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기고] '의료민영화' 간담회 후기(2014년 3호)
등록 2014.04.03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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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민영화와 의료영리화의 사이, 단어 하나의 무게에 대해 고민하며


박윤탁 신문모니터분과원 l ironpee@naver.com



한 가지 고백으로 글을 시작해본다. 지난 2월 소식지에 실린 신문토달기 꼭지 ‘의료영리화 논란’에 대한 반성이다. 몸이 안 좋다는 이유로 모니터링 회의에도 불참했고, 일을 미루다가 시간이 촉박해지는 바람에 마감에 쫓기며 퇴고조차 제대로 못할 뻔했다. 분과원들의 도움으로 조금은 나은 글이 되긴 했지만 아쉬운 점이 많은 글이었다.


특히 아쉬웠던 것 중의 하나는 ‘의료영리화’와 ‘의료민영화’라는 용어 사이에서의 고민이었다. 정부의 변명이 반영되어 만들어진 의료영리화라는 단어보다는 의료민영화를 사용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고민했다. 그러나 마지막 선택은 의료영리화라는 단어였다. 5대 일간지가 모두 공식적으로는 ‘의료영리화’라는 단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지극히 편의 위주의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도 괜찮을까 하면서도, 에이 괜찮겠지 하고 가볍게 생각하며 말이다.


지난 3월 12일 신문모니터분과와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이하 보건의료단체연합)의 간담회가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생각도 그렇게 가벼웠다. 건방진 얘기지만, 굳이 정기회의를 연기해가며 간담회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될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게 별다른 기대도 고민도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간담회장으로 갔다.

 

결과를 간단하게 말하자면 간담회는 그야말로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발제를 맡은 보건의료단체연합의 채민석 정책부장이 준비한 PPT 자료에는 유용하면서도 상세한 통계들이 많아서 상당히 공부가 되었다. 의료보장제도에 의한 보장률이 55%에 그치고, 1인당 의료비 증가율 11.6%로 OECD 최고수준인 한국의 현실. 특히 OECD 대부분 국가의 공공병원 비율이 60% 이상인 가운데 우리나라는 10%도 되지 않으며, 민간 의료보험이 난립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의료민영화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라는 지적은 의료민영화 논란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주는 자료였다. 



상황이 이럼에도 박근혜 정부는 투자활성화대책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단계적 의료민영화를 강행하려하고 있다. 이유는 병원들 상당수가 적자를 기록하는 등 경영이 힘들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병원들이 적자를 기록하는 이유는 기기 구입과 규모 경쟁을 위한 건축 등에 힘쓰기 때문이며, 자체 적립금 등을 제외하면 상당한 흑자를 보는 곳이 많다. 이런 가운데 병원들의 적자 해소를 위해 원격의료를 도입하고, 병원의 영리법인을 설립해서 본격적인 돈벌이를 허용해주겠다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의료민영화다. 이들 영리법인은 주식회사와 같은 형태로 투자자들에게서 돈을 받아 배당금을 배분하는 형태로 운영될 계획이다. 말 그대로 병원이 각자 하나의 기업이 되는 셈이다. 


병원이 수익사업에 몰두하게 되면, 의료비 부담은 당연히 증가하고 사람들의 건강권은 침해될 수밖에 없다. 돈이 되지 않는 가난한 환자들은 병원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 병원 안에서도 돈이 되는 과만을 육성하게 되면서 산부인과, 흉부외과, 비뇨기과 등에 의사 인력이 모자란 현상이 가속화된다. 누군가는 병원에 대한 투자를 통해 돈을 벌겠지만 그 돈벌이를 위해서 많은 이들의 권리 침해와 희생이 뒤따를 것이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간담회가 끝나고는 뒤풀이 자리가 이어져 모두 함께 치맥(치킨과 맥주)를 즐겼다. 뒤풀이 자리에서 채민석 정책부장이 나의 모니터링 글을 읽었다면서 했던 말을 되새겨본다. 글 제목만 딱 봤을 때의 인상은 ‘나이브하다’ 즉 고민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단다. 나아가 글을 썼던 나뿐만 아니라 민언련이라는 단체 역시 깊이가 없는 곳 아닐까 오해했다고 한다. 치열하게 일선에서 싸우는 활동가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의료영리화’라는 논쟁거리가 되지 않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점이 그만큼 좋지 않은 인상을 주었다는 뜻이었다. 고민이 그만큼 부족했구나 싶어 후회가 밀려왔다. 동시에 내 부족한 글이 민언련 회원 전체를 대표하는 무게를 가질 수도 있구나 싶어 갑작스레 쿵 하고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저 신문에서 의료영리화라고 부른다는 이유로 별 생각 없이 그렇게 쓰는 일들이, 어느새 나 자신이 지켜내야 할 정당한 권리를 조금씩 포기하는 행위일 수 있음을 새삼스레 생각해본다. 기존 언론이 만들어내는 ‘틀(프레임)’이 아니라 민주시민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지켜내기 위한 ‘틀’이야말로 신문모니터링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되새기면서 소감문을 이만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