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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비평공모-금상]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다?
등록 2013.09.30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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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다?


[금상] KBS <추적60분> 천정부지 등록금, 등록금 후불제가 해법?  l  김준경


민주화 이후 점진적으로 발전해온 언론자유는 MB정부 출범과 함께 다시 위기에 몰렸다. 최시중 방통위원장 임명을 신호탄으로 KBS, YTN, EBS 등 낙하산 사장이 줄줄이 투하되었고 YTN 조합원 해고 사태, KBS 시사프로 폐지, 미디어법 개정안 날치기 통과와 같은 사건은 이윽고 국제 언론자유 69위 급락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이제 시사 프로그램은 달라졌다. 아니 되돌아갔다. 정권과 불편한 관계의 의제는 피하고 설령 다룬다 하여도 내용이 연성화되는 퇴보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KBS 시사 프로그램 숙청의 칼부림 속에서 <추적60분>만은 칼날을 빗겨갈 수 있었다. 숙청의 구호가 '잃어버린 10년'이다 보니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방영된 프로그램은 건드릴 명분이 없었던 탓일까. 25년 전통의 대한민국 최장 시사 프로그램이라는 상징성에 가치를 뒀을 수도 있겠다. 불행 속 다행으로 평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추적60분>의 생존을 천만다행으로 치부하기에는 여지가 남아있다. 전두환 정권 시절 학생운동을 용공으로 몰아간 '오늘의 학원 무엇이 문제인가' 편과 같은 정권의 선전방송 또한 피할 수 없는 <추적60분>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지난 9월 18일 <추적60분> 455회 '천정부지 등록금, 등록금 후불제가 해법?' 편이 방영되었다. 의제설정기능 측면에서 볼 때 등록금 문제를 다루고 정부의 등록금 후불제를 평한다는 것은 이병순 체제에 대한 비판 여론이 무색해질 만큼 탁월한 주제 선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날 방영분에는 논점의 본질을 흐리려는 시도와 맹점이 존재했다.
 
'비극성'에만 초점 맞춘 '등록금 후불제'편
 
프로그램은 등록금 대출 이자 때문에 빚더미에 앉은 대학생들과 부모님들을 밀착 취재 했다. 쪽방살이, 노가다, 키스방 알바, 심지어 등록금 때문에 자살한 사례까지 보여줬다. 그러나 일반적 나열에 그쳐 아쉬움이 남는다. 밋밋하며 무미건조한 구성에 대한 비판은 차치하고서라도 이날 방송은 등록금 문제에 대해 사회·정치 비판을 가하기보단, 오로지 비극성에만 초점을 맞췄다. 등록금 문제의 대안을 찾으며 저항하는 단체와 학생들에 대해서는 전혀 다뤄지지 않았다.
 
한대련의 등록금 인하 운동, 등록금 넷의 등록금 대책 촉구 운동은 소재에서 누락되었다. 안국동에서 벌어진 대학생 대표자 삭발식과 경찰의 강제 연행은 2009년 등록금과 관련한 핵심 이슈였음에도 불구하고 자료화면으로 잠시 등장할 뿐, 한마디의 부연설명조차도 없었다.
 
물론 시사프로그램의 취재 자율성에 비추어볼 때 선택과 집중에 대해 일일이 왈가왈부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등록금에 대한 저항문제를 다루지 않은 까닭은 현 정부와의 껄끄러운 관계를 회피하고자하는 KBS의 의도가 내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제작진 입장에서 등록금문제에 대한 저항 움직임을 사례로 다뤘을 경우 정부에 저항하는 세력의 입장을 반영하여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추적60분>의 '7개월의 입법전쟁, 왜 미디어법인가?'편과 '비정규직법 제정 2년, 그들에게 희망의 출근은 없는가' 편 때 정부가 불편하게 생각할 수 있는 내용들이 상부 지시에 의해 삭제당하는, 결국 제작진이 눈치껏 취재하는 경향이 나타난 경우가 있음이 보도된 바 있다.
 
앞서 학생사회, 시민단체가 등록금 문제의 책임을 이명박 정부에게 겨누었다고 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관점에 따라 이견이 갈릴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 반값 등록금 공약을 내걸고 한나라당의 당론으로 삼았던 전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등록금 후불제로 만족하는 현 정부는 비판 받을만 하다. 그러나 <추적60분> 방영분에서는 반값 등록금 공약에 대해 단 한차례의 언급도 없다. 대학 재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수십 억대의 재단 전입금을 쌓아두고도 등록금을 매년 올리는 것이 현 대학재단의 현 주소다. 그러나 막무가내 등록금 책정의 문제점과 사학재단비리는 초점 밖으로 벗어나 있다.
 
등록금 후불제, 과연 긍정적이기만 할까
 
방영분의 중간부터는 등록금 후불제(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에 대해 전면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실제 등록금 후불제는 이자율 부담을 줄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등록금 상한제 혹은 등록금 인하와 함께 시행하지 않으면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정책이다. 그런데 <추적60>분은 도리어 등록금 후불제를 "기존의 대출제도보다는 훨씬 더 진일보한 정책으로 보인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물론 후반부에 걸쳐 등록금 후불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등록금 문제의 궁극적 해법은 비싼 등록금에 있다는 논지를 전개시키기도 했다. 무난한 귀결점이긴 하나 등록금 후불제를 비판함에 있어서 정부와 사학재단에 대해 언급조차 안 했다는 것은 엄연한 직무유기다.
 
물론 <추적60분>이 이자율 자체에 대한 문제점을 짚어내긴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교과부 관계자의 주장이 다음과 같이 여과 없이 전파를 탔다.
 
"'정부가 사채놀이 하냐'라는 비판도 있는데 (중략) 재정적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서 대출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반대측 주장에 대한 인터뷰와 구체적으로 어떤 재정적 한계가 있는지에 대한 심층 취재가 필요했다. 종합적 측면에서 정부가 4대강 사업 예산, 종부세를 완화하지 않았을 경우 생기는 재정적 여건을 근거로 비판을 가할 수도 있었다.
 
프로그램이 끝날 때쯤 <추적60분>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율을 낮추려는 노력, 천정부지로 치솟는 등록금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럴듯한 말이나 원론적인 주장에 그쳐 아쉬움이 남는다. 문을 열기 위해서는 열쇠가 필요한데 열쇠를 쥔 이를 찾지도 않은 채 어떻게든 문을 열면 된다는 식이다.
 
이처럼 이병순 체제 하에서 <추적60분>의 고발, 비판 정신은 다소 무뎌졌다. 그렇다고 해서 80년대처럼 정권의 선전도구로 전락한 것은 아니다. 적어도 등록금 문제의 폐단을 지적한 이번 방영분처럼 기본적 의제설정과 비판을 가할 줄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퇴보의 길을 걷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할 수는 없을 듯하다. 이번 편만 해도 본질은 도외시한 채 최소한의 형식만 갖춘 빛 좋은 개살구 꼴이다. <추적60분> 제작진에 반문하고 싶다. 누가 등록금 문제를 초래했고 누가 해결해야 하는 것인가? 왜 그것을 말하지 않는가?
 
등록금 문제는 가해자가 존재하는 엄연한 '인재'
 
등록금 문제는 사회구조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 정론이다. 상부구조를 파헤쳐 보면 가해자가 존재하는 엄연한 '인재'이다. 그러나 <추적60분>은 인재를 천재지변으로 둔갑시켰다. 실제로는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문제가 아닌데도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괴상한 논리다.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등록금 문제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어쩌다가 발생한 쓰나미가 아니다. 매년 천정부지로 치솟는 등록금을 동결시키기 위해 대학생들은 등록금 투쟁을 벌여왔다. 자살한 사람도 한둘이 아니다. 등록금 대출로 인한 신용불량자 증가 역시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결자해지'라는 말이 있다. 이익을 위해 등록금을 천정부지로 올린 대학 본부와 반값 등록금 공약으로 국민을 기만한 현 정부, 그들이 나서서 풀어야 한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나 몰라라 하는 대학과 정부를 보면 한탄을 금할 수 없다. <추적60분> 또한 마찬가지다. 결자해지를 해야 한다. 헤아릴 수 없는 피와 땀으로 일궈낸 언론자유와 공영방송이 아니던가. 정연주 퇴진을 주장한 KBS노조는 결국 스스로 이병순이라는 폭탄을 끌어 들이는 구실을 마련했다. 그 결과가 비판, 고발정신을 잃고 연상화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조만간 KBS 사장에 대한 선임이 있을 예정이다. 이병순 사장을 포함해 후보군이 하나같이 친여인사라고 한다. 앞으로 KBS 시사프로그램이 얼마나 더 난도질당하여 공영방송의 근간을 뒤흔들지 모른다. 이명박 정부로 인해 언론자유의 쌀쌀한 겨울을 맞았다. KBS는 지금 꽁꽁 얼어 있다. 언 땅에 저절로 꽃이 피는 법은 없다. KBS 구성원들이 서릿발 위에 화사한 꽃을 피워내길 기대해본다. '언론자유를 위한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