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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서울여대학보의 1면 백지발행에 대한 논평(2015.5.28)
등록 2015.05.28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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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언론의 편집권을 보장하고 부당한 탄압을 중단하라

 

 

 진리를 탐구하는 대학의 언론자유마저 땅바닥에 떨어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여대학보>가 청소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과 관련해 서울여대 학교당국을 비판하고 또 총학생회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된 졸업생들의 성명서를 싣지 못하게 하는 외압에 항의하는 의미로 학보 1면을 백지상태로 발행한 것이다. 

 

 서울여대 학교 측은 청소용역업체를 변경하면서 청소노동자의 시급을 6,200원에서 6,000원으로 삭감하였다. 이에 청소노동자들은 나름대로 문제해결을 위해 다른 대안을 제시하는 등으로 노력하였으나 임금 삭감은 강행되었다. 부득이 청소노동자들은 파업에 돌입하였다. 파업이 30일 정도 진행되었을 무렵인 지난 5월 20일, 축제를 준비하던 서울여대 총학생회는 농성 중인 교내 청소노동자들의 현수막을 철거했다. 이에 대해 서울여대 졸업생 143명이 성명을 발표해 학교에게는 청소노동자들의 노동 조건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촉구하는 한편, 총학의 부적절한 행태를 비판하였고, 54개 대학의 학생단체도 이구동성으로 “총학생회가 노동자의 삶이 걸린 현수막을 멋대로 뗄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이후 총학생회는 공개사과를 하고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를 직접 만나 사과를 했다. 

 <서울여대학보>는 26일 발행할 606호에 21일 서울여대 졸업생 143명이 발표한 성명 전문을 게재하고자 했다. 그러나 학보사 주간을 맡은 교수가 이를 반대하면서 이 내용의 보도를 금지하였다. 이에 <서울여대학보>는 27일 1면이 백지로 된 학보를 발행하고, ‘1면 백지 발행에 대한 입장문’을 SNS로 발표했다. 학보사는 입장문에서 “애초 1면에는 ‘서울여대 졸업생 143인의 성명서’ 전문을 실을 예정”이었는데 “주간 교수가 22일 학보 인쇄를 앞두고 성명서를 실을 경우 발행을 허가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놨다”고 밝혔다. 주간 교수는 “졸업생 143명이 졸업생 전체를 대표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론이라고 보기 어렵고 학보사는 중립적이야 한다”고 이유를 댔다고 한다. 학보사는 “저희는 졸업생 143인이 졸업생을 대표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성명서 내용이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싣고자 한 것”이며, “편집권은 전적으로 편집국에 있는 것으로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권리”라면서 “주간 교수는 이러한 권리를 침해해 학보의 역할을 축소시켰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서울여대 학보사가 “편집권 보장을 요구”하며 백지학보를 발행할 수밖에 없게 된 상황을 접하면서 진리탐구의 전당인 대학마저 언론의 자유를 빼앗겼다는 사실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우리는 <서울여대학보>가 졸업생 성명 전문을 게재하고자 했던 것은 총학생회의 아픈 실수를 거듭 꼬집으려 한 것이 아니라, 학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의 문제를 학생들이 공감하고 함께 해결을 촉구하자는 취지였다고 판단한다. 대학언론이라면 대학 내에 벌어진 이런 사안을 공론화하고 자성을 촉구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서울여대 학보 주간 교수가 발행불허 카드까지 들고 나온 것은 분명 부적절한 행위이며, 언론탄압이다.

 

 한편 이번의 <서울여대학보> 백지 사태는 일상화되다시피 한 대학언론의 편집권 침해에 대해 공론화하고 개선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학보사 주간 교수와 학교 측의 대학언론에 대한 편집권 탄압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성대신문>(한성대 학보)은 2014년 9월 개강 호에서 지나치게 민감한 사안을 다루었다는 이유로 주간교수로부터 기사수정, 삭제를 요구받아 일부가 백지로 발행된 바 있다. <상지대신문>(상지대 학보)도 올해 3월 30일 발행된 제522호에 총장해임, 이사회사퇴, 부당징계철회 등을 요구하는 교수의 기고에 대해 주간 교수가 간섭하여, 기고가 실릴 자리에 기자단의 항의 성명서를 냈다. 심지어 발행 자체를 불허한 경우도 있다. 올해 4월 <동대신문>(동국대 학보)도 총장선출과 학내문제에 대한 여론조사 기사가 ‘편향적이다’, ‘과학적이지 못하다’라는 이유로 학교 측이 제 1561호 발행을 불허했다. <가톨릭대학보>(가톨릭대 학보)도 2013년 6월 주간 교수의 반대로 발행되지 못했다.

 

 과거 대학은 어느 집단보다 앞서서 사회 부조리를 타파하고 정의를 추구하는데 목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대학이야말로 현실에 물들지 않은 순수와 열정의 상징이며 그러한 대학의 위상은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오늘날 대학이 진리탐구나 사회 부조리에 무관심하면서 취업경쟁에만 몰두하는 이기적 이해집단으로 변질되어버린 배경에는 말의 자유를 억압하는 이러한 학내 현실이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언론자유가 계속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마저 대학언론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길들이는 상황에 분노한다. 학보는 학교를 홍보하는 수단이 아니다. 학보는 학생들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학내문제에 대한 건전한 여론형성을 위한 공론의 장으로 기능하는 엄연한 하나의 언론이다. 주간 교사가 함부로 편집권을 침해하고 발행을 중단시키는 행위는 교육적으로 매우 부적절하며, 명백한 대학언론 탄압이다. 서울여대는 즉각 이번 사안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방지 조처하라. 또한, 비슷한 사안으로 내홍을 겪고 있는 대학들도 대학언론에 대한 부당한 간섭을 중단하라. 

 

 

2015년 5월 28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