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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인사들의 ‘고교 현대사 특강’ 관련 28일 주요신문 보도에 대한 논평(2008.11.28)
등록 2013.09.25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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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들의 망언, 조중동은 뿌듯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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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서울시 교육청의 이른바 ‘고교 현대사 특강’이 서울시내 고교 10곳에서 시작됐다.
알려진 바와 같이 ‘고교 현대사 특강’은 ‘불순한 의도’와 ‘편향된 강사진’으로 물의를 빚어왔다. 서울시 교육청은 ‘좌편향적인 역사교육을 바로잡는다’면서 이 특강을 추진했으며, 극우·뉴라이트 계열 인물, 역사 교육과는 무관한 인물들로 강사진을 채웠다. 강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교육청은 역사학계 등에는 협조조차 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보수단체’의 계획안을 그대로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정권과 극우·뉴라이트 세력들이 고교 역사 교과서를 자신들의 입맛대로 바꾸려는 시도로도 부족해 교육 현장에서 극우 이데올로기를 직접 설파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편향된 역사교육을 바로 잡겠다’는 미명아래 청소년들에게 극우의 시각을 강요하는 반교육적 행태다.
아니나 다를까. 첫날부터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다. 일부 강사들은 “인권탄압 등 무리가 없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번영은 없었을지 모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결단력 있는 분이라 무리가 있더라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성공해서 대한민국이 된 것”이라며 독재와 인권유린을 찬양·미화했다. “분단을 미국이 주도하기는 했지만 삼국시대 등을 생각해 볼 때 본래 한반도는 대부분 분단국가였다”, “일본이 병합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청의 영향 아래 있었을 것”이라며 일제 침략을 정당화하고 남북 분단을 정상적인 상태인 양 왜곡하는 발언도 나왔다.
더 나아가 “자신과 주변인들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해야 하며 금방 되지도 않을 통일에 열올리지 말라”, “실제로 중요하지도 않은 것에 대해 열을 올리는 그런 행동은 유리하지 않다”며 극단적인 이기심을 조장하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이런 반교육적이고 정략적인 ‘고교 역사 특강’을 보도한 25일 조중동의 행태는 더욱 한심하다. 조중동은 ‘고교 역사 특강’의 내용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대신 ‘전교조가 특강을 막았다’는 데 보도의 초점을 맞췄다. 일제 침략과 인권유린을 노골적으로 미화한 강사들의 망언은 외면했다.

조선일보의 관련 기사 제목은 <전교조, ‘현대사 특강’ 첫날부터 막아>(10면)였다.
기사는 전교조 교사들과 참교육학부모회 회원들이 “교문 앞을 막아서며 (강사의) 차량진입을 차단했다”면서 강사가 학교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벌어진 ‘충돌’ 상황을 부각했다.
강의 내용에 대해서는 강위석 월간 에머지 발행인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재는 했지만 경제발전을 이룩한 업적은 인정해야 한다”는 말에 일부 교사들이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고 언급하는 데 그쳤다.

동아일보도 <서울 교육청 ‘현대사 특강’ 첫날 곳곳 시끌>(10면)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다. 기사는 “서울시교육청이 좌편향 교과서의 잘못된 시각을 바로잡겠다며 고교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우리 역사 바로 알기 특강’이 첫날부터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충돌사태를 빚었다”로 시작된다. 정당한 역사 교육을 전교조가 ‘방해’라도 한 듯이 다룬 것이다.
또 다른 학교의 특강 사례를 언급하면서도 “강사와 전교조 교사들 사이에 말싸움”이 벌어졌다며 ‘전교조와의 충돌’에 초점을 맞췄다.
특강 내용과 관련해서는 강의 내용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학생과 비판적으로 평가한 학생을 각각 한 명씩 인터뷰하는 한편, “상식적인 수준의 강의가 진행됐다”는 시교육청 관계자의 자평을 실었다.

중앙일보는 <고교 현대사 특강 첫날 곳곳서 마찰-전교조, 강사 진입 막아>(12면)라는 제목의 1단 기사를 실었다. 역시 “전교조 교사들이 특강강사의 학교 진입을 막으면서 소동이 벌어졌다”며 전교조가 강사의 진입을 막고 경찰이 출동한 상황에 초점을 맞췄다.
특강 내용에 대해서는 “강의 중에 학교 교사와 강사 사이에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며 조선일보와 마찬가지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재는 했지만 경제발전 업적은 인정해야 한다”는 강사의 말에 교사들이 항의했다고만 언급했다.

반면, 한겨레는 1면에 <분단 옹호에 박정희 찬양 일색 학생들 “도움안돼…시간낭비”>라는 기사를 싣고 특강 내용을 비판적으로 다뤘다. 기사는 강사들이 “독재를 옹호하고 반북 이데올로기를 자극하는 발언을 쏟아냈다”며 강사들의 편향된 주장에 대해 “잘못된 통일의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 “오늘처럼 한쪽 의견만 듣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다”는 등 학생들과 교사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전했다.
경향신문도 1면 <우익 인사 ‘분단 정당화·개발독재 미화’ 발언>에 이어 <냉전·반통일 발언에 학생들 ‘혼란’>(8면)에서 “일부 극우 성향 강사들은 냉전·반공 이데올로기를 설파하고 개발독재를 옹호하는 등의 발언을 해 교사·학생들로부터 반발을 샀다”며 강사들의 문제발언과 이에 대한 교사와 학생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자세하게 다뤘다.

우리는 청소년들이 일부 어른들의 비뚤어지고 편협한 주장에 쉽게 휩쓸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러나 극우 인사들의 지극히 편향된 주장을 청소년들이 듣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기성세대로서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민주주의와 인권, 다양성과 관용의 정신을 배워야 할 청소년들에게 시대착오적인 극우 이념과 극단적인 이기심을 요구하는 어른들이 어떻게 비칠 것인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이명박 정권은 말로는 ‘실용주의’를 내세우면서 모든 분야에서 ‘이념’에 사로잡힌 정책을 내놓았으며, 그 폐해가 교육에까지 미치고 있다. 일말의 양식과 양심이 있다면 교육만큼은 내버려두어야 한다. ‘역사 특강’의 허울을 쓴 극우 이데올로기 교육을 즉각 중단하는 것만이 미래세대에게 더 큰 죄를 짓지 않는 길이다.
조중동에게도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조중동은 ‘역사 교과서 분란 일으키기’에 앞장서 왔다. 멀쩡한 교과서에 붉은 칠을 하고, 정부의 ‘수정안’이 미흡하다고 질타했으며, 부당한 교과서 수정에 반발하는 저자들을 비난했다. 나아가 일선 학교들이 ‘문제 교과서’를 채택하지 않도록 정부가 압력을 넣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러더니 이제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극우 이데올로기 교육의 문제점에는 입을 꽉 다문 채, 또 다시 ‘전교조’를 들고 나와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 아래 조중동의 이런 행태가 ‘성공’하는 듯 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정치, 경제, 외교를 망친 것으로도 부족해 백년대계를 구시대적 이념으로 뒤흔들려 한 조중동의 행태는 반드시 역사적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적어도 교육 분야에서만큼은 분탕질을 멈추라. <끝>

 



2008년 11월 28일

(사) 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