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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조선일보의 박시환 대법관 인신공격·색깔공격 보도에 대한 논평(2009.5.20)
등록 2013.09.25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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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오만한 ‘법관 모욕주기’ 중단하라
 
 
신영철 대법관 사태가 사실상의 ‘사법파동’으로 번지는 가운데, 조선일보가 판사들의 신 대법관 사퇴여론을 찍어누르기 위해 또 다시 ‘법관 모욕주기’에 나섰다.
오늘(20일) 조선일보는 기사와 사설을 통해 전날 경향신문에 실린 박시환 대법관의 인터뷰 발언을 왜곡하면서 작심하고 박 대법관에게 색깔공격, 인신공격을 퍼부었다.
사설의 제목은 <4․19 거론하며 “절차와 규정 안 지켜도 된다”는 어느 대법관>이다.
제목만 보면 마치 박 대법관이 절차와 규정은 다 무시하고 신 대법관 사퇴를 주장해도 된다고 주장한 듯하다.
그러나 19일 경향신문에 실린 박 대법관 인터뷰의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 이는 명백한 왜곡이다. 박 대법관은 ‘대법관의 신분으로 사태를 지켜보는 심경’을 묻는 질문에 “양쪽의 각자의 입장이 있는 것 같다”며 “다만 앞장서는 판사들을 좌파로 규정하거나 진보․보수의 문제로 보는 시각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판사들이 절차와 규정을 지킬 것을 강조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건 합리적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이다. 4.19와 6월 항쟁도 절차와 규정은 지키지 않았다”고 답했다.
난독증이 아니라면 이 답변을 거두절미하고 “절차와 규정은 안지켜도 된다”고 몰아갈 수 없다. 우리는 아무리 인터뷰를 읽어봐도 박 대법관이 “절차와 규정은 안지켜도 된다는 판사”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양쪽의 각자의 입장이 있는 것 같다”는 말로 중립적인 자세를 견지했으며, 다만 판사들의 신 대법관 사퇴 여론을 ‘이념의 문제’로 몰거나 ‘절차․규정’의 문제로 몰아 비난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박 대법관은 절차와 규정을 언급하면서 ‘합리적 상황’이라는 전제를 깔았다. 인터뷰를 요약하는 과정에서 어떤 발언이 더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박 대법관이 4.19나 6월 항쟁을 언급한 것은 ‘재판 독립’과 같은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 단순히 절차와 규정을 강조하는 것보다 우선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이 발언을 빌미삼아 박 대법관에게 이념공세를 퍼붓고 나아가 박 대법관과 그가 속한 ‘우리법 연구회’가 판사들의 집단행동을 부추기는 것처럼 몰았다.
사설은 박 대법관이 “1988년 법원 내 특정성향 판사들과 함께 ‘우리법 연구회’라는 조직을 만들었다”며 “우리 법원에서 특정 이념을 선호하는 판사들이 공공연히 이런 조직을 만든 것은 그때가 최초일 것”이라고 이념공세를 폈다.
이어 “그 모임 소속 판사들이 지금 소장판사 집단행동을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한다”며 박 대법관과 ‘우리법 연구회’가 ‘신영철 사법파동’을 ‘배후조종’하는 양 몰았다.
나아가 조선일보는 “박 대법관은 자기 소신처럼 때에 따라선 절차와 규정을 지키지 않았던 사람”이라는 인신공격성 주장을 펴며 2003년 제4차 사법파동 당시 박 대법관의 판사직 사퇴도 “자기를 대법관으로 뽑아주지 않는다고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를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케 돼 있는 법 절차를 공격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조선일보는 박 대법관의 인터뷰 자체를 문제 삼기도 했는데, “자기 뜻이 관철되지 않았다고 또 자기와 다른 의견을 가졌다 해서 법원 외부의 언론을 빌려 다른 대법관들을 비판했다”며 “일부 판사들이 신 대법관이 지법원장이었을 때 보냈던 이메일을 그가 대법관이 되자 언론에 유출시켜 공격한 행동과 비슷하다”고 비난했다.

조선일보는 3면에서도 박 대법관을 비난하는 법조계 인사들의 발언을 실었다. 조선일보는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모임’이라는 단체의 회장이 “그 발언이 의도적이라면 이는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고 말했으며, 한 부장판사는 “박 대법관의 발언은 판사들에게 위법․탈법을 조장하는 것”, “지금 무슨 쿠데타를 하자는 것이냐”라는 등의 발언으로 비판했다고 전했다.
또 같은 면의 다른 기사 <‘사법파동 단골’ 朴대법관… 4차례중 3차례 주역>에서는 박 대법관을 ‘친노세력’으로 몰려는 행태를 보였다.
이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박 대법관이 “1971년 1차 사법파동을 제외하고, 우리 역사에서 벌어졌던 4차례 사법파동 중 3차례의 주역”이었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2003년 4차 사법파동에 대해 “일부는 이 사건을 ‘사법 권위주의에 대항했다’고 평가하지만 다른 한쪽에선 ‘노무현 정권 출범으로 파워 집단으로 부상한 민변(民辯) 등 이른바 진보세력이 벌인 권력 게임’이라고 해석한다”며 “이후 스스로 법원을 뛰쳐나간 ‘박시환 판사’가 2005년 대법관이 돼서 컴백하면서 추측은 현실이 됐다”고 전했다. 또 박 대법관이 ‘우리법 연구회’ 창설을 주도했다며 “법조계 일각에선 노 전 대통령과 동향(경남 김해)인 박 대법관을 ‘진보 몫 대법관’ ‘노사모 대법관’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15일과 19일 판사들의 신 대법관 사퇴 여론을 비난하는 한편으로 신영철 대법관을 향해 ‘재판개입이 아니라는 대법원의 판단으로 명예를 지켰으니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라’는 주문을 내놨다. 얼핏 신 대법관의 자진사퇴를 권고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오늘 조선일보는 자신들의 속내가 무엇인지를 명백하게 드러냈다.
조선일보는 신영철 대법관 재판개입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그가 자리를 지키는 것보다 ‘사법부 독립성’을 요구하는 판사들의 목소리를 꺾어놓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 듯하다. 그러나 판사들의 신 대법관 사퇴 여론을 누그러뜨릴만한 방법이 보이지 않자 엉뚱한 ‘표적’을 찍어 인신공격과 색깔공세로 ‘사법파동’을 차단해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는 지난 해 8월 박재영 판사, 올해 3월 김기영 판사에 이어 조선일보의 눈 밖에 난 법관들을 인신공격하는 방식으로 사법부를 ‘길들이겠다’는 오만한 언론권력의 사법부 능멸 행위라고밖에 볼 수 없다.
이명박 정권 들어 검찰과 경찰은 그야말로 ‘정권의 시녀’로 전락했다. 사법부 역시 정권의 눈치를 본다는 비판을 받는 경우가 많지만, 검찰과 경찰처럼 일사분란하게 이 정권의 뜻을 따르지는 않는다. 지난 시절 사법부 독립을 위한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다행스러운 현상이다. 반면 조선일보에게는 이명박 정권 아래에서도 ‘정권의 의중’이 아닌 법률과 양심에 따른 결정을 내리는 법관, ‘사법부 독립성’을 보장하라는 법관들이 눈에 가시와도 같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똑똑히 알아두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조선일보의 나라가 아니며 사법부는 조선일보가 시키는 대로 판결을 내리는 곳이 아니다.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권력을 과신하고 오만한 ‘사법부 길들이기’를 중단하지 않는다면 보수적인 분위기의 사법부에서조차 조선일보 권력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보라. 이념을 떠나 민주주의와 상식을 존중하는 모든 사람들이 조선일보를 정상적인 언론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법부도 내뜻대로 주무르겠다’는 조선일보의 오만함이 결국 조선일보를 망칠 것이다. <끝>
 
 
2009년 5월 20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