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언련과 나] 수확의 시기를 기다리며
등록 2015.03.23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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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과 나] 

수확의 시기를 기다리며



류현우 회원


작년에 작은 취미가 하나 생겼습니다. 주말농장에서 작은 텃밭을 일구는 일입니다. 넓지는 않지만, 농사라는 게 손도 많이 가고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때 되면 물과 비료를 줘야 하고, 잘 자랄 수 있게 잡초도 뽑고 잔가지들도 손질해줘야 합니다. 주말에 일이 생겨 한 주라도 못 가면 금방 티가 날 정도니까요. 비가 오면 물 주는 일이 덜어지는 까닭에 아침마다 날씨 챙겨보는 습관도 생겼습니다. 


한편 농사라는 게 생각지도 못한 즐거움을 주기도 합니다. 내 손으로 기른 싱싱한 밥상을 마주하는 것은 물론, 일손이 부족하다는 걸 핑계로 반강제적으로 초대된 지인들과 밭에서 막걸리라도 한 잔 마시면 세상에 부러운 게 없어집니다. 



주말농장에서 직접 키운 수박과 오이


물론 배우는 것도 많죠. 뿌린 대로 거두고, 노력하는 만큼 얻는다는 것, 노동으로 흘린 땀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에서부터 흔해 빠지고 평범한 상추지만 내가 기른 상추는 더 달다는 것(?)까지. 어쨌거나 머리로 알고 있던 익숙한 진리들을 몸으로 복습하고 새롭게 체득한다는 게 중요한 점인 것 같습니다.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키운 신문분과 활동

2008년은 개인적으로 고민이 많던 시기였습니다. 공부하면 할수록 부조리한 현실만 눈에 밟히고, 그렇다고 어떤 식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할지, 어떻게 현실에 참여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던 때였습니다. 언론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고민 끝에 다짜고짜 민언련을 찾아갔고,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됐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신문분과 활동은 농사짓는 일과 비슷했습니다. 큰 주제, 작은 주제 가릴 것 없이 객관적이고 신중하게 처리해야 했고, 꼼꼼하게 모니터링 하지 않으면 놓치는 부분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시의성에 맞게 보고서를 완성하고 발표하기 위해서는 때를 잘 맞춰야 했으며, 잠깐이라도 모니터링 공백이 생기면 금방 티가 났습니다. 


반면에, 과정은 이처럼 힘들었어도 보고서가 하나하나 완성되어 가는 걸 보면 뿌듯했습니다. 물론 함께 고생한 동료들과의 회의 후 술자리는 분과 활동 최고의 하이라이트!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가 옆에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든든한 일이었죠. 특히 비슷하면서도 다른 다양한 동료들을 사귀고 교류하며 내 생각의 울타리를 넓힐 수 있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키울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신문분과 활동을 하던 당시,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더욱 깊고 분명해졌습니다. 익숙하게 받아들이던 현상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익숙함에 지배되면 사람들은 문제점을 문제로 여기지 않곤 하는데, 그런 점에서 신문분과 활동은 모든 사안에 대해 한 걸음 떨어져서 낯설게 보는 자세를 가르쳐줬습니다. 


사회의 여러 ‘익숙함’들과 싸워 온 민언련, 응원합니다

실제로 문학적 수법 중에 ‘낯설게 하기’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러시아 형식주의 문학에서 유래된 것으로, 친숙하거나 인습화된 사물이나 관념을 특수화하고 낯설게 함으로써 새로운 느낌이 들도록 만드는 문학 표현 방법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들이 은연중에 갖고 있는 익숙함을 깨뜨리는 방식인 것이죠. 


민언련 역시 사회의 여러 ‘익숙함’들과 싸워왔습니다. 언론이 정치권력을 비호하던 80년대에 <말>지를 통해 진실을 세상에 알렸고, 권력의 언론통제 사실을 폭로하며 익숙함 뒤에 숨어있던 사회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낯설게’ 했습니다. 물론 그 ‘낯설게 하는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지금은 비록 혼란스럽고 어려운 환경이지만, 민언련의 다양한 활동들은 조만간 훌륭한 결과물로 나타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농사가 그렇듯 태풍에 꺾이고 가뭄에 시달려도 수확의 시기는 언제나 오니까요. 저 역시 그 날이 올 때까지 지치지 않고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