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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 돈타령에만 빠져 있을 것인가? (정연우)
등록 2015.01.0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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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위기의 공영방송, 그 해결책은 돈이 아니다

공영방송, 돈타령에만 빠져 있을 것인가? 



정연우(세명대학교 교수, 민언련 이사)


공영방송의 기자들이 취재 현장에서 욕설과 손가락질을 받는 것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언론학자들도 태어나지 말아야 할 방송, 귀태방송이라고 비난받던 종합편성채널보다 못한 방송으로 공영방송을 평가하기에 이르렀다. 


공영방송 KBS, MBC 로고


공영방송, 영향력은 높지만 공정성 신뢰도 심각하게 떨어져


미디어미래연구소가 한국언론학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평가 조사에서 종편인 JTBC는 신뢰성·유용성에서 1위, 공정성에서 2위를 차지했다. 국민의 방송이라는 KBS는 공정성에서 겨우 6위, 신뢰성에서 5위에 그쳤다. MBC는 공정성, 신뢰성, 유용성 부문에서 10위권 안에 하나도 들지 못할 만큼 참담했다. 언론학자들이 공영방송이 공정하지도 않고 믿을 수도 없으며 실생활에 쓸모도 별로 없다는 냉혹한 평가를 내렸다고도 볼 수 있다. 


그나마 언론학자들은 KBS의 영향력은 아직도 다른 미디어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는 결코 자랑할 일이 아니다. 공영방송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튼튼한 공론장이고 사회적 가치와 담론의 생산자이며 국민적 통합을 이끌어내는 사회적 자산이다. 그런데 이런 공영방송이 공정하지도 않고 믿을 수도 없는 데다 영향력만 크다고 진단했다. 이는 곧 현 공영방송은 국민의 눈과 귀를 가려 여론지형을 오도하고 건강한 공적 논의를 왜곡하는 사회적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평가이다. 미디어미래연구소는 공정성과 신뢰성을 회복하라고 요구하는 처방을 내놓은 셈이다. 


공정성‧신뢰성 회복하라는데, 엉뚱한 돈타령하는 방통위와 공영방송사


 공영방송이 제자리를 찾으려면 진실의 수호자이자 권력과 자본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자로서 합리적 여론지형과 사회적 공론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방송통신위원장과 공영방송 경영진들은 새해부터 돈타령만 하고 있다.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은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추진해 나갈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공정한 방송환경의 확립”이라며 “공영방송이 공영방송답게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우선 수신료가 주된 재원이 되어야 하므로, 이를 위해 수신료 현실화에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조대현 KBS 사장은 2015년 당면 과제 중 하나로 재원구조 안정화를 꼽으며 이미 국회에 제출된 수신료 인상안을 어떻게든 관철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안광한 MBC 사장은 더욱 노골적이다. “캐릭터, 브랜드, 테마여행 사업은 올해 자리를 잡아야 하고, 드라미아의 테마파크 개발도 본격화할 방침”이라고 했다. 그는 “현재의 지상파 위기가 유료방송 중심의 매체와 플랫폼 확장을 추진해온 정부 정책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며 MBC의 몰락을 정부 정책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방통위는 이미 2015년 지상파 광고총량제 도입을 비롯해 가상광고, 간접광고, 협찬고지에 대한 규제를 대폭 풀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투덜거리는 공영방송들을 다독거리기 위해 먹거리를 장만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저 모두 돈타령인 셈이다. 이들은 공영방송의 추락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애써 모르는 체하며, 오로지 방송 콘텐츠를 제작할 돈만 안정적으로 확보해준다면 공영방송은 이상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 당장의 단맛에 취한 나그네 꼴인 공영방송


불교 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 나그네가 길을 가다가 성난 코끼리를 피하려 황급히 우물 속으로 들어갔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정신없이 칡넝쿨을 부여잡고 우물 아래로 내려가다 보니 네 마리의 독사가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어디선가 사각사각 소리가 나서 위를 보니까 설상가상으로 붙들고 있는 칡넝쿨을 흰 쥐와 검은 쥐가 교대로 갉아대었다. 곧 끊어질지도 몰라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칡넝쿨에 집을 짓는 벌에게서 꿀이 한 방울씩 떨어진다. 나그네는 꿀 몇 방울이 더 떨어지기만을 애타게 기다린다. 자신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도 위급한 처지도 잊고 단맛에 취한 것이다. 


우화에서 나그네는 욕망이라는 꿀맛에 탐착한 중생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필자는 현 공영방송 경영진들이 바로 이 꼴이 아닌가 싶다. 그들은 공영성과 신뢰도를 잃은 공영방송의 심각한 위기를 뻔히 알면서도, 일단 방통위가 주는 벌꿀이나 기다리고 있다. 


게다가 사실은 공영방송이 꿀방울을 챙기는 것마저 녹록치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지탄받는 방송사를 위해 주머니를 선뜻 열어줄 국민은 없을 것이다. 수신료만 그런 것이 아니다. 광고확대만 해도 그렇다. 방통위가 추진하는 광고 규제 완화로 늘어난 광고는 시청자들은 짜증스럽게 할 게 분명하다. 엉터리 방송을 위해 그러한 불편을 견뎌줄 만큼 시청자는 너그럽지 않다. 당장 시청자들의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그러면 방송사들은 자신들의 호주머니를 위해 수신료 인상이 필요하다거나 중간 광고가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자사 뉴스로 포장하여 우호적인 여론몰이를 하려 들 것이다. 하지만 이런 속이 빤히 보이는 여론몰이 꼼수로 국민을 현혹시키는 것도 여의치만은 않을 것이다. 


공영방송의 유일한 해법은 공영방송다운 제자리를 찾는 것 뿐


공영방송이 위기를 극복하는 유일한 해법은 권력과 자본의 대변자가 아니라 건강한 공론장의 조성자로서 제자리를 찾는 것 뿐이다. 권력의 눈치나 보는 경영진이 인사권을 앞세워 탄압과 회유로 언론인 정신을 타락시키면 공영방송의 병은 치유되기 어려울 정도의 깊어질 것이다. 


무엇보다 공정한 방송을 요구하는 기자와 PD에게서 마이크와 카메라를 빼앗고 그들을 제작 일터에서 내쫓은 행태는 스스로 공영방송임을 부정한 것이다. 진실보도를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언론 환경을 찾아 역량 있는 언론인들이 떠나가는 방송사는 참된 공영방송을 실현할 수 없다. 허물어지는 공영방송을 되살릴 골든타임이 시시각각 지나가고 있다. 이대로 가면 방송인들 사이에서는 타성에 젖은 패배 의식이 독버섯처럼 퍼져나 갈 수도 있다. 공정한 방송을 하려는 내부적인 의지와 치열한 의식이 시나브로 시들어간다. 달콤한 꿀 몇 방울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