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44살에 뽑은 21세기 영화 44편 여덟 번째, 7위 - 3위(2015.11.)
등록 2015.12.02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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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의 베스트 영화 44!(8)

44살에 뽑은 21세기 영화 44편 여덟 번째, 7위 - 3위





이번 호 상위권 영화들은 이야기가 담담하게 흐른다. 주인공들은 사랑과 행복을 원하지만, 결코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들은 각박하거나 외로운 날들을 보내면서도 크게 동요하거나 일일이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의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에릭 쿠 감독의 <내 곁에 있어줘>와 홍콩 명감독 허안화의 <심플 라이프>는 이 가을에 제격이다. - 김현식 회원



 

 

 

7위. 워터 드랍스 온 버닝 락

(프랑스, 감독 : 프랑소와 오종 / 출연 : 버나드 지라드·맬릭 지디·루디빈 사니에)

사랑하는 두 남자가 있다. 20살 프란츠와 50살 레오폴드. 처음엔 나이 많은 남자가 젊은 남자를 유혹했다. 둘은 같이 살게 됐다. 시간이 갈수록 레오폴드는 권태를 느꼈고 프란츠는 사랑이라는 깊은 수렁에 빠진다. 하지만 레오폴드의 옛 애인 베라와 프란츠의 최근 애인 안나가 찾아오면서 사랑은 파국을 치닫는다. 독일 유명 감독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1945~1982)가 19살에 쓴 희곡이 원작이다. 영화 제목 <불타는 바위에 떨어지는 물방울>은 주인공의 운명을 암시한다. 권태를 느끼는 레오폴드를 위해 프란츠가 시를 읊는다. “처음에 우리 사이엔 공유가 존재했지만 지금 우리 사이엔 차이만 남아있어요.”  “나도 그의 창조물이야.” 마지막 말을 남기고 프란츠는 삶을 마감한다. 물방울처럼 증발했다.

 

 

 

6위. 와이키키 브라더스
 (한국, 감독 : 임순례 / 출연 : 이얼·박원상·황정민·오광록·오지혜·류승범)

한국 영화 최고의 엔딩 장면이다. 싸구려 조명이 흐르는 나이트클럽 무대에서 ‘사랑밖에 난 몰라’를 부르는 인희(오지혜). 남편과 사별하고 트럭을 몰며 야채를 팔던 인희의 노래가 애달프다. 성우(이얼)가 이끄는 남성 4인조 밴드는 불경기 때문에 각종 행사무대를 전전하며 팀을 유지한다. 성우는 팀원을 데리고 고교 졸업 후 처음으로 고향 수안보로 돌아온다. 밴드의 새 일자리는 와이키키호텔 나이트클럽이다. 여기서 고교 시절 밴드를 하며 미래를 꿈꾸던 친구들과 재회하지만, 그들 모두 고단한 현실에 억눌려 피폐하다. 친구 수철이 삶을 스스로 포기하기 전 성우를 만나 묻는다. “성우야, 너 지금 행복하니?” “우리 중에서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놈, 너밖에 없어.” 성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5위. 심플 라이프
(홍콩, 감독 : 허안화 / 출연 : 엽덕한·유덕화·진해로·왕복녀)

<천녀유혼>시리즈, <황비홍> 등을 제작한 홍콩 프로듀서 로저 리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4대, 60년 넘게 로저(유덕화) 집안에서 가정부로 살아온 아타오(엽덕한)는 유명 영화제작자 로저를 뒷바라지하다 중풍으로 쓰러진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돌본 로저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 요양원을 찾는다. 새로운 터전에서 아타오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적응한다. 로저 역시 아타오를 위해 온 마음을 기울인다. 그리고 아타오의 존재가 자신한테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는다. 영화는 한없이 담담하다. 아타오의 병환과 죽음을 지켜보며 로저는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그래서 더 애틋하다. 영화는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간결하고 평범한 삶이 실은 위대하다는 걸 묵묵히 알려준다. 아타오를 연기한 엽덕한은 명불허전이다.

 

 

 4위. 내 곁에 있어줘