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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열 공정위원장 신문고시 관련 발언에 대한 논평(2009.9.17)
등록 2013.09.25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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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고시 ‘무력화’ 안된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신문시장 정상화 의지를 의심케 하는 일이 또 일어났다. ‘신문시장의 위법행위가 수그러들지 않았다’며 신문고시를 유지하기로 결정한 지 채 한 달이 안된 시점에, 공정위원장이 ‘신문고시가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발언을 한 것이다. 그것도 취임 후 가진 첫 기자간담회 자리였다고 한다.
경향신문, 한국일보 등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정호열 위원장은 14일 기자간담회에서 “지하철 등에서 배포되는 무가지는 아무 규제장치 없이 100% 무가로 공급되고 주요 일간지 등 유가지만 대금의 20% 내에서 무가지를 뿌릴 수 있도록 한 것은 형평성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고 발언했다. 또 “지하철 입구에 주요 일간지를 뿌려서 시민들이 보도록 할 수 있지 않느냐”는 말도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정 위원장은 신문고시를 3년 더 유지하기로 한 데 대해서는 “지방 및 중소 신문의 이해관계와 정치적 논란을 감안해 폐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다. 시장정상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고려’에 따라 신문고시를 놔뒀다는 얘기다.
 
지난달 공정위가 신문고시를 유지하기로 결정했을 때, 우리는 공정위에 ‘신문시장의 불법경품을 철저하게 단속해 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그러나 정호열 위원장은 신문고시의 정당성을 흔드는 발언으로 신문시장 정상화에 의지가 없음을 드러냈다. 특히 무료신문과 유료일간지를 비교해 ‘형평성’ 운운한 것은 그 동안 족벌신문들이 주장한 궤변과 똑같다.
지난 참여정부 시절 족벌신문들은 공정위의 신문시장 불법경품 규제를 ‘언론탄압’, ‘신문 괴롭히기’로 몰아 왜곡과 음해를 일삼았다. 나아가 족벌신문들은 ‘독자매수’에 동원되는 자신들의 고액 경품과 무가지를 ‘예비용 신문’ 등으로 호도하면서 ‘무료신문과의 형평성’을 주장했다. 그런데 이런 족벌신문의 궤변을 신문시장 정상화의 책임을 진 공정위원장이 그대로 쫓아가고 있으니 경악을 금할 길 없다. 또 공정위원장의 인식이 이러한데 가뜩이나 불법경품 단속에 소극적인 공정위가 앞으로 ‘꿈쩍’이나 할 것인지도 걱정스럽다.
거듭 말하지만 신문고시를 존치하는 것만으로 신문시장을 정상화할 수 없다. 2008년 공정위가 신문고시를 위반한 지국에 부과한 과징금은 2,340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2007년 과징금이 9억 가까이 되었음을 고려하면 사실상 이 정부 들어 공정위는 신문시장 정상화에 손을 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여기에 공정위원장이 ‘무료신문과의 형평성’을 주장하며 족벌신문의 신문고시 위반을 두둔하고 나섰으니 공정위 일선 담당자들에게 위원장의 발언이 어떤 메시지로 이해되겠는가? 정 위원장의 발언은 신문고시를 사실상 무용지물로 만들겠다는 처신이다.
정 위원장은 지난 2001년 신문고시가 재도입 될 때 “신문고시는 신문의 품질과 가격에 의한 경쟁을 제한한다”며 반대 주장을 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위원장에게 묻고 싶다. 5만원에서 10만원에 이르는 현금?백화점 상품권을 주면서 신문구독을 권하는 것이 ‘신문의 품질과 가격에 의한 경쟁’인가? 이런 ‘독자매수’를 방치하는 것이 시장 질서를 존중하는 것인가?
 
‘무료신문과의 형평성’ 문제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무료신문과 유료일간지는 애당초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유료일간지는 독자들에게 ‘정보를 파는’ 신문이며, 시장에서 ‘기사의 품질’로 경쟁을 벌여야 한다. 그리고 경쟁에서 이겨 많은 독자의 선택을 받으면 사회적 영향력을 누리게 되고, 발행부수는 광고수입에 반영된다. 그런데 조중동 같은 족벌신문들이 ‘경품’, ‘무가지’로 경쟁을 왜곡하면 경품을 지급할 여력이 없는 신문들은 경쟁의 기회 자체를 박탈당하게 된다.
한편 무료신문은 독자들에게 돈을 받고 파는 신문이 아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정론지’로 보기도 어렵다. 광고수입에만 의존하는 무료신문은 광고주로부터 저널리즘적 독립성과 자율성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신문을 유료일간지들과 동등한 지위의 경쟁자라고 볼 수 없다. 한나라당이 지난 국회에서 날치기 처리하기 전의 신문법은 무료신문이 신문발전기금의 대상이 될 수 없도록 규정했다. 무료신문과 유료신문을 동등한 자격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며, 광고료만으로 신문을 만드는 무료신문에는 공적 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실제로 지역신문발전위원회는 신문법의 이런 취지를 존중해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할 때 무료신문을 제외하기도 했다.
족벌신문들이 신문시장에서 경쟁의 룰을 지키기 싫거나, 혹은 ‘기사의 품질’만으로 경쟁할 자신이 없다면 무료신문으로 전환하면 될 일이다. 그렇게 되면 정호열 위원장의 말처럼 “지하철 입구에 뿌려서 시민들이 보도록 할 수 있다”. 상품의 가격을 매겨놓고 지하철 입구에서 공짜로 뿌린다면 그야말로 반시장적 행위가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우리 현실은 신문에 대한 독자의 충성도(관여도)가 극히 낮고 경품과 무가지 없이 정상적인 구독료를 내고 보는 것이 비정상적으로 보일 정도로 왜곡되어 있다. 유료신문을 제한 없이 무료로 배포한다면 ‘신문은 돈 내고 볼 필요가 없는 상품’이란 인식을 공고히 해줄 뿐이다.
 
정 위원장과 공정위에 엄중하게 촉구한다.
족벌신문의 눈치나 살피고 나아가 족벌신문의 입장을 대변하는 행태를 중단하라. 그리고 주어진 본분에 따라 신문시장의 불공정행위를 바로잡는 데 나서라. ‘정치적 고려’ 때문에 신문고시를 남겨두면서 실제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족벌신문의 시장질서 파괴를 교묘하게 방조하는 행위다. 공정위가 끝내 제 할 일을 하지 않고 조중동의 이익이나 챙겨준다면 신문시장 파탄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반드시 지게 될 것이다. <끝>
 
 
2009년 9월 17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