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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 신임 이사를 결정 못하는 방통위, 고민 중인가 눈치 보는 중인가?(장행훈)
등록 2015.08.1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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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 공영방송 이사 추천 회의가 파행을 겪는 이유

공영방송 신임 이사를 결정 못하는 방통위,

고민 중인가 눈치 보는 중인가?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MBC의 대주주인 방문진(방송문화진흥회)이사 임기가 8일로 끝났으나 방통위(방송통신위원회)가 차기 이사를 임명하지 못하고 있다. 방통위는 임기가 8월31일로 임박해 있는 KBS의 이사 추천도 못하고 있다. 2명의 야당추천 위원들이 제기한 공영방송의 차기 이사 임명‧추천 원칙 문제를 3명의 여당추천 위원들이 토의를 거부하면서 야기된 파행의 결과다. 차기 이사 임명‧추천 건 회의가 벌써 3차례나 무산됐다. 방통위가 공영방송의 장래에 관한 중요한 문제를 앞에 놓고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몰라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는 모습을 본다.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의 성격상 공영방송의 주요 문제를 여당추천 위원들이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일 수 없다. 만약 여당추천 위원들이 야당추천 위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일방적으로 안건을 처리할 경우 중대한 정치적 법적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방송의 공정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래서 언론계가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야당추천 위원들이 제기한 3원칙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들어 공영방송이 보여준 행태를 지켜본 사람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제 다. 야당추천 위원들이 7월29일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원칙은 1) 여야가 나눠 먹기식 인사는 이제 지양하자 2) 특정인의 공영방송 이사 3연임(連任)은 이사직 독점으로 이사회 구성의 다양화를 해치고 “정치권과의 유착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금지해야 하며 3) 그 동안 공영방송 이사를 하면서 방송의 자유와 독립, 제작 자율성 침해 등으로 물의를 빚은 인사를 선임‧추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고삼석 야당추천 위원은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대선 당시 공영방송 구조 개선을 공약했던 사실을 상기시켰다. 공약집을 보면 “방송은 공공성을 지닌 미디어이나 공영방송의 지배구조에 정치권의 영향력 행사로 독립성 중립성 침해로 논란이 발생하고 있다고 진단하며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적혀 있다. 그러므로 공약의 취지를 구현할 수 있도록 이사회를 구성하게 하라는 것이다.

 

▲ 언론단체들은 지난 6월 30일 프레스센터에서  ‘공영방송 이사회 활동평가와 과제’ 토론회를 열었다.
 

 

명실상부한 방송 독립을 보장한 프랑스


우리보다 반년 먼저 대선을 치룬 프랑스에서도 공영방송 문제가 제기됐었다. 보수 정당의 사르코지 대통령은 공영방송을 자신의 선전에 자주 이용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방송위원회가 추천하는 인물인 공영방송 사장을 대통령이 임명하겠다고 법을 고쳤다. 언론의 비난이 많았던 것은 불문가지다.


경쟁자인 사회당의 올랑드 후보는 사르코지의 방송정책을 비판하고 대통령에 당선되면 공영방송의 독립을 보장하는 제도개혁을 단행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는 공약대로 당선 후 방송법을 고쳤다. 공영방송의 대통령 지명 조항을 삭제했다. 방통위원의 정당 배정도 여당 추천위원이 다수이던 것을 여야 동수로 하고 상하 양원의 문화위원회에서 3분의 2 다수로 위원을 선정하도록 했다. 여야 추천을 막론하고 3분의 2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방송위원이 될 수 없게 했다. 당 추천만 받으면 방송위원이 되는 게 아니고 여야 의원의 절대다수가 방송에 관해 공정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판단해야 방송위원이 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명실상부한 방송의 독립을 보장한 것이다. 


프랑스는 우리에게 새로운 교훈을 한 가지 더 보여주었다. 언론비평 시민단체인 아크리메드(Acrimed)가 대선 1차 투표(프랑스는 2차 결선투표를 한다) 후보들 전원을 상대로 그들의 방송정책을 질문하고 그 답변을 보도했다. 집권 전에 민주주의를 운영하는데 방송의 독립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다짐을 받아두는 것이다. 특히 박근혜 같이 공약을 안 지키는 후보에게는 절실히 필요한 절차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집에는 언론정책 항목이 없다. 물론 방송항목 공약도 없다. 공약집의 방송통신 항목에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한 마디가 들어있을 뿐이다. 방송을 민주주의 국가에서 핵심적인 언론역할을 하는 미디어로 보기 보다는 하나의 “사업”으로 육성하겠다는 뜻이 더 강하다. 그러니까 정부조직법에서 방송은 방통위가 아니라 미래창조과학부에 소속된 것이다.

 

 

“MBC를 철저하게 망쳐 놓은 인물이 KBS로”?


야당추천위원들이 제기하고 있는 3원칙 중에서 가장 화제가 된 대상이 “3연임” 문제다. “3연임”은 한 사람이 공영방송 이사를 독점한다는 것이 금지해야 할 첫 번째 이유고 대상인물이 어느 누구보다 방송을 잘 아는 전문가로 인정받을만한 인물이냐가 다음 의문이며 무엇보다도 직전 임기 동안 그 사람의 활동에 대한 평가가 그를 3연임 시킬 필요가 있을 정도로 모든 사람이 공감할 정도였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방통위 김재홍 상임위원에 의하면 “방문진 이사를 6년 동안 했던 이가 KBS 이사를 하겠다고 신청을 했는데 그렇다면 경쟁사인 두 회사 구성원들은 이런 행동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벌써부터 해당 방송사들의 구성원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이것은 한 자리에서 3연임을 하는 것보다 더 큰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다.”

예상했던 대로 KBS 내부에서 “방문진 이사에서 KBS 이사로 3연임 하겠다는 차기환 반대” 운동이 일고 있다. 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권오훈)는 지난 5일 성명을 내고 “방문진 이사를 역임하며 MBC를 철저하게 망쳐놓은 인물이 청와대의 강력한 지지 아래 KBS 입성을 앞두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며 “전무후무한 3연임 차기환은 KBS 이사로 절대 안 된다”고 주장했다.
KBS본부는 “청와대가 차 이사를 KBS에 입성시키려는 것은 (결국)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그를 KBS 장악의 첨병으로 활용하기 위한 의도”라며 “청와대가 그를 KBS에 밀어 넣으려고 한다면 전면적인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 한국의 언론은 중대한 위기에 처해 있다. 그 책임이 이명박‧박근혜 두 정권에 돌아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권력과 유착하고 있는 조중동에도 상당한 책임이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는 KBS‧MBC 차기 이사 임명‧추천이 실현된다면 그것은 방통위 최성준 위원장과 여당추천 위원들이 전적으로 책임질 일이다. 이번에 임명‧추천되는 이사들은 내년 총선과 그 다음해 대선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법과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생활원칙으로 삼아온 최성준 위원장에게 가장 무거운 책임이 돌아갈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권력의 눈치를 보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잘못을 저지를 때는 지금 민주시민들이 준비하고 있는 “반헌법(反憲法)행위자 열전”에 오를 수 있다는 것도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