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인 듯~ 정상 아닌~ 정상 같은~ 그 남자들의 격론
등록 2014.08.2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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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구저바구] 삶이야기

정상인 듯, 정상 아닌, 정상 같은 그 남자들의 격론



노미정(민주언론시민연합 회원)


캐나다행 비행기 안이었다. 뉴욕을 경유해서 퀘백주 몽헤알에 도착하는 저렴한 티켓을 끊은 덕분에 16시간을 견뎌내야 했다. 장시간 비행을 가장 효과적으로 버티는 방법은 역시 알콜의 기운을 빌려 잠드는 것. 나는 승무원이 끌고 오는 카트만을 기다렸다. 마침내 마주한 승무원에게 나는 당당히 요구했다. “와인 한 병 주세요!” “와인은 7달러입니다.” 애석하게도 알콜류는 별도구매였다. 외국에 도착하기도 전에 피 같은 돈을 쓰고 싶진 않았기에 애플주스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로 했다. 10여분 뒤, 음료 카트를 끌고 ‘기내 한 바퀴’를 마친 승무원이 다시 내게로 와 살짝 물었다. “레드? or 화이트?” 순간 무언가 직감한 난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 “레드 플리즈~” 승무원은 엷은 미소와 함께 작은 레드와인 한 병을 내게 건냈다. 그녀의 눈빛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넣어둬~ 어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용되는 ‘보편적 정서’를 처음 맛 본 순간이었다. ‘인지상정’은 이럴 때 쓰는 사자성어라고 말하는 내게 혹자는 “그냥 네가 불쌍해서 한 병 준거야~”라고 면박을 주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해당 항공사 규정이 ‘알콜류 별도 구매’로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아 일부 승무원들의 ‘재량’이 용인되기도 했다는 사실을 안 건 몽헤알에 도착한 뒤였다. 


몽헤알에서 지내는 동안 유럽, 아랍, 미주 등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친구들을 만났다. 어학원에서 진행된 토론이 ‘펍’으로 이어지고 다시 누군가의 집에서 와인과 소주를 섞어 마시며 ‘그 밤의 끝을 잡기’가 일쑤였다. 쌓여가는 술병만큼 우정은 돈독해 졌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유럽인인지, 패트릭이 한국인인지, 토모요가 아프리카인인지 그 경계가 무색해질 정도로 우리는 서로를 깊이 이해하게 됐다. 진정 그 순간만큼 우린 “위 아 더 월드” 였다. 이렇게 그들과 여러 방면으로 교감하고 교류하면서 개인의 성향이 문화적 보편성과 특수성에 우선한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많지 않은 나이에 경험한 것이 ‘행운’이라 느껴질 만큼 다양성의 세계는 흥미로웠다. 넓어진 시야는 ‘덤’이었다. 



△JTBC<비정상회담> 기획의도 캡쳐



여기 당시의 느낌을 상기시키는 한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비정상회담>, JTBC가 야심차게 내놓은 새 예능 프로그램으로 일명 <미녀들의 수다> 남자판이라 불린다. ‘국제 청년들의 평화와 행복한 미래를 위해 각국 세계 청년들이 뭉’쳐서 ‘행복을 갈구하는 이 시대 청춘들에게 보다 명확하고 색깔 있는 미래의 답을 제시’하겠다는 것이 이 예능프로그램의 기획의도다. 흰 양말에 보트슈즈를 신은 것만큼이나 참 부조화스럽다. 그러나 한 회분 시청 뒤 생각이 조금 변했다. '미래의 답' 까지는 아니더라도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개인들의 생각과 삶의 방식이 타국․타문화권 사람들의 토론을 통해 전해진다는 점에서 ‘재고’의 여지를 주는 역할 정도는 소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현실보다 꿈이 우선! 정상인가 vs 비정상인가’ ‘결혼이 숙제처럼 느껴지는 나! 정상인가 vs 비정상인가’ 등 이들의 토론 주제는 사실 진부하다. 그러나 국가와 문화권을 넘어선 11인의 생각이 한국어를 통해 전해질 때 진부함이 신선함으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다. 종종 고개도 끄덕여 진다. 예능과 시사의 경계에 선 프로그램에서 진행되는 이 흥미로운 토론을 오래 지켜볼 수 있길 바란다. 


오랜만에 페이스북에 접속했다. 같이 와인과 소주를 섞어 마시던 친구들에게 안부 인사나 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