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이슈] 강기훈의 진실은 승리하였습니다 -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2014년 3호)
등록 2014.04.03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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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훈의 진실은 승리하였습니다


이창희 단국대 민주동문회 사무국장 l changhi69@hanmail.net



2014년 2월 13일 서울고법 재심에서의 무죄판결로 강기훈의 진실은 승리하였습니다. 1991년 이후 그는 23년 동안 고통의 나날을 보냈습니다. “분신의 배후, 아버지도 청부살인할 수 있는 자, 극렬 공산주의자 빨갱이”라는 공권력의 날조된 음해, “저 놈이 유서대필자”라는 주변의 적대적인 시선은 모든 것을 잊고 자연인으로서 일상생활만을 하려는 강기훈 씨에게 하루하루가 고문이었습니다. 특히 자신의 아이들이 커가면서 “아빠! 정말 아빠가 그런 일을 했어?”라고 물을 때는 부모로서 감당하기가 너무도 어려웠습니다. 이런 고통 속에서 강기훈은 간 경변과 간암 2기라는 치명적인 육체의 병을 얻었고, 현재는 몸의 저항력 부족으로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1991년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인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은 노태우정권이 부패와 실정에 대항하기 위해 자신의 몸까지 불살랐던 고 김기설 열사의 숭고한 충정을 왜곡하며, 민주화를 향한 전 국민의 열망을 잠재우기 위해 김기설의 유서를 강기훈이 대필했다고 날조하면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는 1991년 4월 명지대생 강경대씨가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진 뒤, 연이은 분신 등 정권 규탄 목소리가 들끓던 상황에서 운동권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히며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정권과 검찰이 날조한 거짓말을 언론은 무책임하게 유포하였고, 사법부조차 제1심과 항소심에서 강기훈을 “선량한 사람을 기망해온 악마”로 낙인찍었습니다.


23년 전, 법정을 나가며 “제가 이깁니다!”라고 외쳤던 강기훈의 무죄 주장은 마침내 2007년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새로운 필적감정 결과로 국가의 사과와 함께 재심을 권고하는 것으로 조금씩 실현되었습니다. 2009년 서울고법은 재심개시 결정을 하였지만, 검찰은 즉시 항고하여 대법원은 재심확정을 3년 3개월 동안이나 미루었습니다. 그러나 2012년 대법원의 재심결정 이후 1년여에 걸친 재심재판에서 진실은 결국 승리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과는커녕 진실을 거스르는 세력이 존재합니다. 검찰은 대법원에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을 상고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검찰 관계자는 “과거 대법원 판결에서도 유죄 증거로 채택됐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필적감정 결과의 신빙성을 재심 재판부가 배척하면서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판단을 받아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무죄 선고 직후 “어떤 방식으로든 유감을 표시해줬으면 한다”는 강기훈의 정중한 요청에 대한 검찰의 상고 결정은 후안무치한 태도입니다. 1992년 ‘필적감정 사기’로 구속된,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문서분석실장 김형영의 1991년 감정 이후 2차례에 걸쳐 국과수가 재감정을 했지만, 첫번째 국과수 감정 결과와 모두 반대였습니다. 이로 인해 검찰의 첫 번째 필적감정에 대한 신빙성은 모두 소멸되었습니다. 


이런 사건을 통해 한국 사회가 얼마나 진실이 왜곡되고, 불의가 판치는 세상이 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과거 권력을 이용하거나 그에 편승하거나 그 눈치를 보면서 피해자들에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가했던 세력은 성찰을 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무죄판결에 불복하고 있습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에도 그들은 불법 인권유린을 통해 권력을 공고화했고, 승승장구하여 이익을 취했습니다. 강기훈을 고통에 몰아넣었던 검사들과 판사들은 사건 이후 출세가도를 달렸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그동안 과거의 불의한 권력과 그 하수인들에 의해서 저질러진 온갖 종류의 국가범죄를 청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과거청산 기구들에 의해서 일부 사건의 경우 진실이 규명되고, 법원에서도 이들 사건에 대한 재심을 통해서 억울한 누명을 벗기고 명예를 회복시켜왔습니다. 그리고 국가는 피해자들에게 법원의 판결을 통해서 배상을 진행해왔습니다. 과거청산은 신원(伸寃)모델에 입각하여 개인의 원한을 풀어주고 명예를 회복하는데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따라서 형사 처벌은커녕 지금까지 그 책임자들에게 민사 구상권을 요구한 적도 없습니다. 과거 국가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누구 하나 나서서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검찰의 상고를 접하면서 신원모델 위주의 과거청산이 지니는 한계를 뼈저리게 느낍니다. 진정 검찰이 피해자의 명예를 생각한다면 강기훈의 “이건 제 재판이 아닙니다. 사법부와 검찰이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라는 최후진술을 명심하고 반드시 상고를 철회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검찰은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제시한, 강기훈에 대한 국가의 사과 권고를 수용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