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박근혜 정부의 복지와 여우의 신포도(이용마)
등록 2014.11.18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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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복지 포퓰리즘과 인식의 전환

박근혜 정부의 복지와 여우의 신포도





이용마(MBC 기자, 정치학 박사)




눈치 보며 무상급식 기다리는 학부모

김 모 씨(43)에게는 9살짜리와 6살짜리 두 아이가 있다. 2010년 이후 무상급식 제도가 시행되면서 큰 아이는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온다. 둘째 아이는 올해부터 무상보육 대상이다. 어린이집 보육료를 내지 않는다.

그런데 내년부터는 상황이 달라지게 생겼다. 여당이 이기면 둘째는 내년에 보육료 지원을 받지만, 첫째는 급식비를 내야 한다. 야당이 이기면 다행히 둘 다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야당이 워낙 약하다보니 그럴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래도 야당이 이겼으면 좋겠다. 애가 없거나 애가 이미 커버린 다른 부모들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있기는 하지만.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을 둘러싼 여야 간의 논란이 낳은 상황이다. 


복지정책을 둘러싼 무차별적 공격

정부와 여당은 복지정책을 말하면서 자꾸 예산 문제를 들먹인다. 복지정책은 돈이 남아돌아야 할 수 있는 정책인데, 국내외 경제 위기 상황에서 무슨 돈이 있어 무상 복지를 계속 하느냐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의 이와 같은 입장은 최근 복지정책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나타나고 있다. 단적인 예가 야당에서 내놓은 신혼부부 임대주택 공급정책이다. 공공임대주택을 늘려 신혼부부에게 저리로 빌려주겠다는 야당의 정책에 대해 여당은 “무상 주택 정책”, “무상 시리즈의 절정”, “복지 포퓰리즘의 종결자”라고 공격했다.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 언론들도 앞다퉈 비난에 나섰다. “신혼부부에 집 한 채씩 주겠다는 야”(조선일보), “공짜로 신혼 집 주겠다니...수권 꿈꾸는 야당인가”(중앙일보), “달콤한 무상복지”(MBC) 등의 선정적인 문구를 뽑아, 야당을 신혼부부에게 공짜로 아파트를 주겠다는 정신 나간 집단인 것처럼 매도했다.

야당은 당연히 반발했다. 원 취지는 박근혜 대통령의 “행복주택”, 이명박 대통령의 “보금자리 주택”과 유사한 공공임대주택 확대정책의 연장선이라며 무상 주택이 아님을 설명했지만, 마이동풍이다.




포퓰리즘의 주범은 박근혜 정부와 여당

문제는 복지정책을 바라보는 정부와 여당 그리고 보수 언론의 태도이다. 최근 홍준표 경남도지사를 비롯해 정부와 여당에서 경제위기 상황을 틈타 복지정책이 나라 경제를 망치는 주역인 양 호도하고 나선 것이다. 정부와 여당, 보수 언론의 공격과 비난을 듣고 있자면 우리나라가 엄청나게 많은 복지정책을 오랫동안 시행하고 있는 복지국가인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사실 우리 사회에서 복지정책이 본격적으로 이슈화되기 시작한 것은 2010년 교육감 선거에서 무상급식 문제가 처음 제기되면서부터다. 무상급식은 기초자치단체와 교육청 예산 위주로 시행되다보니 지역별로 편차가 큰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상급식 정책이 인기를 얻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12년 대선에서 “경제민주화와 복지 정책”을 수용해 기초노령연금 20만원 지급, 무상보육, 반값등록금 등을 중요한 공약으로 내세우며 따라오기 시작했다. 문제는 표를 얻기 위해 야권의 무상복지 정책을 무조건 베꼈지만, 시행대책은 신중히 검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포퓰리즘의 전형이고, 그 포퓰리즘의 당사자는 바로 박근혜 정부와 현재의 집권 여당인 것이다. 

그 결과 박근혜 정부는 집권 이후 당초 약속했던 복지정책에서 계속 후퇴하고 있다. 급기야 자신들이 공약했던 무상보육 정책을 시행하기 어렵게 되자, 복지정책 자체를 공격하기에 이르렀다. 무상복지는 원래 불가능한 건데 무책임한 야당 때문에 일이 잘못됐다고 뒤집어씌우고 있는 현실이다.

박근혜 정부에게 복지는 여우의 신포도이다. 자신이 무능해 따먹지 못하게 되었는데도, 포도가 맛이 없어서 안 먹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 포도에 마치 독이 있는 것처럼 거짓 선전을 하고 있다. 저 포도를 먹으면 죽는다고 겁박을 하고 있다. 포도를 먹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의심이 들지만 섣불리 먹기도 어려운 딜레마에 봉착해 있다.


복지국가를 향한 인식의 대전환

현 정부와 여당처럼 복지정책을 단순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시혜를 베푸는 정책으로만 생각한다면, 복지는 그저 돈 문제일 뿐이다. 돈이 많을수록 이웃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여력이 커지는 건 너무 당연하다. 그런 단순한 인식 하에서 복지를 논하면 돈 없는 사람에게만 혜택을 주는 선별적 정책을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복지정책은 단순한 시혜성 정책이 아니다. 복지를 통해 경제를 돌리는 좀 더 “창조적인 경제”활동이다. 복지정책은 경제정책 전반의 변화와 맞물려 추진되어야 한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최근 언급했던 “소득 주도 경제성장”이 바로 그 일면이다. 이를 위해서는 재벌 중심의 경제성장에 모든 게 맞추어져 있던 우리 사회의 구조를 전면 혁신해야 한다. 기존의 재벌중심 성장정책에 시혜성 예산만 일부 끼워넣는다고 복지국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노동정책부터 환경정책, 건설정책, 통상외교정책 등을 총체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현 정부가 그걸 할 수 없다면, 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집권해야 한다. 인식의 대전환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