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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지난 역사를 기억하고 지금 역사를 기록하라(이병남)
등록 2015.11.0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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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국정화 TF에 대한 언론보도 비평

언론은 지난 역사를 기억하고 지금 역사를 기록하라

 

이병남(민언련 정책위원, 언론학박사)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여∙야 간, 진보와 보수 간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그러나 3일 정부는 국민들의 반대 여론을 무시한 채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선언했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논란을 지켜보면서 훗날 역사교과서에 기록될 언론의 역사가 자못 궁금해진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3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 고시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사진=뉴스1

 

 

10월 25일 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준비하는 교육부의 ‘비밀TF'가 공개되었다.

교육부는 ‘TF 구성 운영계획안’을 작성해 놓고도 TF 구성은 아니라는 입장이며 청와대도 TF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직접 개입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비밀TF’을 보도하는 언론이 취하는 입장의 차이도 매우 크다.

 

‘비밀 TF’, 정부․여당의 책임 묻는 <한겨레>,<경향신문>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국정화 TF가 국정화를 총괄하며, 국정화 발표 한 달 전부터 운영해 왔고, 청와대에 매일 보고하고 있다고 보도(10월 26일)했다. 또한 국정화 TF의 실체 규명과 이를 비밀리에 운영하고 은폐하려 한 정부∙여당의 책임론 보도에 집중했다. 국정화 TF에 대한 실체 규명과 이를 비밀리에 운영하고 은폐하려 한 정부와 여당의 책임론을 강조한 것이다.

<한겨레>는 TF가 국정화 추진 논리를 생산하고 제공한 데서 그치지 않고, 교사∙학부모∙언론의 동향을 파악하는 ‘사찰활동’을 해온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10월27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도 국정화 비밀조직의 불법 여부와 활동의 타당성을 따질 것을 주장하며 ‘역사교육지원팀 2배가 넘는 15명을 보강한 것을 단순한 지원 성격이라고 볼 수 없다’며 ‘체계적인 여론 조작이라는 의심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비밀TF’ 쏙 뺀 채 양비론으로 물타기 나선 조중동

이에 비해 보수언론은 ‘비밀TF’의 비밀을 제대로 지켜주고 있다.

<조선일보>는 ‘비밀TF ’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교과서TF'로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정부의 TF 운영보다는 정부의 교과서 TF건물을 범죄현장 덮치듯 한밤에 급습했다며 사실 현장을 확인한 야당의 행동을 문제 삼았다.

야당의원들의 행위를 ‘한밤 급습’, ‘월권’, ‘과잉대응’으로 규정하고 책임소지에 대해서도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책임을 몰아주는 양상을 보였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비밀TF’의 실제 업무 상황과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도를 회피한 채, 여당과 야당의 갈등 상황을 부각하며 야당과 정부를 동시에 비판하는 양비론 입장을 취했다.

방송에서도 교육부의 ‘비밀TF’가 청와대 개입과 실정법 위반의 문제가 있다고 보도한 언론사는 JTBC 뿐이다.

교육부의 해명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교육부는 청와대와 무관하게 TF를 운영하였다는데 믿음이 가지 않는 것은 필자만 해당되는 일인가?

 

역사에 언론과 언론인이 어떤 기록으로 남겨질 것인가

교육부와 청와대의 입장을 전달하며 본질을 흐려가는 몇몇 언론매체들을 보면서 ‘우리의 이익이 무엇인지 배우고, 그것이 정부의 이익과 어떻게 다른지를 알려면 역사를 통해서 배워야 한다.’는 하워드 진의 연설이 떠오른다.

하워드 진은 역사를 제대로 배우고 이해해야만 “지금 이 순간 권력을 쥔 엘리트들에게 충성을 바치며 복종하는 하인이 아니라 민주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 역사를 알고 나면 정부 지도자들이 해온 거짓말의 역사를 알 수 있다. 정부의 이익이 국민의 이익과 일치하지 않을 때 정부는 더욱더 거짓말을 하려고 한다.”(2003년 6월 28일 연설문)고 주장하였다.

2004년 2월6일 캐임브리지 대학의 연설에서 “권력을 쥔 누군가가 당신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아주 권위적인 목소리로 말하고, 서로 다른 채널 12개를 통해 12번 말하면 어느새 그 말에 진실성이 담기게 된다. 역사를 알지 못하면 아마 그 말을 무작정 믿으려 할 것이다. 진위를 판단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라고 주장하면서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역사를 모르면 권력을 쥔 사람들이 마이크 앞에서 하는 말을 검토할 방법이 없다.

또한, 사람들이 쉽게 속는 것은 언론의 역할과 밀접하다.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정부에 도전하고, 정부가 지금 하는 일에 관해 바른말을 하는지 확인할 수 있게 하는 정보의 원천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쉽게 속는 것이다.

역사는 하나의 사건에 대한 기록이지만 이 사건을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특히 누구의 이익과 관련되어 해석되는가의 문제는 더욱 큰 편차를 불러온다.

언론은 현재의 우리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더불어 지나 온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석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훗날 역사 속에서 언론과 언론인이 어떤 기록으로 남겨질 것인지는 지금 스스로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