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이랜드 사태 관련 조선일보 사설(18일)에 대한 민언련 논평 (2007.9.19)
등록 2013.09.05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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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민주노총-이랜드 노조 원수 만드는 게 소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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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 사태가 100일을 넘었다. 또 비정규직 문제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언론들의 무관심은 지나치다. 특히 보수신문은 계기가 있을 때마다 민주노총을 음해하며 비정규직 투쟁을 흠집내는가 하면 이랜드 사측의 편들기에 나서 이랜드 노조를 고립시키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공격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18일 사설 <민노총, 이랜드 노사 원수 만들었으니 성이 차는가>에서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개입하면서 사태는 더 틀어져버렸다. 민노총 사주를 받은 파업 지도부가 홈에버에는 ‘3개월 이상 일한 비정규직의 고용을 보장하라’고 하고 뉴코아엔 ‘노조에 대한 민·형사 소송을 취하하라’고 새 요구를 들고 나온 것이다.”며 민주노총이 이번 사태의 배후조종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도했다.
또 이랜드가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높다는 수치를 제시하며 “7월부터 시행된 비정규직법 폐지 투쟁에 나선 민노총이 그런 이랜드를 전략적 표적으로 삼았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민주노총과 민노당이 이랜드 사태의 배후조정을 하는 것처럼 주장하지만, 민주노총은 이랜드 노사협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현재 교섭에 참가하고 있는 주체는 이랜드 노조와 사측이다.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랜드 노조는 민주노총의 사주를 받는다는 쓸데없는 오해를 받지 않고도 합법적으로 상층 조직인 민주노총에 교섭 권한을 위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랜드 노조가 조합원들의 이해와 요구를 가장 잘 반영할 수 있기 때문에 교섭권을 위임하지 않고 교섭을 벌이고 있다. 따라서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이랜드 투쟁에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것은 이랜드 노조의 요청이 있어서이며, 민주노총과 민노당이 이런 그들의 요청을 외면했다면 오히려 그것이 큰 비난을 받을 일이다.
그럼에도 조선일보는 민주노총이 이랜드 노조를 사주하고 직접 교섭에 개입하고 있는 것 같은 뉘앙스의 주장을 늘어놓으며 이번 사태를 좌지우지 하고 있는 것처럼 교묘하게 사실을 왜곡했다.


같은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노조에 대한 민·형사 소송을 취하하라’는 노조의 요구에 대해 “손배소를 취하한다면 회사와 입점주들은 각기 1000억원과 500억원씩 입은 매출 손실을 고스란히 감수해야 한단 말인가”라며 이랜드 사측 편들기에 나섰다.
회사가 입은 손실을 노동자들에게 모두 떠넘기는 것은 안된다. 노조가 파업을 하고 점거농성을 한 이유는 이랜드 사측의 일방적인 해고와 불성실한 교섭 때문이다. 본질적인 사태의 원인을 따지지 않고, 노동자에게 이렇게 큰 금액의 손배소를 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한 달에 80만 원을 버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평생 갚아도 갚지 못할 손배소를 건다는 것은 죽으라는 것과 다를 바 없고 협상의 의지조차 의심되는 것이다.
재계가 무분별한 손해배상과 가압류로 노조를 무력화시키고 많은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면서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아 사회문제가 확산되고 있다. 이에 대한 법제도적 정비와 보호대책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에서 손실액을 모두 노동자가 갚아야 한다는 주장은 어처구니없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나라 중에서 노동조합의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민법의 원리로 적용하는 경우는 없다. 조선일보의 천박한 인식이 놀라울 뿐이다.


조선일보는 또 “이랜드 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열려던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는 정족수 미달로 무산됐다”고 지적하고, “민노총은 이제 이랜드를 통한 선전·선동 효과를 거둘 만큼 거뒀으니 슬그머니 발을 빼려는 태세”라며 민주노총이 이랜드를 비정규직 문제에 악용하고 발을 뺀 것처럼 다뤘다.
조선일보가 무산됐다고 밝힌 11일 임시대의원대회는 여섯 가지의 안건이 상정되어 있었고, 이때 상정된 이랜드 관련 안건은 ‘이랜드 투쟁 계획’에 대한 것이었을 뿐, ‘이랜드 투쟁 지원’이 아니었다. 또 민주노총은 지난 달 21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이랜드 조합원들의 생계지원을 위해 총 16억 원의 투쟁기금을 조성키로 결정했다. 1인당 월 50만 원의 생계비를 이랜드 노조원 800명에게 연말까지 4개월간 지원한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민주노총을 공격하기 위해 이처럼 사실까지 왜곡한 것이다.


조선일보나 다른 보수신문들이 이랜드 사태에 애용하는 ‘민주노총 배후조종론’은 이랜드 사측이 주로 유포하는 논리다. 지금껏 이랜드 사측은 “노조원들이 정치투쟁의 희생양이 되는 것 아니냐”, “민주노총 등 노동계가 비정규직법 개정을 위해 이랜드 노조를 이용하고 있어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다” 따위의 정치공세를 펴며 교섭에 성실히 임하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을 흠집내 이랜드 노조와 분리시키고 이랜드 노조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고립시키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보수신문은 이러한 이랜드 사측의 언론플레이를 그대로 기정사실화하고 확대재생산해 결과적으로 이랜드 사측을 돕고,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보수신문과 이랜드 사측이 합심해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 죽이기에 나선 것과 다를 바 없다. 정상적인 교섭 보다는 정치공세에 힘을 기울이는 이랜드 사측의 편들기에 급급한 조선일보야 말로 노사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노사간 원수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임을 알아두기 바란다.


그동안 이랜드사태와 관련해 보수언론은 일부 입점 점주들의 피해를 강조하며 이들의 집회를 부각하는가하면, 회사 측에 책임이 있다며 노조를 지지한 입점 점주들의 입장은 전혀 다루지 않았다. 또한 이랜드 사측에서 구사대를 동원해 여성노조원들을 폭행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음에도 이를 다루지 않았다. 보수신문은 이랜드 사태가 100일이 넘게 이어져 오고 있음에도 무관심으로 일관하다가 입맛에 맞는 건수만 생기면 사측 편들기, 민주노총 흠집내기, 이랜드 노조 고립시키기 등의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보수신문처럼 악의적인 왜곡보도를 내보내진 않았지만 이랜드 사태를 충돌이나 갈등 양상 중심으로 다루다가 이제는 거의 다루지 않고 있는 방송 보도 등 다른 언론의 문제도 크다. 17일 인권운동사랑방, 민변 등 37개의 인권단체는 비정규노동자들에 대한 구사대 폭력, 경찰 폭력 인권침해 증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는 기아차비정규직지회, GM대우 부평공장 비정규직,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직접 나와 경찰이나 구사대에 폭행당한 사실을 증언하고 여러 가지 자료를 제시했다. 충격적인 내용이 공개되고, 비정규직들이 구조적 폭력에 전혀 보호받지 못하는 시스템에 대한 문제가 지적됐음에도 이를 다룬 신문, 방송 보도는 한 건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이랜드 사태의 본질적인 문제인 비정규직법이나 비정규직 노동자 보호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신문과 방송의 무관심은 지나치다. 다만 한겨레가 지속적으로 이랜드 사태나 비정규직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보수신문은 비정규직 노동자 죽이기를 거들고 선동하며 재계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 또한 다른 신문과 방송도 이랜드 사태와 여러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정규직 사태에 대해 보다 관심을 갖고 깊이 있는 보도를 해주기를 촉구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전체노동자 절반의 문제이자, 우리 사회 절반의 문제다. 더 이상 외면해서는 곤란하다. 그동안 너무 많이 실망해왔던 보수신문은 접어두더라도 방송마저 노동자의 절반을 외면하고 가진 자들의 언론으로 전락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끝>
 

 

2007년 9월 19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