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글]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2014년 3호)
등록 2014.04.02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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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박우정 전 이사장 l Parkwj1950@hanmail.net



소식지 담당자로부터 여는글을 써 달라는 연락을 받고 “아차!” 싶었습니다. 이사장직 4년을 마감하면서 회원 여러분들께 인사를 드려야 할 텐데 어떻게 하지, 하면서도 정작 소식지를 이용할 생각은 못했습니다. 속 깊은 담당자가 거기까지 배려했던 모양입니다.


2010년 3월 민언련 이사장직을 맡으라는 호출을 받았을 때 과연 제가 이 자리를 감당할 수 있을지 영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2년만 맡았다가 다른 유능한 분에게 넘겨주자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지만, 남들의 청을 요령 있게 거절하지 못하는 저의 천성적인 약점 때문에 다시 2년을 더 맡는 ‘과오’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과오라고 표현한 것은 공연한 겸손의 수사가 아니고 저의 정직한 자기고백이며 자아비판입니다. 저는 평소 깜냥이 안 되는 인물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채 자기 역할과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보다 더한 중죄는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제가 바로 그런 꼴이라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제 중책을 내려놓는 마당인데도 마음이 마냥 후련하거나 시원하지만은 않습니다. 아마도 이 미진한 부채의식 때문에라도 앞으로 민언련과의 유대의 끈은 영영 놓지 못하리란 느낌입니다.


돌이켜보니 민언련은 참 대단한 존재라는 생각이 새삼 듭니다. 순수한 운동단체로서 30년 이상 험난한 세월을 버텨온 것 자체가 하나의 ‘경이’일 뿐더러 그동안의 업적을 하나하나 새겨 보노라면 자부심이 절로 솟습니다. 『말』지 창간, 보도지침 폭로, 한겨레신문 창간의 모태 역할, 조중동과의 집요한 투쟁, 공정방송 쟁취를 위한 연대투쟁, 각종 반민주언론 악법에 대한 저지 투쟁과 대안제시, 방대한 자료로 남은 꾸준한 신문•방송 모니터링 작업, 언론학교 운영을 통한 언론에 대한 시민의식의 고양 등. 이 가운데 성공한 것도 있고 실패한 것도 있지만 이 모든 활동들이 지난 30년 한국 언론운동사의 큰 축을 형성해왔음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입니다.


민언련이 이렇듯 빛나는 업적을 이룩한 이면에는 숱한 선배 언론인과 역대 활동가들의 민주언론에 대한 열정과 희생적인 노력이 스며있음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언론을 걱정하고 바로세우겠다는 수많은 민주시민 회원들의 물심양면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민언련의 존립과 활동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했으리라는 사실을 저는 분명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민언련의 역사를 돌아보며 우리가 왜 운동을 해야 하는지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희망이 어딘가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캄캄한 절망 속에서 ‘우리 스스로가 희망이 되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제 임기 중 함께 일한 분들에게는 특별히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바쁜 학교 일과에도 불구하고 공동대표직을 맡아 헌신하신 정연우, 정연구, 신태섭 선생, 힘들고 복잡한 문제도 시원시원하게 처리하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박석운 대표에게 감사드립니다. 민언련의 온갖 실무를 도맡아 추진하느라 가장 고생을 많이 한 김유진, 이희완 사무처장에게는 그저 고맙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할 듯 싶습니다. 박봉(?)에도 불구하고 사명감 하나로 헌신한 조영수, 유민지, 박병학, 김경아, 김채빈, 윤지선, 유애리, 송민희, 이지혜, 김미영, 김창근, 홍수영 활동가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민언련에 애정을 갖고 적극 참여해 활력을 불어넣어주신 여러 교수님들과 이사님들, 그리고 대소행사에 열심히 참가해주신 회원 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올해 민언련은 창립 30주년을 맞이합니다.  뜻 깊은 해를 계기로 그동안의 활동을 총체적으로 반성하면서 운동방향, 조직, 사업 등에 대한 개혁과 쇄신작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민언련이 앞으로 30년 더 명실상부한 민주언론 시민운동 조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동안의 관성적인 것들을 과감히 탈피해서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목표의식/패러다임과 운동방식을 창안하는 일이 절실히 필요해 보입니다. 그리하여 회원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 시민들이 운동의 주체로 나서도록 만드는 일을 본격적으로 고민해야겠습니다. 이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저는 새로 구성될 집행부와 회원들이 이런 면에 역점을 두고 노력한다면 좋은 성과를 거두리라고 믿고 평회원으로서 힘껏 돕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