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글] “열심히 할 테니 도와주세요!” (2014년 7호)
등록 2014.07.28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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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할 테니 도와주세요!”


김언경 사무처장 l true4731@naver.com






안녕하세요. 김언경입니다. 제가 사무처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저에게 민언련 사무처로 다시 돌아오는 것은 ‘이 나이에 늦둥이를 갖는 것’만큼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이라면 오히려 덜 겁먹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민언련의 의미와 사회적 책무를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저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잘 알고 있고 그에 인한 스트레스도 많이 받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도망을 다녔지만, 결국 저는 3월 25일 민언련으로 출근했습니다. 


지방선거 모니터를 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없던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언론의 ‘보도참사’는 처참했습니다. 국민 누구나 그랬겠지만 분노와 슬픔을 자극하는 신문과 방송을 매일 모니터하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습니다. 청계광장에서 촛불을 들며 매주 두세 번씩 기자회견을 하던 어느 날 밤, 결국 저는 ‘난 역부족이야’라는 늪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사무처장이 된 지 석 달이 되어 가는데 뭔가 제대로 파악하거나 계획조차 세우지도 못한 채 허겁지겁 두서없이 주어진 상황을 ‘땜질’만 하다 지쳐버린 저 자신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튿날 안방 화장실에 있던 『교사를 춤추게 하라』라는 책의 한 구절을 읽게 되었습니다. 가끔 어떤 상황에 딱 맞는, 이른바 ‘시절 인연이 맞는’ 글을 만나곤 하는데 저에게 그 글이 그랬습니다. 95년 고베 대지진 당시 저자 우치다 타츠루가 몸담고 있던 대학도 큰 피해를 보았답니다. 저자는 “인간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되지 않을 때,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라고 표현하더군요. 지진이 난 다음, 그는 온종일 아래만 내려다보며 쓰레기를 치우고 넘어진 가구를 세우는 등 ‘소쿠리로 물 뜨기’ 같은 작업을 계속했답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몇 명이 무리를 지어 일했는데, 누군가가 “이런 식으로 해봤자 의미가 없다. 제대로 매뉴얼을 만들고 중앙에서 컨트롤해 쓸데없는 노동력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 말을 듣지 않았고 그는 계속 주장만 하다가 화가 나서 집으로 돌아갔답니다. 저자는 “그의 솔루션에 누구도 흥미를 보이지 않은 건, 그가 돌을 줍지도 않고 오로지 ‘효율적으로 사람들이 돌을 줍게 하는 방법론’에 시간을 쏟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저자는 제대로 계획을 세워서 중요한 것부터 일하는 건 “일상적인 경우”라고 하더군요. 컨트롤하는 일 자체에 자원을 투입해야만 하며, 적절한 계획을 세우려면 피해에 대해 정밀하게 조사한 뒤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지 합의해야 하고 다시 일을 할당해야 하는데 위기상황에서는 이게 불가능하다고 설명합니다. 만약 그랬다면 우선순위를 두는 문제로 싸우고 일을 할당하는 문제로 싸우는 등 논의하다가 날 샜을 것이라는 거죠. 


민언련에 돌아오자마자 세월호 정국을 맞이하며 저는 언론이, 언론운동 판이, 그리고 민언련이 위기상황임을 구체적으로 느끼며 ‘멘붕’에 빠져버렸습니다. 권력의 방송장악 탐욕은 더욱 심해져 있고, 알아서 기다 못해 청와대에 방송국을 통째로 상납하려는 공영방송의 행태는 눈 뜨고 못 볼 지경입니다. 종편은 날이면 날마다 엽기적인 쓰레기 방송을 토해내고 있습니다. 할 일이 폭포처럼 떨어지는데 민언련은 너무나 일손이 부족합니다. 사정은 다른 언론단체들도 엇비슷하여 서로에게 기대보지만 별 힘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그 와중에 저는 역량이 부족하고 패기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동안 잘하겠다거나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시 마음을 먹었습니다. 부족한 힘이라도 거들어보자, ‘소쿠리로 물 뜨기’ 같은 일이라도 해보자. 열리지 않는 문을 다른 이들과 함게 열어보기라도 하자. 우선순위를 둬서 시급한 일부터 처리할 수 있도록 더 효율적인 시스템도 만들어야 하겠지만, 그게 잘 안 된다는 이유로 화를 내며 일손을 놓지는 말자. 그렇게 말입니다. 그런 마음을 먹고 나니 이제 겨우 한 마디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회원님들이 내시는 ‘소중한 회비’ 한 푼도 헛되지 않도록 저는 사무처 식구들과 애써보겠습니다. 언론개혁을 지지하고 소망하시는 민언련 회원님들도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조금만 더 애써주세요. 저희가 보내드리는 이메일을 주변에 공유해주셔도 좋고, 민언련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ccdm1984) 친구로 등록하시고 ‘좋아요’를 눌러주셔도 좋습니다. 술자리에서 언론 문제에 대해 대화하다가 친구를 민언련 회원으로 ‘포섭’해주시면 가장 좋습니다. 무엇이든, 아주 작은 일이든, 두서없는 일이든 일단 우리 해보아요. 결론을 맺지 못하는 저를 보고 우리 활동가가 저에게 말해줬습니다. 한 마디만 하면 된다고요. “열심히 할 테니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