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 이야기 - 오수진 활동가] ‘서울살이’의 꿈, 그리고 행복
등록 2014.09.2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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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살이’의 꿈, 그리고 행복


오수진 활동가 l ccdm1984@hanmail.net





‘무한도전’에 나온 여의도 환승센터에서 매일같이 버스를 타고 영화 ‘더 테러 라이브’에서 폭파되던 마포대교를 건너 출근한다. 주말엔 10cm의 노래에 나오듯 홍대 ‘은하수다방’에 가서 홍차와 냉커피를 마신다. ‘테이스티 로드’에 나온 칵테일 바에 친구와 함께 가서 12시 넘어 집에 가기도 하고 ‘서울투어’ 어플에 나온 반포 무지개분수를 보러 퇴근 후에 가기도 했다. 나는 그토록 바라던 서울생활을 하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서울에 대한 로망이 많았던 나는 꼭 서울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서울생활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서울 돈은 돈이 아니다’던 엄마의 말처럼 나는 비싼 집세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작은 원룸에서 선배와 함께 살기로 했다. 나의 집은 내가 즐겨하는 요가와 훌라후프를 하기엔 너무 작다. 또 집을 들어서면 가로막고 있는 싱크대와 냉장고 탓에 게걸음을 걸어야 방으로 진입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좁은 집에 집안일은 얼마나 많은지 머리카락은 털고 털어도 끊임없이 나오고, 화장실 청소, 설거지, 벌레 잡기 등등등 집에 가면 할 일이 너무 많다. 


하지만 그것들을 즐겨야 할 이유가 있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영광을 얻었기 때문이다. 기자의 꿈을 갖고 준비한 3년의 시간동안 꿈이 있기에 행복했지만 막막함과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수많은 취업준비생이 그러하듯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져갔고 시간이 갈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걱정만 쌓여 갔다. 서울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걷어 차버린 광주의 좋은 직장들에 대한 미련도 가득했고, 어리석은 선택에 대한 후회만 하며 시간을 보냈다. 시민단체 인턴 활동 후 끓어오르는 가슴을 좁은 학교 도서관에서 가라앉히는 내 신세가 너무 서글펐다. 잠도 오지 않았고 너무도 행복하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민언련 공채는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언론을 바라보는 시민단체. 기자는 아니지만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일조할 수 있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이미 자신감이 결여된 상태라 ‘나는 안 될 거야’라는 생각이 가득해 그냥 지나치려 했고, 정신차려 마감일을 얼마 안 남기고 자기소개서를 냈다. 운 좋게도 면접을 볼 수 있었지만 서울 나들이 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비우며 올라왔다. 그리고 끝나서도 ‘좋은 경험했다고 생각하자’며 4시간을 달려 집으로 왔다. 다음 날, 02-000-0000 전화번호가 핸드폰에 뜨자마자 나는 알았다. 합격했구나. 


하지만 그 후 며칠도 눈물로 지새워야 했다. 부모님의 아쉬움과 걱정이 가득한 반대에 부딪혀 취직에 성공하고도 웃지 못했고, 이렇게 포기해야 해야 할지 모른다는 슬픔에 밤낮없이 눈물만 줄줄 흘렸다.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들의 응원으로 한번 해보기로 결심하기까지 길고 긴 일주일을 보냈다. 


아침 7시 50분, 알람소리를 들었지만 쉽게 몸이 일으켜지지 않는다. 8시쯤 일어나서 세수하고, 로션을 바르고, 같은 방 언니가 챙겨놓은 밥에 김 가루를 뿌려 먹는다. 칫솔을 입에 물고 설거지를 한 뒤, 머리를 동여매고 옷을 입고 집을 나선다. 6513 버스를 타고 사십여 분을 달려, 여의도 지하차도입구에서 내린다. 다시 여의도 환승센터까지 걸은 후 160, 260번 버스를 타고 마포경찰서 정류장서 내린다. 그리고 몇 걸음을 걸으면 나의 직장, 민주언론시민연합에 도착한다. 나는 이 나라의 중심 ‘서울살이’의 꿈을 이뤘다. 그리고 좋은 일을 할 수 있어서 참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