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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질식당한 MBC 시사교양국 (정재홍)
등록 2014.11.11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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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 MBC 교양제작국 해체를 애도하는 작가의 글

결국 질식당한 MBC 시사교양국




정재홍(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



2014년 10월, MBC 교양제작국이 해체되고 PD와 작가들은 예능, 사업팀, 시사제작국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로써 <인간시대>, <휴먼다큐 사랑>,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MBC다큐스페셜 >, < PD수첩 > 등 숱한 히트 프로그램을 만들어 온 시사교양국 체제가 종말을 맞았다. MBC 백종문 미래전략본부장은 “이번 조직개편 등은 방송광고 매출 급감 및 미디어 환경 변화에 대응해 방송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교양제작국이 변화된 미디어 환경에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조직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과연 교양제작국, 나아가 시사교양국 체제는 경쟁력을 잃고 수명이 다한 조직이었나? 지난 30년 동안 MBC의 공영성을 지켜온 조직, 그러나 이제는 쓰러진 MBC 시사교양국을 돌이켜 본다.





다양성을 인정한 조직


내가 MBC시사교양국에 처음 발을 들여놓는 것은 1996년, 당시 여의도 방송센터 4층 시사교양국에는 PD와 작가 등 100여명이 복작대고 있었다. 분위기는 뜨거웠다. 전화통을 잡고 섭외하는 소리, 회의하는 소리, 격렬히 토론하는 소리…… 프로그램은 다양했고 제각기 활력이 넘쳤다. <10시 임성훈입니다>에서는 구성애 씨가 질펀한 성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경찰청 사람들>에서는 어벙한 경찰관이 등장해 “당 경찰서에서는 본 사건을…” 식으로 무용담을 전해 인기를 끌었다. ‘권씨부자전’ 등 감동과 재미를 선사한 <인간시대>가 있었고 정통 다큐멘터리를 지향하던  < MBC스페셜 >이 있었다.


그리고 < PD수첩 >도 있었다. 그 무렵 에는 백종문, 윤길용, 정길화, 송일준, 최승호, 김환균 등 쟁쟁한 PD들이 현장을 누비며 취재를 했다. 당시 나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다큐멘터리 이야기 속으로>를 맡았다. 재미를 추구하는 프로그램과 정색하고 불의를 질타하는 프로그램, 그리고 감동을 선사하는 프로그램이 공존했다. 모든 프로그램이 진지해야할 필요도 없었지만, 마찬가지로 모든 프로그램이 재미만을 추구할 이유도 없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풍토, 이것이 MBC 시사교양국의 힘이었다. PD와 작가들은 각자 자신의 프로그램에 최선을 다했다. 프로그램을 열심히 만들지 않는 PD는 존경받지 못하는 것이 당시 시사교양국의 풍토였다. 시청률? 동시간대 경쟁사 프로그램을 압도했다. 예능이나 드라마 등 인기 장르와 맞붙어도 결코 밀리지 않았다. 그 즈음 송연모임에서 터진 은희현 국장의 즐거운 비명이 기억난다. “우리가 예능국이야? 시사교양국 시청률이 대체 왜 이렇게 높은 거냐고!”



자율성을 존중한 조직


좋은 인재가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을 만든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라도 능력 있는 인재가 빠지면 하루아침에 몰락하는 것이 방송 현장이다. 그런데 좋은 인재가 강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이 있다. 자율성이다. 자율성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인재라도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없다. 그런 면에서 MBC 시사교양국은 경쟁력 있는 조직이었다. PD와 작가는 자율적으로 방송소재를 결정했고 양심에 따라 취재하고 방송했다. (이명박 정권 이전까지 얘기지만) 경영진의 간섭은 배제됐다. 프로그램 제작을 국장이 책임지는 “국장책임제”가 시행됐다. 이렇게 확보한 자율적인 공간에서 시대를 앞서가는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이 제작됐다. 시사교양국장과 간부들은 제작 자율성을 지켜주는 방패 역할을 했다. 권력에 줄을 대는 간부, 정권의 눈치를 보며 보직에 연연하는 간부는 비웃음을 받고 도태되는 조직이었다. 김태현 팀장의 당부가 기억난다. “PD수첩이 해야 할 이야기라면 성역 없이 취재해라. 책임은 내가 진다. 문제가 되면 내가 사표를 던지겠다.”



권력에 맞서 진실을 이야기한 조직

  

MBC의 대주주는 국가, 즉 국민이다. 공영방송인 것이다. 그래서 MBC는 극단적인 이윤을 추구하거나 권력의 눈치를 보며 할 말을 못하는 일부 민영방송과는 달라야 한다.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것이 MBC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인 것이다. 시사교양국은 MBC 내에서도 특히 공영성에 충실한 조직이었다. 2002년 경 최진용 팀장이 말했다. “앞으로 선정적인 아이템은 하지 말자. 대신 성역 없이 취재하자. 시청률에 일희일비하지 말자.” 시청률에 연연하거나 권력의 눈치를 보지 말고 국민이 꼭 알아야 할 내용을 방송하자고 주문한 것이다. 이후 PD수첩은 효순이 미선이 사건, 친일파는 살아있다 시리즈,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문제, 미국 쇠고기 수입 문제, 4대강 문제, 검사와 스폰서, 총리실 민간인 사찰 등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성역 없이 보도했다. 때로는 권력의 압력을 받았지만 굴복하지 않았다.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MBC 시사교양국 전체가 똘똘 뭉쳐 국민의 알권리를 지켜왔던 것이다.



질식당한 조직, MBC 시사교양국


국민의 알권리에 충실한 방송, 권력에 아부하지 않는 방송이 눈엣가시가 된 것일까? 이명박 정권 들어 MBC 시사교양국은 온갖 수난을 당했다. ‘미국산 쇠고기 편’을 담당한 조능희 팀장과 송일준, 김보슬, 이춘근 PD, 그리고 김은희, 이연희 작가가 체포됐다. 훗날 무죄가 확정됐지만 이들은 수년 동안 재판을 받으며 피 말리는 고통을 당했다. 제작 자율성은 극도로 축소됐다. 방송 소재는 간부가 결정했다. 정권에 불리하거나 민감한 아이템은 거부당했다. 최승호, 이우환 등 역량있는 PD들이 차례로 쫓겨나고 작가들마저 전원 해고됐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시사교양국은 서서히 질식당해 왔다. 결국 국민의 알권리 보다 윗사람의 눈치를 살피는 조직이 더 필요했던 것일까? MBC 경영진은 2012년 시사교양국을 시사제작국과 교양제작국으로 분리한데 이어 지난달 교양제작국을 폐지했다. 이와 함께 김환균, 조능희, 이근행, 이우환, 한학수, 김재영, 이춘근 등 시사교양국을 이끌어 온 역량있는 PD들은 교육명령을 받거나 신사업개발센터 등 비제작부서로 발령했다. 이로써 국민의 알권리에 충실했던 시사교양국 30년의 명맥이 끊겼다. 교양제작국 해체와 관해 백종문 본부장은 “교양 프로그램과 예능 프로그램 접목을 통해 시청자 트렌드 변화에 맞춰 MBC 교양성을 강화시키도록 했다”고 밝혔다. 시사교양국이 쓰러진 그 자리에 들어설 “MBC 교양성”은 대체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