 이후 정규직으로 20년 동안 일하다 회사측의 명퇴 압력에 시달려 '촉탁직'이라는 비정규직 노동자 신세가 되었다. 급기야 올해 연말 '촉탁직' 계약기간이 만료되면서 일자리에서 쫓겨나 생계마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자 결국 "지금 밖에서는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고 있다. 꼭 그 사항이 이루어지길 간곡히 원하고 싶다. 그렇게 하여야만 나 같은 사람도 인간 대접받을 수 있다"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버렸다.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문제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현안 중 하나이다. 최근까지도 '파견 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개정안 등 비정규직 관련법안을 놓고 정치권과 노동자, 사용자 사이에 치열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얼마 전에는 이 법들의 입법을 반대하고 '비정규직 차별철폐' 등을 요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여의도 국회 안 타워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또 우리나라 최대 자동차회사인 현대자동차가 무려 8000명에 달하는 하청 비정규직노동자들을 불법파견으로 고용한 사실이 드러나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가 여전한 가운데 일어난 이번 김춘봉씨의 자살은 단순한 '일회성 사건'으로 그칠 사안이 결코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들은 이 사안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번 김춘봉씨 자살 관련 신문보도는 비정규직문제 보도에 우리 신문이 얼마나 소홀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28일 대부분의 신문들은 이 사실을 짧게 보도하는데 그쳤고, 29일에는 경향신문이 이 사건과 관련한 노동계의 대응을 간단하게 전했을 뿐이다.


방송들도 김춘봉씨의 자살을 기껏 한 건의 스트레이트성 보도로 다루거나, 10초짜리 단신으로 보도했다. 김춘봉씨가 목숨을 끊은 12월 27일부터 29일까지 3일간 방송3사에서는 취재보도 2건(KBS, SBS)과 단신 1건(MBC)밖에 보도되지 않았다.
그나마 사건이 발생한 날 바로 소식을 전한 곳은 KBS가 유일했다.
KBS는 <비정규직 설움에…>에서 "한 비정규직 근로자가 계약연장을 거부당하자 작업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김춘봉씨의 유서 내용과 자살 이유, 유족과 사측의 반응 등을 비교적 상세히 보도했다. 특히 "김 씨는 올 연말 계약만료를 앞두고 계약연장을 요구하다 거부당하자 20여 일간 홀로 사무실에서 농성까지 벌였지만 끝내 외면당했다"며 "김 씨가 남긴 5장 분량의 유서에는 이러한 비정규직의 서러움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고 보도해 김춘봉씨가 비정규직으로 겪었을 어려운 상황을 잘 전달했다. 하지만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이 불러온 비극이라며 대책위를 구성하는 등 적극 대처하기로 했다"며 노동계의 반응을 언급하면서 "김 씨의 죽음은 비정규직 문제를 둘러싼 논란을 가열시킬 것"이라고 전망하는데 그쳐 한계를 드러냈다.
김춘봉씨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수백만명에 이르고 있음에도 KBS 보도는 정부와 사용자측의 대책마련을 촉구하거나 재발 방지를 위한 대안은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


SBS는 하루가 지난 28일 <"비정규직 철폐하라">에서 "계약연장을 거부당한 비정규직 근로자가 자살한 사건과 관련해 노동계가 성명을 내고 진상 조사에 나서는 등 파문이 커지고 있다"며 관련내용을 보도했다.
SBS의 보도는 "김씨가 남긴 다섯장이나 되는 유서에는 회사로부터 계약 연장을 거부당한데 대한 분노와 항의가 담겨 있었다"며 김춘봉씨의 유서내용을 소개하고, "민주노총은 김씨의 죽음을 계기로 노동계의 핵심 현안인 비정규직 문제를 쟁점화하기로 했다"며 노동계의 반응을 전하는 등 KBS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민주노총은 김씨를 자살로 내 몬 비정규직 제도를 즉각 철폐하라고 정부와 회사측에 요구했다"며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철폐 뿐만 아니라 정규직화도 요구해야 한다"는 노동계의 인터뷰를 싣는 등 노동계의 요구를 더욱 적극적으로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SBS는 결정적인 사실을 누락했다. KBS가 "지난 80년 이 회사에 정규직으로 입사했던 김 씨는 회사가 계약직으로 계속 근무할 수 있게 해 주겠다며 명퇴를 종용해 지난해 4월 촉탁직이라는 비정규직 신분이 됐다"며 김춘봉씨의 신분변화 과정에 대해 상세히 보도한 반면 SBS는 "한진 중공업에서 비정규직 근로자로 일해 온 김춘봉씨는…"이라고 보도하는데 그쳐 김춘봉씨가 원래 '정규직 노동자'였던 사실을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결국 '정규직 비정규직 강제해고'로까지 이어지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셈이다.


그러나 SBS의 보도는 MBC의 보도에 비한다면 그나마 나은 편이다. MBC는 28일 관련 소식을 다루면서 "한진중공업의 비정규직 노동자 김춘봉 씨가 비정규직의 문제 해결 등을 요구하며 어제 자살한 사건과 관련해 노동계는 오늘 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정부와 사용자측에 비정규직에 대한 학대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는 15초짜리 단신을 내보내는데 그쳤다. 27일과 28일 이틀에 걸쳐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한 지진 관련 소식을 무려 26건이나 보도했던 MBC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불행한 죽음에 대해서는 철저한 무관심을 보인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MBC는 지난 해 열흘 동안 무려 3명의 노동자들이 '손배가압류 철회'와 '비정규직 차별철폐' 등을 요구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도 단순보도와 무관심으로 큰 비판을 받았다. 특히 지난 해 10월 26일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조의 이용석 본부장이 분신한 것과 관련해 MBC는 단지 20초짜리 단신으로만 보도해 본회로부터 "노동문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번 MBC의 김춘봉씨 보도는 1년이 지나도록 MBC의 보도가 전혀 개선이 되지 않았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으로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신문과 방송은 연말연시를 맞아 '불우한 이웃'을 돕자며 모금운동, 캠페인 등을 벌이고 있다. 불우한 이웃을 돕자는 언론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구조적 문제에는 무관심하다. 이것이 과연 올바른 태도인가?
어느덧 비정규직 노동자는 1000만에 육박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적 논의와 지혜가 필요한 때에 이 같은 언론의 무관심은 사회적 공기로써의 모습이라 할 수 없다. 보다 적극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다뤄야 할 것이다. <끝>

 


2004년 12월 30일


(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