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한일 과거사 문제 언급 노대통령 3·1절 기념사 관련 주요 신문 사설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5.3.2)
등록 2013.08.16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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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이런 보도, 이유가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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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과거의 진실을 규명해서 진심으로 사과하고 배상할 일이 있으면 배상하고, 그리고 화해해야 한다"며 "그것이 전 세계가 하고 있는 과거사 청산의 보편적인 방식"이라고 발언했다. 또한 "한일협정과 피해보상 문제에 관해서는 정부도 부족함이 있었다"며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과거사 문제를 외교적 쟁점으로 삼지 않겠다"고 한 발언에 대해서는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과거사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교류와 협력의 관계가 다시 멈추고 양국간 갈등이 고조되는 것이 미래를 위해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면서도 "우리의 일방적인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두 나라 관계 발전에는 일본 정부와 국민의 진지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최근 한일협정문서 공개와 일본의 독도 망언, 고이즈미 총리의 계속되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으로 한일 과거사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다시 한번 환기시키고, 그에 상응하는 조치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표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 대한 신문들의 평가는 제 각각이다. 특히 대부분의 사회 현안에 대해 같은 목소리를 내온 조선, 동아, 중앙일보가 이번에는 서로 다른 평가를 내놨다.
동아일보는 노 대통령의 발언에 힘을 실어주면서 일본의 책임있는 대응을 요구한 반면 중앙일보는 '한일협정'으로 끝난 문제를 다시 거론한 것은 잘못이라며 노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과거사를 둘러싼 논란의 근본적인 책임이 일본에게 있다는 점과 함께 지난해 '과거사를 외교 쟁점으로 삼지 않겠다'고 했던 노 대통령의 발언을 들어 우리 정부가 '짝사랑 외교'를 해왔다고 비판했다.


주목할 것은 중앙일보의 태도다. 중앙일보는 3월 2일 사설 <일본에 다시 배상을 요구할 건가>에서 노 대통령의 이번 발언이 "지난번 한·일수교 문서를 공개하면서 일제 때 징용 등 피해자에 대한 보상금이 개별적으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문제제기인 듯싶다"며 그 의미를 '보상금' 문제에서만 찾았다.
또 "노 대통령의 배상금 문제제기가 설혹 타당성이 있다 해도 이미 양국이 국가적으로 매듭지은 문제를 다시 제기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정부가 달라졌다고 '다른 소리'를 낸다면 상대방 국가는 물론 국제사회에서 우리를 어떻게 보겠는가"라며 질타하고 나섰다. 이어 중앙은 '과거사 문제를 외교적 쟁점으로 삼지 않겠다'는 발언을 근거로 "배상문제를 제기하는 발언을 하면서 과거사를 외교쟁점으로 삼지 않겠다니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며 "이러니 배상 관련 발언은 '국내용'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평가절하했다.
반면 동아일보는 같은날 사설 <과거사 매듭 풀기, 일본은 답하라>에서 일본측 인사들의 망언을 언급하며 "노 대통령의 어제 발언은 국민감정을 고려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일본이 부채질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행동'을 일본이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우리 정부도 "한일 과거사 문제에 보다 치밀하고 전략적인 대응을 하기 바란다"고 요구했다.
조선일보도 사설 <'우정의 해'에 금 간 한 일 관계>에서 "(한일간)'우정의 해'에 금을 내고 다시 과거 문제로 씨름하게 만든 책임은 전적으로 일본에 있다"고 일본에 책임을 물었다. 아울러 우리 정부가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를 "상대국을 움직일 수 있는 지렛대도 없으면서 그저 상대의 선의(善意)에만 기대는 짝사랑 외교"를 해온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편 경향신문은 <한국정부의 對日정책은 무엇인가>라는 사설에서 우리 정부의 일관성 없는 대일 외교를 집중적으로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일본 때리기'만하면 박수 치는 '눈먼 對日 민족주의'가 우리의 감정을 사로잡고 있다"며 우리의 감정적인 대응까지 문제삼았다.
그러나 경향신문의 사설은 '정부의 일관성' 외에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주장하는지 애매하다. 경향은 한일협정으로 한국정부에 배상할 의무가 없다는 일본의 주장에 대해 "부정할 수 없는 국제적 현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일본이 "역사적, 도덕적 의무"로부터도 완전히 면제된 것은 아니므로 "스스로 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또 "한일 관계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면서도, 그 미래의 장애물인 과거사를 해결하도록 일본을 각성시키는 두 가지 일 가운데 어느 하나도 버릴 수 없다", "갑작스러운 과거사 문제의 포기도, 배상요구도 정부의 정책으로서는 올바르지 않다"는 주장을 펴면서 노 대통령이 모순되는 두 가지를 다 꺼내놓은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외교정책의 관점에서 접근했다고 믿어지지 않는다"고 '정치적 의도'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반면 한겨레신문은 노 대통령의 발언을 "정당하고 시의적절한 것"으로 평가하면서 한일간의 추가협상 또는 재협상의 필요성까지 언급했다.


그동안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국내의 과거청산 문제에 대해 거세게 반발해왔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일에도 조선일보는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한 사설과 함께 국내의 과거청산 요구를 폄훼하는 사설을 실었다. 이런 두 신문마저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의 책임론'을 분명하게 한 것은 한일협정의 명백한 부당성, 과거 잘못을 책임지지 않는 일본 정부와 망언을 거듭하는 일본 관료들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부정적인 여론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같은 상황에서도 중앙일보가 잘못된 한일협정을 근거로 외교의 '일관성' 운운하며 일본의 '배상'이 아닌 우리 정부의 '보상'이 문제 해결의 핵심인 양 떠넘기는 행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중앙일보는 "정부는 영속성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달라졌다고 '다른 소리'를 낸다면 상대방 국가는 물론 국제사회에서 우리를 어떻게 보겠냐"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쿠데타로 집권한 정부가 자신들의 집권 기반을 다지기 위해 졸속으로 맺은 협정을 근거로 더 이상 말도 꺼내지 말라는 얘기다.
중앙일보는 '쿠데타 정권과의 일관성'만 보이고 과거청산에 대한 국제사회의 보편적 규범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노 대통령이 언급한 '진실규명->사과->배상->화해'의 과정은 새로운 주장이 아니라 국제사회가 받아들이고 있는 과거청산의 보편적인 원칙이다. 철저한 진상규명, 가해자의 사죄와 피해자에 대한 정신적·물질적 배상이 빠진 과거청산은 알맹이가 빠진 것이다. 가해자가 사죄는커녕 자신들의 잘못을 끊임없이 합리화하는 상황에서 '과거청산의 대상'이 되는 쿠데타 정권이 체결한 협정에 대해 민주화된 정부가 '정부의 영속성'을 들어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는 상황이야말로 국제사회의 눈을 의식해야 할 부끄러운 일이다. 특히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한일협정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았던 피해자들의 문제는 우리 정부의 '보상'만으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중앙일보가 한일 과거사 문제에서 한일협정을 인정하고 우리 정부가 보상을 하는 선에서 마무리 지으라는 주장을 펴고 나온 '배경'이 참으로 궁금하다. 우리는 중앙일보가 '일본 정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특히 중앙일보는 삼성그룹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언론사이며, 삼성은 최근 일본 소니사와의 합작사 설립을 진행중이다. '초국적 기업'으로 나아가는 삼성과 일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중앙일보 사이에 무슨 관계라도 있는 것인가?


아울러 우리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에 대해서는 과거사를 제대로 정리하고 넘어가자고 요구하면서 우리의 과거사는 '있는 그대로의 역사로 인정하고 덮어두자'는 것은 말이 안된다. 한일 과거사에 대한 두 신문의 주장이 '진정성'을 갖기 위해서는 우리 내부의 과거청산에 대해서도 일관된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한편 '대일 정책에 일관성'을 갖고, 일본에 대한 우리의 '감정'을 자성해야 한다는 경향신문의 주장은 일면 타당하다. 그러나 '일본 스스로 해결해야 할 과제'라거나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맺어가면서 과거사를 해결하도록 '일본을 각성시키는 일'을 해야한다는 식의 경향신문의 대안이 현실적으로 어떤 형태를 띠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지난 해 '과거사 문제를 외교적 쟁점으로 삼지 않겠다'는 노대통령의 발언을 분명하게 비판한 것도 아니고, 올해 3.1절 기념사를 통해 한일협정으로 끝난 문제를 재론한 것을 분명하게 비판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중간찾기'는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할 뿐이다.
아울러 우리 국민들이 과거청산 문제에 있어 일본정부의 행태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상황을 섣불리 '일본 때리기'를 하면 박수치는 "눈먼 對日 민족주의"와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인지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2005년 3월 2일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