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공정위 공정거래법 개정' 관련 신문사설」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4.5.9)
등록 2013.08.09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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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옹호신문'임을 스스로 드러내려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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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공정거래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 12월30일 경제장관간담회에서 결정한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에 따라 '투명하고 공정한 경제시스템 구축'을 위해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책임성 제고, 기업집단의 소유지배구조 개선 및 시장경쟁의 제고 방안을 마련"을 위한 입법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목적에 따라 공정위는 재벌의 출자총액제한 제도 개선 계열금융보험사 의결권행사 허용범위 축소 비상장·비등록 기업의 공시의무 강화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 같은 공정위의 입법예고에 대해 재벌그룹들은 대대적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전경련을 비롯한 경제5단체들은 출자총액제한제가 기업의 투자활동을 위축시키며, 재벌계열금융보험사의 의결권 행사 범위를 축소하게되면 국내 기업들의 경영권이 외국인에게로 넘어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신문들은 공정위의 개정안에 '딴죽'을 걸며, 재벌그룹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중앙은 7일과 8일 연 이틀동안 사설로 공정위 개정안을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노골적으로 공정위 개정안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의 현 경제 상황 등을 내세우고 심지어 정부를 향한 협박성 발언까지 하며 사실상 재벌그룹들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7일 중앙은 <공정위가 나설 때가 아니다>에서 "우리는 그러한 조치들 자체를 반대하기보다 과연 지금이 적기인가라는 점을 묻고 싶다"며 "장기 불황 가운데 투자와 소비가 죽고 일자리가 없어 쩔쩔매는 현실에서 기업의 활동을 위축시키고 손발을 묶는 규제를 강화하는 게 과연 잘하는 일인가 하는 문제다"라고 '물타기'에 나섰다. 중앙은 '계열금융보험사 의결권행서 허용범위 축소'에 대해서는 "원칙은 맞다"면서도 "국내 대표기업의 경영권이 헐값에 외국 자본에 넘어갈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또 '출자총액제한제'에 대해서도 "좋은 의도와 달리 투자를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며 "출자총액제한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것"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중앙일보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재벌의 선단경영의 폐해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고 '출자총액제한제'만 문제삼았다. 8일 <경제단체들의 외침 경청해야>에서 중앙은 공정위의 공정거래법 개정 추진과 대우종합기계 매각 문제 등을 거론하며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성장이냐, 분배냐 하는 이념논쟁이 아니다"라며 마치 공정위의 법개정 추진을 '이념논쟁'인양 몰고, 기업활동위축과 기업경영권 방어 논리를 재차 거론했다. 특히 중앙은 '기업경영의 선진화만 요구하면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도외시한다'는 한국경제연구원 허찬국 소장의 발언을 인용해 엉뚱하게 '노동시장 유연성' 문제를 걸고넘어지기까지 했다. 중앙은 사설 말미에 "기업들이 65조원이라는 돈을 쌓아만 놓은 채 움직이지 않는 까닭을 정부는 잘 살펴보야 한다"는 협박성 주장까지 했다.


경향신문은 8일 사설 <경제정책 혼선만은 피해야>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을 '공정거래위원회와 재계의 싸움'으로 폄하하며, "갈 데까지 간 싸움의 틈바구니에서 경영여건이 훼손되고, 그 결과로 국가경제가 위축되고 있지나 않은가 하는 걱정"이라고 주장했다. 경향은 "재벌개혁을 이루겠다는 공정위의 기본방향이 틀렸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면서도 "명분이 옳다고해서 눈앞의 현실을 도외시해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며 재벌금융사의 의결권 축소를 예로 들었다. 경향은 출자총액제한 제도나 계좌추적권 재도입 등에 대해서도 "완급조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개혁을 추진하는 한편으로 휘몰아치는 파고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강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8일 사설 <경제정책의 우선순위부터 정하라>에서 "공정위와 재계의 주장에는 모두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상황에서 누구의 말이 맞느냐를 따진다고 풀릴 일이 아니다"라며 노골적인 반대의견을 내놓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선일보는 "경제는 비탈을 굴러내리는데도 이 정부 경제팀은 무얼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며 "공정거래법 개정이 이 정부 경제정책의 최우선 순위인 모양이라고 해석해도 할 말이 없을 상황"이라며 재경부를 질책하고 나섰다. 조선은 "들리는 것은 공정위의 목소리뿐이니, 이 정부가 경제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조절할 능력을 잃어버렸다고 하는 것"이라고 어거지로 참여정부를 비난했다.
동아일보는 노골적으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반대하고 나섰다. 동아는 7일 사설 <공정거래법, 기업 더 옥죌 건가>에서 "외국자본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 위협을 키우고 대기업의 투자심리 위축을 심화시킬 소지가 많은 내용"이라며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노골적으로 반대했다. 동아는 "투자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 진정한 목표라면 정부가 앞장서서 경영권을 흔드는 일은 삼가야 한다"며 "기업이 실제로 위협과 불편을 느끼는 기업정책부터 털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겨레신문은 4일 사설 <소모적인 재벌정책 논란 빨리 끝내길>에서 "이날 당정이 합의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대체로 방향을 잘 잡은 것으로 보인다"며 "재벌개혁은 재벌의 발목을 잡는 게 아니다. 오히려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키워주는 촉매제 구실을 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겨레는 "출자총액 제한제는 재벌의 소유지배구조 개선 등을 위해 도입된 불가피한 제도"며, 계열금융보험사 의결권행사 허용범위 축소에 대해서도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 원칙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겨레는 "부당 내부거래 계좌추적권 재도입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며 "재계 주장 대로 없앤 제도를 다시 도입하기보다는 내부거래 단속 방식을 선진화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재벌식 기업운영은 우리경제의 발전을 저해하는 봉건적 기업경영 구조로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이번에 공정위가 입법을 예고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공정한 시장경쟁의 '룰'을 만드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 같은 최소한의 제도개선 조차도 일부 재벌들과 신문들이 함께 나서 '경제위기', '투자위축', '기업경영권 방어' 등을 내세우며 딴죽을 걸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일부 신문은 노골적으로 정부를 질타하고, 협박까지 하며 친재벌 성향의 정부 내 관료들을 압박하는 형국이다.
재벌그룹들이 이번 공정위 조치에 반발하는 것은 한국경제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 대단히 우려스러운 이기적 행태에 다름아니다. 지난 4월 13일 강철규 공정위원장은 "이 제도(출자총액제한제)의 적용을 받는 재벌들의 구제금융사태 이후 투자사례를 분석한 결과, 설비투자 등 실질적인 투자는 7%에 불과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재계는 어떤 대답을 내놓을 것인가. 재계는 노동계에만 '글로벌스탠더드'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기업경영 관행부터 '글로벌스텐더드'에 맞춰야 할 것이다.
재벌그룹의 주장에 편승하며 '경제위기', '투자위축', '기업경영권 방어' 등의 논리로 '물타기'에 나서고 있는 일부 신문들도 반성해야 한다. 언론이 감시해야 하는 것은 정부권력만이 아니다. 경제권력, 특히 재벌의 잘못된 기업경영 관행 또한 언론은 제대로 감시하고 비판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언론은 큰 틀의 한국경제의 발전 보다는 재벌그룹의 편에 서서 이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다. 정녕 우리 신문은 '재벌옹호신문'이라는 오명을 스스로 뒤집어쓰겠다는 것인가.
정부 역시 재벌들과 일부 언론의 '개혁 저항'에 흔들려서는 안될 것이다. 최근 이헌재 부총리를 비롯한 재경부 관리들이 일련의 경제개혁 조치들을 과거로 되돌리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참여정부는 민주주의와 개혁을 바라는 국민들의 힘으로 지켜진 정부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흔들림없이 개혁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2004년 5월 9일


(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