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언련과 나 - 김영석] 즐겁고 고마웠던 민언련에서의 시간들(2014년 9호)
등록 2014.09.23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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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고 고마웠던 민언련에서의 시간들


김영석 회원 l cguy1127@nate.com



불혹!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 한다. 그 시절 스물다섯의 청년이 이제 그 불혹을 눈앞에 두고 있다.


군대를 막 전역하고 서울에 다시 올라오기 전, 고향 전주에서 두어 달 백수 생활을 할 때였던 것 같다. 군대만 전역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전역을 하고 나서는 내가 해야 할 바를 찾지 못해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나는 정말 손에 잡히는 일이라면 다 해보자는 심정으로 공사장 막일부터 호프집 알바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 또래보다 늦게 군대를 다녀왔기에 스무 살 초반의 열정이나 도전에 대한 생각보다는 앞으로의 생활에 대한 고민이 더 커서 무작정 몸을 혹사했던 것 같다. 그렇게 전역 후 3개월을 지내고 남은 학업을 마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 나는 여전히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체 막연히 졸업만을 생각하며 학교생활을 여느 복학생과 마찬가지로 보내고 있었다.


무더위도 한풀 꺾여 시원한 바람이 불어올 즈음 같은 시기에 군대를 다녀온 친구와 술을 한잔 기울이게 되었다. 복학생의 술자리가 의례 그렇듯 술자리의 화제는 군대 가기 전 ‘추억팔이’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중 학생회장을 지냈던 그 친구가 민중열사추모제를 함께 준비해보는 게 어떠냐며 넌지시 말을 건넸고 거나하게 취했던 나는 덥석 그러자고 승낙을 해버리고 말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막연하게 학교를 다니던 즈음이라 그 친구의 제안은 스무 살 한참 때의 고민이었던 민중과 학우에 대한 고민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고 추모제 문화제 총감독으로 행사를 진행하면서 콘티를 짜고 영상을 제작하고 공연을 준비하면서 막연했던 진로에 대한 고민도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TV속에서 언제나 발 빠르게 소식을 전하던 방송기자를 동경했었다. 그래서 대학 학과를 선택할 때도 방송기자가 되기에 조금이라도 유리한 학과를 지망하려 했었는데 스물다섯이 되어서는 그런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고 있는 내 자신이 오히려 신기하게 느껴졌다. 추모제 준비는 내게 그 시절 꿈을 다시 상기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고 방송기자보다는 방송을 만드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서두가 길었는데 이제부터 민언련과 나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방송PD가 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그 시절 언론관련 시험을 준비하는 또래들이 그러했듯 나도 일반상식과 국어 등 시험에 필요한 공부와 스터디를 하게 되었다. 한참 도서관과 강의실을 전전하다 보니 공부의 지루함이나 어려움보다는 이렇게 준비하는 게 정말 맞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 즈음 소위 운동권하고는 무관했던 친한 친구가 시민단체 한 곳을 매주 다니면서 현실 언론에 대한 비판이나 사회에 대한 고민이 늘어가는 것을 보면서 신기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는데 그 친구가 방송기자를 준비하던 터라 나도 그 시민단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친구 따라 강남도 간다는데 친구에게 나도 한번 가보자며 발을 디딘 시민단체가 바로 지금의 민언련이었다. 당시 나는 방송분과 모임에 가서 좋은 사람 만나 술 한 잔 하겠다는 심정이었는데 그 날의 모임이 이후 나와 민언련과의 긴 인연을 맺어주는 가교가 되었다. 남다른 고민과 행동력 있었던 활동가 형, 누나들은 나에게 수도 없는 고민을 안겨 주었고 천진했던 방송분과 친구, 동생들이 하나 둘 바른 언론에 대한 고민을 통해 성장해 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내 대학 마지막 2년을 민언련과 함께 했었다. 사회와 언론에 대한 바른 비판, 좋은 방송에 대한 격려 등 민언련이 하는 활동들이 많았지만 그 시절 가장 좋았던 활동을 꼽으라면 앞으로 사회를 이끌어갈 많은 청년들에게 사회를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을 갖게 해주던 ‘언론학교’ 같은 교육활동이었지 않나 싶다. 보통 민언련을 찾던 친구들은 언론 관련 일을 준비하던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런 친구들이 언론학교나 방송, 신문모니터 활동을 통해 공정 언론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후 자기분야에서 공정한 언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게 된 것은 공정 사회를 위한 민언련의 큰 역할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만나는 좋은 사람과의 관계도 민언련이 주는 큰 선물이기도 하다. 


비록 지금은 하고자 했던 방송 PD의 일이 아니라 평범한 회사원으로 근무하고 있지만 청년 시절 민언련 활동을 통해 보고 배웠던 일들 하나하나가 생활의 근간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게 민언련에서의 시간들은 좋은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즐거울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지만 바른 언론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배울 수 있었던 고마운 시간이기도 했다. 요 근래의 언론을 보면 바른 사실 전달과 공익을 위한 방송보다는 편파적 왜곡 보도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사건 방송에 너무 치우쳐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러한 언론 환경이 변화될 수 있도록 민언련이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항상 그 중심에서 힘써 주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