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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비평공모-금상] KBS 빠진 KBS의 비정규직 보도
등록 2013.09.30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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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빠진 KBS의 비정규직 보도
 
 
 [금상]  ‘KBS 미디어비평-해고대란설에 묻힌 비정규직 보도’  l 목정민
 
 
6, 7월엔 TV를 틀기만 하면 비정규직 관련 뉴스가 흘러나왔다. 신문에도 비정규직 기사가 가득했다. 대부분 7월 1일부터 비정규직법이 시행되면서 계약기간(2년)이 완료된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11월인 지금, 비정규직에 대한 뉴스를 찾아보기 힘들다. 비정규직법안이 시행된 지 5개월, 짧다면 짧은 시간인데, 그 사이 그 많던 비정규직 보도들은 어디로 간 걸까?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됐기 때문인가? 그런 것 같진 않다. 여전히 국내 노동자의 절반 이상은 비정규직이다. 이들은 언제 회사를 그만둬야할지 모르는 고용 불안감과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고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언론은 지난 7월의 모습과는 달리 최근 아주 조용하다. 지난 7월의 논란이 비정규직 그 자체에 대한 고민이라기보다 비정규직법 개정과 관련한 정치권의 공방에서 소모돼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논쟁은 있었으나 정작 비정규직에겐 나아진 것은 없는 상황. 이 안타까움에서 <미디어 비평>의 비정규직 편을 다시 꺼냈다.
 
#1. 해고대란설의 늪에 빠진 보도
 
7월 10일 KBS1 <미디어 비평>은 언론의 비정규직법 관련 보도를 도마 위에 올렸다. 제목부터가 '해고대란설에 묻힌 비정규직 보도'다.
 
진행자가 묻는다. "우리 언론은 핵심을 짚어 보도했을까요?" 프로그램에서 지적한 대로 당시 언론들은 "해고대란에만 집중"했고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을 어떻게 해소할지를 다뤄야하는 핵심에서 벗어"나면서 몇 명이 해고되는지에 대한 지엽적인 것에만 매달렸다.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정부가 퍼뜨린 근거 없는 소문 일명 '백만 해고 대란설'을 무비판적으로 지지했다. 근거 없고 확인되지 않은 수치를 근거로 법 개정 목소리를 높인 셈이다. 둘째, 언론은 양대 노총 등 노동계를 참여시켜 회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여권과 갈등을 빚은 추미애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 개인을 공격했다. '추미애 실업'이라든지 '추다르크'라든지 법 개정과 관련이 없는 개인의 신상을 이슈화하며 비정규직 문제의 본질을 흐렸다. 셋째, 해고냐 정규직 전환이냐는 이분법적 프레임으로 사안을 보면서 이를 법이 유예되거나 기간이 연장돼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사용했다.
 
위 사안에서는 비정규직의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한 고민을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미디어 비평>은 그 지점을 정확히 짚어냈다. 논쟁적 사안이 있을 때 언론이라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논쟁만을 다루는데 그치거나 그릇된 근거로 어느 한쪽 편만을 들어서는 안 된다. 언론은 사안의 원인을 파고들며 심층적으로 보도하고 대안을 제시해 사회의 이정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언론이 존재하는 이유이자 언론이 나아갈 길이다.
 
해당 프로그램이 뉴스를 비판하는 입장에서 비정규직 보도를 둘러싸고 과열됐던 보도양상을 분석한 시도는 좋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프로그램은 중반 이후 삐끗한다. 그리고 이 삐끗은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미디어 비평>은 비정규직법 보도의 핵심을 짚어 비판했는가?"
 
#2. 편향이란 내용을 중립이란 포장지로 감싸다
 
두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먼저 비정규직법 시행의 대안에 대해서다. 이 프로그램은 신문사 두 곳에서 제시한 대안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보지 못했다. 이 프로그램은 <한겨레>가 기사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과 비교적 대우가 비슷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자고 제시한 대안을 비판했다. "차별 시정 차원에서 볼 때 무기계약직 전환을 성공적 사례로만 보는 것은 문제"라는 입장이다. 반면 <조선일보>가 "비정규직 문제가 정규직의 과보호"때문이며 정규직 책임론과 해고를 쉽게 해야 한다는 주장은 긍정했다.
 
<미디어 비평>의 이러한 입장이야말로 한쪽으로 치우친 것이 아닐까. 무기계약직 전환은 안 되는데, 정규직에 책임을 묻고, 노동시장적 처방을 내려야 한다는 대안 제시가 정당한가. 프로그램은 비정규직 문제의 책임이 정규직에 있는 것이 아님에도 오히려 정규직을 비판하고 있다. 비판받아야 할 당사자는 계약기간 만료 직전에 노동자를 해고하는 회사측일 텐데 엉뚱하게도 비판의 화살을 정규직으로 돌린 것이다. 또한 법이 있어도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문제를 시장원리에 맡긴다고 해결될 가능성도 적은 실정이었다.
 
정부와 언론의 책임은 법이 그 목적에 맞도록 준수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두 주체는 오히려 법의 효과를 의심하거나 흠집 내기에 몰입한 느낌이다. 현실 조건에서 어떤 대안이 최적인지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이 프로그램의 대안 찾기는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혹은 부실해 보인다.
 
#3. KBS가 빠졌다

둘째, <미디어 비평>의 비정규직 보도 비판에 정작 언론사 중 하나인 KBS는 보이지 않았다. KBS는 <뉴스9> 등을 통해서도 정부의 해고대란설에 무게를 싣는 경우가 많았다. 7월 1일 KBS <뉴스9>는 '대량해고 불가피'라는 보도에서 정부의 해고대란설을 기정사실화해버리기도 했다. "비정규직의 80% 이상은 정규직 전환능력이 없는 중소기업 근로자"라는 내용이나 법 시행이 유예되지 않으면 해고할 것이라는 중소기업 관계자의 멘트를 내보내며 정부측 주장에 힘을 실었다.
 
이뿐 아니라 비정규직을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을 주요 뉴스로 내보내고 추미애 위원장 개인을 화제로 한 기사도 있었다. KBS도 <미디어 비평>에서 꼬집은 다른 언론사의 실책을 그대로 한 것이다. 그럼에도 정작 <미디어 비평>은 자사의 보도는 '도마' 위에 올리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에 대한 반성 없이 타 언론을 비판했다.
 
다소 표현이 과격할지 모르나 '똥 묻은 개라고 겨 묻은 개를 나무라지 마라'는 법은 없다. 반성과 고백이 비판의 필수 전제조건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의 반성과 고백이라도 없다면 비판은 설득력을 잃는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미디어 비평>은 9월11일에도 ''해고대란' 보도 빗나가자 정부 책임'을 방영했는데 여기서도 자사 반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비정규직법이 시행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정부가 주장한 해고대란설을 앵무새처럼 따라하던 언론들이 이 설이 과장으로 드러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말을 바꿨다는 내용이다. 오히려 정부 책임을 거론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비정규직법 보도 절반 이상이 정치권의 공방을 다루는 수준에서 그쳤다는 내용으로 다른 언론사의 잘못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지만 정작 KBS의 보도에 대한 반성은 없다. KBS는 정부의 주장에 동조했거나 혹은 정부의 주장이 거짓으로 나타난 뒤 돌연 보도를 바꾸진 않았는지, 정치권 공방에 보도를 많이 할애하진 않았는지에 대한 반성은 없다. 비판 뒤에 자신은 숨어버리는 안일함은 비판받아야 할 점이다.
 
#4. 견제자의 균형 잡힌 시선 필요해
 
흔히 언론을 일컬어 제4부 권력이라고 한다. 권력을 가진 만큼 언론은 견제 받아야 한다. 이 수단 중 하나로서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은 그 가치가 있다. 자율적인 견제와 비판이 타율적인 비판과 견제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율적인 견제와 비판이라도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는 비판이 될 때 힘을 잃는다.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도 스스로 보도 행태를 자성하고 고쳐나가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스스로 권력으로 굳어지지 않기 위해, 굽은 곳을 펴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미디어 비평>을 보며 비평프로그램마저도 스스로 굳어지고 균형을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앞으로 비평 프로그램은 더 민감해지고 더 공정해질 필요가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