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관련 주요신문 사설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4.7.8)
등록 2013.08.1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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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신문들, 언제 철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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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신문들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의문사위원회) '흔들기'가 지나치다.
의문사위원회가 지난 1일 비전향장기수 세 명의 죽음을 '의문사 사건으로 인용'했다고 발표한 데 이어 강제전향 장기수에 대한 북송을 정부에 권고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조선, 동아, 중앙 등 수구신문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7일 조선, 중앙, 동아는 일제히 사설을 싣고 의문사위원회의 비전향장기수에 대한 의문사 인정과 강제전향 장기수에 대한 송환 권고 검토를 사실까지 왜곡하며 비난했다. 반면 같은날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은 강제전향 장기수들의 송환 문제를 인도적 차원에서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겨레신문의 경우 8일에도 사설 <의문사규명위를 '마녀사냥'할 셈인가>를 싣고 의문사위원회에 대한 사회일각의 '마녀사냥식' 대응과 그것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수구신문들은 의문사위원회가 비전향장기수를 의문사로 인정한 것을 두고 '간첩을 민주화운동 인사로 둔갑시켰다'는 식의 주장을 펴면서 의문사위원회를 비난했다. 그러나 의문사위원회의 설치근거인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이하 특별법)과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등에관한법률'(이하 명예회복법)을 꼼꼼이 들여다보면 이들 신문의 주장이 과장, 왜곡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의문사위원회는 의문사 희생자가 '민주화운동인사냐 아니냐'의 '자격'을 심의하는 곳이 아니라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건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는 것을 목적(특별법 제1조)으로 하는 기구다. 논란의 불씨가 된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라는 대목에서 '민주화운동'은 '69년 8월 7일 이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하여 민주 헌정질서의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 신장시킨 활동'(명예회복법 2조1항)으로 규정된다. 여기서 '항거'의 의미는 '학교 언론 노동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발생한 민주화운동을 억압하는 과정에서 사용자나 기타의 자에 의하여 행하여진 폭력 등에 항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가권력의 통치에 항거한 경우'(명예회복법 시행령)를 포함하고 있다.
의문사위원회는 세 명의 비전향장기수가 '민주화운동을 했음'을 밝혀낸 것이 아니라, 그동안 '자살' 등으로 은폐되었던 이들의 죽음이 권위주의 정권아래 자행된 반인권적인 '전향공작'에 의한 것임을 인정했다는 뜻이다. 이 때 '민주화운동과 관련'되었다는 것의 의미는 이들의 죽음이 시기적으로 '69년 삼선개헌 이후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벌어진 일이며, 부당한 폭력에 저항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권위주의 정권에 항거했다'는 관련성으로 해석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의문사위원회가 의문사의 진실 규명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비전향장기수가 '민주화운동인사로서 명예회복과 보상을 받을 수 있는가 없는가'의 판단 문제는 의문사위원회가 아닌 명예회복위원회로 이첩되는 것이다.
이들이 '민주인사냐 아니냐'를 떠나 누구든 반인권적인 고문으로 목숨을 잃었다면 이는 반민주적 행태이다. 의문사위원회의 결정에서 정작 중요한 사실은 '자살' 또는 '병사'로만 공식발표되었던 비전향장기수들의 죽음이 '반인권적인 전향공작'에 의한 죽음임을 밝혀내고, 이를 인정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조선, 중앙, 동아 등 수구신문들은 의문사위원회의 결정을 '국가기관이 간첩을 민주인사로 만들었다'(중아일보), '비전향장기수들의 사망이 민주화에 기여한 것이라고 결정했다'(조선일보), '간첩과 빨치산 출신 장기수의 전향거부를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했다'(동아일보)며 '마녀사냥'식 색깔론 공세를 펴고 있다.
백번 양보해 언론이 '민주화운동 관련성' 부분을 근거로 비전향장기수의 의문사 인용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려면, 최소한의 고려가 필요하다. 즉 직접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지는 않았지만 독재정권에 의해 의문의 죽음을 당한 일반시민, 재소자 등에 대해서는 어떤식의 처리가 필요한 것인지 한번쯤 고려하고, 특별법의 맹점과 개선 방향을 살펴보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의문사위원회는 명망있는 '민주화운동 인사'뿐 아니라 평범한 일반시민들의 억울한 죽음도 조사하고 있다. 수구신문들의 주장대로라면 의문사위원회가 이런 사건을 조사하는 자체가 '평범한 시민을 민주인사'로 만드는 것이다. 특별법이 의문사위원회의 조사 대상을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의문의 죽음'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문들이 사회적으로 민감한 쟁점을 다룰때 최소한 그와 관련한 여러 정황들을 꼼꼼히 살펴보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 비전향장기수의 의문사 인용이 '사상이 의심스러운 위원회가 국가의 근본을 흔들려는 의도'로 '간첩을 민주인사로 만든 것'인지, 아니면 여러 의문사들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법을 포괄적으로 해석하고 현실적으로 적용한 결과인지를 한번쯤 생각해보라는 뜻이다.


한편 '강제전향 장기수의 북송 문제'는 의문사위원회가 정부에 권고를 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우리 사회가 인도적 차원에서 얼마만큼의 '포용력'을 가질 것인가 하는 본질적 문제와 관련된 것이다. 더욱이 살인적인 '전향공작'의 실체가 사실로 드러난 마당에 '전향', '비전향'을 기준으로 송환의 자격을 따지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 사회가 비전향장기수들을 북송할만큼 인도주의적으로 성숙했다면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억지로 전향을 선택한 사람들도 본인 의사에 따라 북송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북송 문제에 이견이 있다해도 수구신문들처럼 접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조선, 중앙, 동아일보는 강제전향장기수들의 송환 문제를 '간첩을 민주인사로 만든 의문사위원회가 월권까지 하고 있다'고 몰아감으로써 강제전향자들에 대한 '인도적 차원의 송환'이라는 문제의 본질을 흐렸다. 나아가 중앙일보는 의문사위원회가 '나라의 근본을 뒤흔든다'면서 '기구의 존폐를 거론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펴는가 하면, 동아일보는 특별법에 따라 활동의 독립성을 보장받고 있는 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아무런 권한도 없는 대통령을 향해 '입장을 밝히라'며 무지한 주장을 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의문사위의 논리가 "체제 전복을 노린 테러범이라고 해도 '수사 과정에 무리가 있고 가고싶다고 하면' 결국은 모두 보내주어야 한다는 것과 한가지"라는 억지주장을 펴기도 했으나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우선, 조선일보는 '수사 과정의 무리'라고 표현하지만 전향공작은 고문으로 사람을 죽게 만든 반인권적 폭력으로, 설령 그 대상이 간첩이라해도 용인될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테러범이라해도 마찬가지다. 간첩, 테러범이라해서 마음대로 고문하고 죽인다면 민주국가가 '테러집단'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게다가 비전향장기수들은 그들이 '가고싶다고 해서 보내준'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의 송환은 남북관계의 진전, 통일에 대한 국민적 열망, 인권에 대한 우리사회의 전반적 성숙도가 맞물려 가능했던 일이었다. 강제전향 장기수들의 송환 역시 남북관계와 사회전반의 인권의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문제이다. 그런데도 조선일보가 의문사위원회의 권고 검토를 '가고싶다고 하면 간첩도 보내주라는 논리' 운운하는 것은 복잡한 사회 현안을 장기수 개개의 '의지'로 몰아버리는 무지한 주장일 뿐 아니라 우리사회가 '테러범의 의지에 휘둘린다'는 식의 호들갑이 아닐 수 없다.
강제전향장기수의 송환은 남북이 대결구도를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풀어야할 과제다. 국군포로의 송환 문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남북이 모두 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고 그에 상응하는 '인도주의적 포용력'을 갖추길 기대한다. 아울러 우리는 의문사위원회의 권고 여부와 관계없이 이제 우리 사회가 강제전향장기수의 송환을 전향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같은 합리적 논의를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물이 바로 수구신문의 흥분된 보도태도이다. 우리는 7일과 8일 한겨레신문의 사설이 의문사위원회를 둘러싼 논란을 대하는 상식적인 보도태도라고 판단한다.
도대체 일부 신문들은 언제쯤 이 정도의 성숙한 태도를 갖출 것인가?<끝>

 


2004년 7월 7일


(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