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진실화해위의 ‘강기훈 유서대필 의혹사건’ 진실규명 결정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7.11.16)
등록 2013.09.05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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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대필 사건’, 뼈아프게 반성하고 진실을 규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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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민주운동진영의 도덕성을 뿌리채 흔들었던 ‘강기훈 유서대필 의혹사건’(이하 ‘유서대필 의혹사건’)이 16년만에 밝혀졌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13일 ‘유서대필 의혹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국가의 사과와 재심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유서대필 의혹사건’은 강기훈 씨가 91년 5월 노태우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했던 전국민족민주연합 사회부장 김기설의 유서를 대필, 자살을 방조했다는 혐의로 처벌됐던 사건이다. 당시 정부와 검찰은 이를 빌미로 강경대 씨 사망사건으로 궁지에 몰렸던 정국을 반전시켰다. 당국은 이 사건을 빌미로 “민주화운동세력은 분신자살을 종용하는 집단”이라고 몰아갔으며, 언론 역시 ‘죽음의 굿판’ 운운하며 자신들의 정략적 의도에 따라 국민적 여론을 몰아갔다.


당시 언론보도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재야세력은 투쟁을 위해서는 분신도 불사하는 좌경 폭력세력이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죽음을 부추기는 불순세력이 분명히 우리사회에 존재한다는 단정과 민주운동세력들이 그 배후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우리 단체는 이미 1993년 12월 ‘유서대필 의혹사건’에 대한 신문보도를 비평한 <언론의 진실 감추기 -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보도>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서강대 박홍총장이 기자회견(91.5.8)을 통해 “죽음을 선동하는 검은 세력이 있다”고 발표한 이후, 언론은 ‘죽음조종 배후세력’의 존재를 기정사실로 하고 집중보도를 시작했다. 또한 조선일보는 91년 5월 19일자에 미 뉴욕타임스 보도를 인용, “분신에 배후…한국에 소문 파다”, “국제적 고립 김일성정권 지령 가능성” 등으로 보도하면서 국민감정을 묘하게 자극시켜 나갔다. 결국 연일 터져 나온 유서대필 보도는 그때까지 정권의 폭력성과 부도덕성에 비판이 쏠린 시선을 일거에 ‘누구의 필적인가?’, ‘배후세력은 과연 누구인가?’로 몰아가 버렸다.
언론은 ‘유서대필 의혹사건’에 대해서 객관적 접근과 분석이 아닌 검찰 측 보도 자료와 발표만 앵무새처럼 전했고, 이에 한발 더 나아가 이 사건을 통해 민주운동진영의 도덕성을 무너뜨리려는 정치적 악의를 드러낸 것이다. 이러한 여론몰이에 힘을 입어 당시 정권은 민주운동진영에 대한 일대 검거선풍을 일으켜 무려 백여 명에 대해 사전영장이 발부되기도 했다. 따라서 ‘유서대필 의혹사건’ 공방은 정치적 위기를 공안정국으로 돌파하려는 정권의 정치적 계산과 이에 동조하거나 과잉 충성한 언론의 합작품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한다.


16년이 지났지만 사건의 진실은 철저하게 규명되지 못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한 개인의 인간성을 송두리 채 짓밟은 검찰은 스스로 모든 진실을 밝히고, 법원 역시 재심을 받아들여 하루빨리 강기훈 씨의 명예를 회복해주어야 한다. 언론 역시 자신들의 과오를 뼈아프게 반성하고 진실을 규명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끝>

 


2007년 11월 16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