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회원 인사] 분노와 우울의 시대, 함께 건너기 (2014년 4_5호)
등록 2014.05.27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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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우울의 시대, 함께 건너기


김혜정 회원 l loveletter03@hanmail.net




시민사회단체나 구호단체에 후원을 시작한 건 6~7년 정도 된 것 같다. 직장을 얻고 일정한 수입이 생기고부터 생활은 안정이 되었지만 시간에 쫓기는 그렇고 그런 ‘직장인’으로 살면서 대학생 때만큼 거리에 나설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실은 부조리한 사회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앞선 이들이 이뤄낸 민주화에 기대 살고 있다는 일종의 부채감을 면하고자 시민사회단체를 후원하게 되었다. 그 후로 호봉이 오를 때마다 후원단체를 하나씩 늘리고 있다. 직장의 특성상 큰 액수는 아니지만 호봉이 매년 오르고 있어 후원단체가 해마다 늘어나는데, 정부의 지원 없이 회원의 수입으로 운영하는 단체를 우선으로 정한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사회적으로 분노하며 힘을 보태야할 곳들이 너무 많아 일 년에 하나씩이라는 나름대로 세운 규칙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걸 좋은 현상이라 해야 할지 나쁜 현상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민언련에 가입하게 된 건 대학 선배인 故박은지 노동당 부대표의 장례식장에서 대학 동기를 만나게 되면서였다. 서로 안부를 묻던 중에 그 친구가 민언련에서 일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후원하는 단체 중에 언론 쪽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론이 정권 비호에 여념이 없는 요즈음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단체였다. 원래 2014년에 새롭게 후원하기로 정했던 단체는 ‘참여연대’였는데 ‘참여연대’와 ‘민언련’, 시국에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입회원 인사를 써 달라는 부탁을 받고 며칠을 미루었다. 그리고 이제는 써야지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몇 자를 썼다가 지웠다를 반복하며 또 며칠을 보냈다. 이런 때에 신입회원 인사라는 것을 써도 되는가, 아니 도무지 글이 써지지 않아서였다. 며칠을 먹먹함과 슬픔 속에서 보내다 이제는 분노를 담아 인사말을 써 보기로 한다. 밝고 상냥해야 할 신입회원 인사가 다소 감정적이고 분노에 차 있더라도 부디 양해해 주시기를……. ‘세월호 침몰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과 사고를 수습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며 누구나 나와 같은 느낌을 가졌을테니 말이다. 


텔레비전은 거의 보지 않는다. 종편 같은 것은 애초에 나오게 하지도 않았고, 지상파는 MBC 김재철 사장 선임과 총파업 이후로는 때로 종편보다 더 하다 싶을 정도로 볼 것이 없다. 그나마 보는 것이 있다면 좋아하는 다큐멘터리를 가끔 보는 편이다. 가끔 썩 좋은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감동에 젖다가도 프로그램 말미에 ‘수신료 현실화, 공영방송의 시작입니다’라는 문구를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욕을 하며 TV를 꺼 버린다. 


수신료는 현실화하려 들면서 보도윤리는 현실화하지 않는 언론 매체. 그것이 내가 바라보는 지금의 언론이다. 진실을 알고자 하면 기존 언론 매체와 방송이 아니라 유투브나 SNS를 통해야만 하는 사회에서 과연 언론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까?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은 진실이 밝혀질 때쯤 TV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군사독재 시절에나 있을 법한 사건을 가십거리로 헤집을 만큼 헤집어 놓은 보도에는 피해자인 유우성씨의 인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날자’라는 글자 때문에 북한에서 보낸 무인기로 ‘추정’된다는 물체는 어느새 ‘추정’이라는 단어는 빠지고 ‘확정’이 되어 ‘북한 무인기’로 이름이 붙여진 채 몇 주간 언론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세월호 침몰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는 천박한 언론의 모습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 했다. 그들에게는 재난보도준칙은 커녕 가장 기본적인 보도 윤리조차 없었다. 모두가 슬퍼하는 상황에서, 경쟁적으로 사건을 보도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참사를 상품화하는 기사와 보도들을 보며 분노를 넘어 환멸이 느껴졌다. 또한 SNS와 국민TV, 뉴스타파에서 보도되는 내용들과는 다른 지상파TV 보도들을 보며 ‘公營’ 방송이 ‘空營’ 방송이라는 것을 다시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들이 보도윤리는 갖지 못하더라도 인간이 가져야할 최소한 품격이라도 갖추기를, 인간에 대한 예의라도 갖추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남의 일 말하듯 남의 나라 얘기하듯 철저히 책임을 회피하고 공감할 줄 모르는 정치인, 이 와중에 종북 좌파들이 선동을 하고 있다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댓글단, 유튜브나 개인 영상을 통해서야 현장을 알 수 있도록 만드는 철저히 통제된 보도. 이런 사회를 우리가 만들었다는 죄책감과 아무 것도 할 수 없이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무력감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고 했다. 언론의 수준도, 사회의 수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분노만 할 뿐 기억하지 않는다면, 무력감을 느끼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이런 언론과 정치를 만들어내고 강화하게 될 것이다. 민언련 가입이 이런 폭력적인 정치와 천박한 언론을 바꾸는, 작지만 소중한 행동의 시작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분노와 우울의 시대를 함께 바꿔낼 분들과 연을 맺은 것에 감사한다. 그런 세상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의 억울한 넋이 조금이라도 풀리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