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정부의 '위도 핵폐기장 재검토' 관련 주요 신문 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3.12.11)
등록 2013.08.07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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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짓밟으면서까지 강행하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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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정부가 위도 핵폐기장 건설을 재검토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11일 대부분의 신문들은 '정부 정책의 일관성 없음'과 '국책사업 표류'에 초점을 맞춰 부안 문제를 보도했다. 특히 조선, 동아와 같은 수구 언론들은 정부가 '집단행동에 굴복'해 국책사업에 실패했다는 관점에서만 보도했다.
핵폐기장 건설 문제와 관련해 그동안 정부가 일관성 없는 태도로 사태를 꼬이게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핵 에너지에 대한 정보독점과 공론장 부재, 부지 선정 과정에서의 민주적인 여론 수렴절차 부재에 있다. 따라서 '일관성'이나 '국책사업 조속 해결'이라는 미명으로 잘못된 정책을 계속 강행하는 것이야말로 사태를 악화시키는 일이다. 그럼에도 수구언론을 비롯한 대부분의 신문이 해설 기사와 사설을 통해 정부 정책의 '일관성 없음'과 '국책사업 표류'로만 핵폐기장 원점 검토 방침을 보도한 것은 본질을 흐리는 태도이다.


이와 같은 본질 흐리기에 있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보도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조선일보는 11일 사설 <부안서 白旗 들고 뭘 하겠다는 건가>에서 "좋은 멍석을 깔아놓고도 백기를 들고 만 정부", "정부가 집단행동에 밀려 국책사업을 접어 버렸으니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변명은 아무것도 없을 것" 등의 표현을 동원해 핵 폐기장 건설을 '원점'으로 돌린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동아일보도 같은날 사설 <아마추어 행정이 빚은 '부안실패'>에서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 정부가 "외부 세력과 연계한 주민의 집단반발에 속수무책"이었다거나 "과도한 인센티브 제공을 약속해 장차 유사한 님비시설 건설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는 등의 주장을 폈다. 이는 자신들의 주장과 다른 방향으로 부안 사태가 결론날 것에 대한 반발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주민 투표와 관련해 "다행히 일부 주민단체에서 찬성운동을 벌여 한 가닥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은 동아일보가 위도 핵폐기장 관철을 얼마나 간절히 '희망'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한편 중앙일보는 11일 보도에서 정부의 재검토 방침으로 "부지 선정이 또 다시 혼란에 빠졌다"(3면)며 "즉흥적인 대응만 하다가 이도저도 못이루고 백기를 들고 나오는 꼴"(사설)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런데, 중앙일보의 보도를 꼼꼼히 따져보면 혼란스러운 점이 발견된다. 중앙일보는 부안 사태를 '망친' 이유가 민주적인 의사 수렴 부재라는 점을 언급하면서 정책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방도를 모색하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민주적인 여론수렴을 위해 정부가 '재검토 방침'을 밝히는 것은 당연한 절차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백기'를 들었다거나 '혼란'에 빠졌다는 식으로 보도하는 것이야 말로 사태를 풀어가는 데 혼란을 준다.
경향신문도 11일 사설 <'방폐장 실패' 한번이면 족하다>에서 정부의 재검토 방침 소식을 듣고 "착잡함을 느낀다", "당장 제기되는 문제는 방폐장을 과연 어디에 지을 것인가"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또 "부안 주민들에 대해서도 마지막까지 설득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내부적으로 방폐장 유치에 찬성하는 의견들이 표출되고 있다는 사실은 무척 고무적이다"라는 등의 주장을 폈다.


핵 폐기장 건설은 대단히 복잡한 문제다. 위도 핵 폐기장 건설과 관련해 정부가 충분한 여론 수렴 절차조차 거치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인 것은 앞서 언급했듯 문제점으로 지적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제라도 충분한 여론 수렴을 위해서는 전면적인 재검토가 당연하다. 이를 두고 언론들이 "정부가 백기들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상 여론을 무시하더라도 핵 폐기장 건설을 밀어붙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없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정부의 잘못을 정확하게 지적해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지, 어떻게든 국책사업을 완수하는 일이 아니다.
아울러 핵 시설 건립의 문제는 단지 '부지 선정'의 문제가 아니며, 해당 지역의 '민주적인 의사 수렴'은 초보적인 전제 조건일 뿐, '핵'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일부 언론이 정부가 부안 주민들의 '민주적 의사 수렴'을 거치지 않고 오락가락 하는 정책으로 '위도 핵폐기장 건설을 관철시키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를 왜곡하는 것이다. 핵 시설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 '부지 선정'의 문제만을 앞세운다면 언제든 제2, 제3의 부안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11일 한겨레신문의 보도는 돋보인다.
한겨레는 사설 <원점에 선 핵 폐기장, 정부가 숙고할 일들>에서 정부의 재검토 방침이 반대여론에 밀려 후퇴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잘못을 사과하고 시정하는 의미를 가지려면 향후 후보지 선정에 있어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 원칙이 '주민투표만 통과하면 된다'는 식으로 단순화되어서는 곤란하다며 완전한 정보 공개와 안전성 검증을 전제 조건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사설과 3면 해설기사를 통해 핵 에너지 전반에 대한 검토와 장기적인 에너지 수급 정책에 대한 청사진을 정부에 요구했다.


우리는 정부의 재검토를 부당한 '항복'이라도 되는 것처럼 몰고 가는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 신문들에 촉구한다. 더 이상 왜곡된 논리로 갈등을 부추기지 말라. 정부는 잘못된 정책을 '시정'할 줄 아는 용기도 가져야 한다. '백기' 운운하면서 정부와 부안 군민들을 '적대 관계'로 몰아 사태 해결을 방해하는 행태를 즉각 중단하라.

 


2003년 12월 11일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