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서울의 봄, 언론의 겨울
이명재(자유언론실천재단 기획편집위원)
등록 2023.12.2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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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년 12.12 군사 반란을 모티프로 한 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윤석열 정권하 언론탄압, 결국 언론 자신의 문제

 

권력에 의한 노골적인 언론탄압의 해였던 지난 1년, 윤석열 정부의 언론정책-그것도 언론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면-의 주요한 특징은 유신이나 전두환 독재정권에다 이명박 정권하의 언론탄압 양상을 합해 놓은 것을 넘어 새로운 차원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에 대한 장악과 억압을 넘어서 언론기능 자체의 와해, 특히 공영언론의 해체를 의도하고 있다. 군사독재 정권이나 이른바 ‘보수’ 정권에서 공영언론의 친정권화를 시도하던 것과도 다른 양상이다.

 

언론탄압을 둘러싼 언론의 위기는 3중의 위기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언론자유의 위기이며, 언론의 위기이며, 한국 사회와 민주주의의 위기다. 이때 언론은 단지 억압의 대상, 그 피해자로서뿐만 아니라 한편으로 언론자유 억압의 한 주체이며, 최소한 그에 대한 방관·동조자로서 언론의 위기를 초래하며 사회 위기의 발원이 되어 왔다. 그렇게 본다면 외부로부터의 언론자유의 위협이 언론의 위기를 불러온 것이 아니라 안으로부터의 언론의 현실이 언론자유 억압을 언론의 위기로 만들고 있다.

 

밖으로부터 언론자유 위협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무엇보다 윤석열 정권의 언론에 대한 위협은 단지 탄압 일변도가 아닌 한편으로는 탄압으로, 한편으로는 권언유착을 넘어선 ‘권언 일체화’ 현상의 이중적 양상을 띠고 있다. 한편으로는 탄압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권언유착 언론으로 포섭하는 모습을 보이며 언론을 이중으로 왜곡시키고 있다. 비판적 언론에 대한 억압이 전례 없는 수준으로 벌어지는 것과 함께 TV조선 사태에서 보듯 우호적 언론의 비호에 국가권력이 거의 총동원되는 양상이다. 과거 ‘권언 유착’의 수준을 넘어선 ‘권언 일체화’라고 해야 할 상황이다.

 

여기서 짚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현 정권의 언론에 대한 억압은 일방적이며 폭주하는 양상이지만 그럼에도 최소한 그것은 합법의-준(準) 합법의-형식을 띠고 있거나 띠려고 한다는 것이다. 마침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가 1천만 관객을 넘어서면서 80년 전후 시대를 환기하고 있다. 언론환경 또한 전두환 시대는 암흑기였지만 최소한 지금의 상황은 그때의 위법 무법과는 다른 환경과 여건이다.

 

실제로 언론장악 시도가 일방적으로 통하지만은 않는, 적잖은 저항과 제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쫓기듯 사퇴한 것이 대표적인데, 그는 국회의 탄핵소추 결정을 하루 앞두고 전날 저녁 사임했다. 국회 청문회에서 언론장악의 의도를 거침없이 드러내며 국회를 무시하는 고압적인 행태를 보였던 그가 막상 국회의 탄핵안 표결 직전에 이를 피하기 위해 무릎을 꿇다시피 사표를 낸 것이다. 국회가 탄핵 심판 권능으로 굴복시킨 것이었다. 사퇴라기보다는 국회에 의한 ‘경질’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지난주에 나온 법원의 판결도 언론장악에 대한 사법부의 견제였다. 서울고법이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권태선 이사장이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낸 후임 김성근 이사 임명 처분 집행 정지 신청 항고심에서 1심대로 권 이사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2인 체제’ 방송통신위원회의 위법성을 지적했다. 무리한 공영방송 이사진 교체 등의 결정이 줄줄이 ‘위법’으로 판단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제시해 준 것이다.

 

언론의 책임으로서의 언론자유

 

권력에 의한 언론의 억압이 언론에 어떤 위협이 되느냐는 결국에는 언론 자신에 달려 있다. 예컨대 이동관 위원장 탄핵에 대해 여러 주류 언론이 보였던 시각은 지금의 언론 위기의 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여러 언론은 방송의 독립성을 짓밟고 언론자유를 유린한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 “무슨 큰 문제냐”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아예 그를 감싸고 나선 언론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검찰의 수십 차례에 걸친 언론에 대한 압수수색과 고소·고발이 언론자유를 위축시키는 공권력 남용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침묵해 왔다. 검찰의 일방적 주장을 그대로 제목에 받아쓰기했을 뿐이다.

 

이 같은 언론 억압의 이중적 상황은 ‘언론자유 지키기’에 대한 질문 이전에 ‘언론의 자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으로 들어가게 한다. 언론자유는 언론 자신의 자유 이전에 언론의 책임이다. 언론에 있어 자유를 추구하는 것은 그것이 곧 언론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언론의 책임으로서의 언론자유인 것이다.

 

자유언론실천선언 50주년에 돌아보는 언론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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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전하는 다음날 <기자협회보> ©보도사진연감

 

마침 내년은 자유언론 운동의 한 시초였던 1974년의 자유언론실천선언 50주년이 되는 해다. 윤석열 정권의 언론 탄압 상황에서 자유언론실천선언 50년을 맞는 한국 언론에 지금의 언론자유 위기는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라는 질문이 무겁게 던져지는 때다. 만약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지금에 다시 쓴다면 그것은 ‘언론의 자유와 책임 실천 선언’이 돼야 할 것이다.

 

그 같은 질문을 스스로 제대로 묻고 답하려 하지 않는다면 2024년 한국의 언론은 ‘서울의 봄’이 그렸던 40여 년 전 80년보다 오히려 더한 혹한의 시절을 맞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언론포커스>는 언론계 이슈에 대한 현실진단과 언론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글입니다. 언론관련 이슈를 통해 시민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써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